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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 일본

삼국 간섭

三國干涉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 6일 후인 4월 23일 러시아 · 독일 · 프랑스 삼국은 일본의 요동 반도 점유를 정식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도쿄 주재 삼국공사는 일본 외무성을 방문하고 본국 정부로부터의 훈령을 전달한다는 형식으로 간섭에 나섰다. 삼국 정부의 훈령은 대동소이한 것이었으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러시아의 훈령은 다음과 같았다.

러시아 황제폐하의 정부는 일본국이 청국에 대하여 요구한 강화 조건을 살핀 바 요동 반도를 일본이 영유하는 것은 청국의 수도 북경을 위협할 염려가 있을 뿐 아니라 조선의 독립을 유명무실하게 하여 장래 극동의 영구적 평화에 장애가 되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따라서 러시아 정부는 일본 정부와 그 성실한 우의를 다지기 위하여 요동 반도의 영유를 확실히 포기할 것을 권고하는 바입니다.

일본에서는 즉시 어전회의가 열렸다. 삼국 간섭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이토는 다음 세 가지 안을 제시하였다.

1. 강력한 적국이 새로 등장하여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는 한이 있더라도 삼국의 권고를 묵살한다.
2. 열국회의를 소집하여 요동 반도의 문제를 그 회의에서 처리한다.
3. 삼국의 권고를 받아들여 요동 반도를 청국에 반환한다.

이토는 제1안은 현재 일본의 군사력으로는 사실상 실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또 제3안은 너무 한심스러운 것이므로 제2안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첨가하였다.

이때 무쓰 외상은 마침 병으로 요양중이어서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어전회의에서는 제2안을 택하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토는 무쓰를 방문하여 그의 의견을 들어 최종단안을 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무쓰 외상은 의외로 제2안에 반대하였다. 무쓰 외상의 반대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열국회의를 개최할 경우 그 회의는 반드시 삼국 이상의 나라로 구성될 것이므로 요동 반도 이외의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많다. 그리 된다면 시모노세키 조약 전체를 부정하는 여론이 나올 가능성마저 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삼국 이상의 새로운 강대국의 간섭을 불러들일 수도 있으며 회의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므로 그 동안에 어떤 불의의 사태가 발생할지 예상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청국이 비준을 거부하며 시모노세키 조약을 전면 백지화할 염려가 있는 것이다.

엄격히 말해서 일본은 이 시점에서 삼국 간섭을 거부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러시아는 무력도 불사하겠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와의 싸움에서 승산이 없는 경우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었다.

무쓰 외상은 각국 공사를 통하여 최후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사태를 호전시키지는 못하였다. 결국 4월 29일의 어전회의에서 3국의 권고를 받아들여 요동 반도를 청국에 반환하기로 결정하였다. 청국은 삼국 간섭에 의해 요동 반도를 되찾은 셈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외세에 빼앗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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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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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일본사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신화시대부터 현대까지 일본의 수많은 사건과 역사적 변천을 체계적으로 수록했다. 야마토 정권, 귀족정치의 대두, 무사정권의 수립과 군웅할거 시대, 메이지 유신과 전쟁 등..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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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삼국 간섭이야기 일본사,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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