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이야기 일본

아즈치

안토성, Azuchi Castle

오다 노부나가는 지금까지 노미 평야(濃尾平野)의 기후를 세력의 근거지로 삼아 왔었으나 1576년 정월부터 오미의 아즈치 산에 새로운 성을 쌓아 이곳을 세력의 중심지로 삼을 계획이었다.

노부나가의 이 같은 계획은 그가 혼간지를 비롯하여 키나이 각 지방의 강력한 세력들을 평정한 후 사이코쿠에서 버티고 있는 강력한 적 모리씨를 정벌하기 위해서였다.

아즈치 성

오다 노부나가의 명으로 1576~1579년 사이에 세워진 성으로 당시 최고의 기술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즈치는 교토까지 말과 배로 하루 거리밖에 안 되고 육로 교통상 토카이 지방이나 호쿠리쿠 지방에 나가기 위해서는 비와 호 동쪽의 가도(街道)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 아즈치는 그 교통로 목구멍을 조이는 교통상의 요충지였다.

또 당시는 비와 호의 수상교통이 매우 활발하였다. 남쪽에는 오쓰(大津), 북쪽에는 가이즈(海津) · 이마즈(今津) 등의 항구가 있어 선박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고, 가이즈 · 이마즈에서 산을 넘으면 곧바로 동해의 항구 오바마(小濱)와 쓰루가로 연결되기도 하였다. 아즈치 산은 바로 비와 호에 돌출한 곶이었으므로 이 같은 선박의 왕래를 감시하는 데도 매우 편리한 곳이었다.

비와 호

나가시노 전투 후, 노부나가는 비와 호 동쪽에 위치한 아즈치 산에 대규모 축성 공사를 시작했다. 3년 후에 완성된 성이 바로 호화찬란했던 아즈치 성이다. 노부나가는 이곳을 중심으로 교토로 진출했다.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즈치 성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외관상으로는 5층이고 내부는 7층으로 되어 있는 대천수각(大天守閣)이었다.

이 천수각은 돌담의 높이가 약 22미터이고 그 위에 세운 건물의 높이가 32미터에 이르렀다. 건물 내부에는 많은 객실이 있었는데, 객실의 기둥은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장지는 금박으로 되어 있었으며 유명 화가들이 호화스러운 회화를 그려 일대장관을 이루었다. 마루의 공간이나 시렁에는 갖가지 진기한 보물과 골동품이 진열되어 있어 구경하는 다이묘들이 숨을 죽이며 감탄했다 한다.

또 천수각의 6층은 흰 벽에 붉은 기둥 그리고 진기한 팔각형 건물로 되어 있었고 맨 위층인 7층은 안팎이 모두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아즈치 산의 높이는 비와 호 수면으로부터 100미터였으므로 그 산 위에 세워진 천수각은 그 동쪽의 평야나 서쪽에서 바라볼 때 수면 위에 우뚝 솟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특히 아침 햇살과 저녁노을을 받을 때면 금색의 기와와 벽이 휘황찬란하게 빛나 지금의 전광장식(電光裝飾)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것은 이 성의 주인 노부나가의 위력을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아즈치 성의 천수각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독창적인 건물이었으나 노부나가의 아즈치 성 축성 공사방법 또한 처음으로 시도되는 새로운 공법이었다.

규모가 큰 성을 단기간 내에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노부나가는 자신이 지배하는 제국의 사무라이에게 명하여 그 영지의 백성들을 일정기준에 의해 일정기간 인부로서 노역에 종사시키는 방법을 취하였다.

돌담을 쌓는다든지 건물을 세우려면 대목 · 미장이 · 대장장이 · 석공 등 많은 종류의 기능공이 필요하였으므로 몇천 명에 달하는 인부들이 교토 · 나라 · 시카이 등에서 불철주야 동원되었다. 돌담을 쌓는데 소요되는 큰 돌을 운반할 때는 무려 1만 명에 이르는 인부가 3일간에 걸쳐 산꼭대기로 운반하였다 한다.

이처럼 영내의 노력을 총동원하여 성을 쌓는 방법은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방법이었으나 그런데도 성 전체를 완성시킨 것은 공사 시작 3년 후인 1579년이었다.

아즈치 산 정상의 아즈치 성을 에워싸듯 산중턱에서 산기슭까지에는 시바타[紫田勝家], 하시바[羽紫秀吉]각주1) 등 다이묘들의 저택이 건축되었다. 이 저택들은 모두 조그마한 성처럼 만들어져 만약의 경우에는 아즈치 성을 수비하는 보루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었다.

성과 일체를 이루는 성하도시(城下都市)의 건설에도 노부나가는 새로운 방법을 택하였다. 아즈치 산의 기슭은 그때까지 인가도 아무것도 없는 호숫가의 늪지에 불과하였다. 노부나가는 이 늪지를 매립하고 배수로를 만들어 주택단지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도시계획을 세워 도로도 곧고 넓게 만들어 통행과 상업에 편리하도록 하고 상인과 기술자 · 기능인들을 불러들였다. 성 주위에 거주하는 무사들과 그의 가족들의 생활을 위해서는 상공업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주민이 없었던 새로운 도시에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입주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설정하였다. 1577년 6월 노부나가는 13조의 규정을 제정하였는데, 아즈치 시민에게 아주 유리한 조건이었다.

아즈치를 라쿠이치(樂市)라 부른다.
상업거래에 어떠한 명목의 세금도 면제한다.
토지에 대하여는 완전 면세한다.
교토를 왕래하는 여행자들은 반드시 아즈치를 경유해야 한다.

무로마치 시대 이래 상업이 발달하면서 각지에는 누구든 자유로이 상업 행위를 할 수 있는 라쿠이치가 출현하여 번창하고 있었는데 이 제도를 아즈치 성하도시에도 도입하여 도시의 번영을 기하려 한 것이 노부나가의 정책이었다. 이러한 노력에 의하여 아즈치는 수년이 채 못 되어 수천 명의 인구를 갖는 도시로 발전하였다.

한편 상업거래에 방해가 되는 관소를 폐지하고 교통의 자유를 조장한 것도 노부나가의 새로운 경제정책으로 주목되고 있다.

또 노부나가는 1574년 도로봉행(道路奉行)을 설치하여 도로의 정비를 꾀하였다. 특히 아즈치와 교토를 연결하는 가도에는 소나무와 버드나무로 된 보기 좋은 가로수를 심어 백성들을 기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의 선교사들까지도 “비가 와도 발을 적시지 않고 걸을 수 있다.”며 감탄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노부나가의 이 같은 정책은 결코 백성들의 진정한 복리증진을 위한 계획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정책의 주요 목적은 군용도로를 정비하고, 오로지 풍부한 군용물자를 손쉽게 수송하게 하며, 자신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일본사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신화시대부터 현대까지 일본의 수많은 사건과 역사적 변천을 체계적으로 수록했다. 야마토 정권, 귀족정치의 대두, 무사정권의 수립과 군웅할거 시대, 메이지 유신과 전쟁 등..펼쳐보기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Daum백과] 아즈치 성이야기 일본사, 김희영, 청아출판사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