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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 시대 불교 · 학문 · 문예
문화적 현실성에 대하여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은 종교적 위력의 감퇴였다. 고대 이래 중세에 걸쳐 불교가 교계(敎界) · 속계(俗界)에 위력을 떨쳐 학문 · 예술의 발달과 도덕 관념의 함양, 정신 형성에 끼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사계급이 등장함에 따라 영주권의 확립과 다이묘 지행제의 형성 등 자신의 운명을 오로지 무력에 의한 승패에 걸게 되자 구제와 해탈을 구하는 종교적 정신보다는 현실의 사정을 긍정하고 권세에 의존하는 현실적 정신이 인간의 행위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 같은 정신이야말로 많은 사원과 신사를 불사르고 유서 깊은 대사원이나 종단의 교권을 패자나 다이묘의 무권(武權)에 굴복시키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렇게 해서 불교는 완전히 무권에 굴복하여 그 보호 아래 오로지 불사(佛事)나 종학교의(宗學敎義)의 연수 등에 종사할 뿐이었다.
불교와 더불어 기성 문화의 일익이었던 문예도 전란기에는 쇠퇴했으나 평화의 회복과 더불어 화한(和漢)의 고전학(古典學)과 가학(歌學) · 가도(歌道)가 부흥하였다. 특히 고요제이 천황이 조선에서 건너온 동활자(銅活字)를 이용하여 간행한 고전 12부(部)는 일본 인쇄 사상 획기적인 문화사업으로 평가된다.
당시 무가 사회의 최고의 교양을 대표하는 자로서 호소카와 유사이[細川幽齋]를 들 수 있다. 유사이는 조정 문화와 무로마치 시대 무가 문화의 전통을 집대성한 사람이었다. 그의 문화사상(文化史上)의 업적은 학예에 있어서의 개척보다는 과거에 완성된 학예의 부흥이었다.
무로마치 시대에 발달했던 렌가(連歌) · 노가쿠(能樂) 등도 이 시대에 더욱 유행했으나 예술로서의 새로운 발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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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히데요시 시대 불교 · 학문 · 문예 – 이야기 일본사,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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