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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천하통일을 꿈꾸는 노부나가
이 시대의 전국 다이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교토로 올라가 천하를 호령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노부나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난제들이 가로놓여 있었다. 우선 본거지를 떠날 경우 그 틈을 노려 본거지를 공격하는 일이 없도록 조치해야 했고, 둘째로 교토로 진출하는 도중에도 많은 장애물을 제거해야 했다.
노부나가는 본거지 공격의 후환을 없애기 위하여 오케하자마의 대전 이후 가이의 다케다씨[武田氏]와 손을 잡으려 하였다. 또 동쪽 이웃인 미카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도 협력하기로 약속하였다. 요시모토의 뒤를 이은 우지자네[氏眞]는 패기 없는 남자로 부하격인 도쿠가와씨로부터도 배반당해 호죠씨에게 의탁하여 오다와라로 도망쳐 있었다.
이렇게 해서 노부나가는 배후의 위험을 없애는 데는 일단 성공하였으나 교토 진출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였다. 미노와 오미에 강력한 적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노에는 기름 행상에서 일약 다이묘가 된 사이토 도산이 버티고 있었다. 이에 노부나가는 도산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화친을 맺었다.
그러나 도산이 그의 아들 요시타쓰[義龍]에게 피살되자 노부나가는 장인의 원수를 갚는다는 구실로 미노로 출병하였다. 요시타쓰가 죽은 후에 그 뒤를 이은 다쓰오키와도 싸움을 벌여 여러 차례 출병하였으나 쉽게 무너뜨릴 수가 없었다.
이에 노부나가는 그의 누이동생 오이치를 오미의 아사이 나가마사[龍興]에게 출가시켜 그와 손을 잡은 후 마침내 1567년 8월 사이토씨의 이나바 산성(稻葉山城)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오케하자마의 대전 이후 교토 진출의 준비를 서둘러 온 노부나가는 그 후 7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대부분의 준비를 마쳤다. 노부나가는 미노를 정복한 후 ‘천하포무(天下布武)’라는 인장(印章)을 사용하였으며 또 이나바 산성의 이름을 기후 성(岐阜城)으로 바꾸었다. 이 기후란 이름은 중국의 주(周)나라 발상지 기산(岐山)에서 따온 것으로 천하를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노부나가가 이나바 산성으로 옮겨온 지 얼마 후인 11월, 교토의 오기마치[正親町] 천황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되었다. 이 편지에는 노부나가의 무용을 칭찬하고 아울러 황실의 영지(領地)를 되찾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다음해인 1568년 7월에는 피살된 아시카가 막부의 13대 쇼군 요시테루[義輝]의 동생 요시나키[義昭]가 기후 성에 찾아와 노부나가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이처럼 노부나가는 황실의 신뢰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카가씨로부터도 신뢰를 받게 됨으로써 교토 진출에 더없이 좋은 명분과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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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천하통일을 꿈꾸는 노부나가 – 이야기 일본사,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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