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고토쿠 천황은 즉위하자 곧바로 황자들과 호족, 관료들을 궁정 뜰에 모아놓고 천황에게 배반하지 않겠다는 충성서약을 받았다. 또 중국의 연호 제도를 본받아 연호를 다이카[大化]로 제정하였다. 새로운 연호 밑에 새로운 정신으로 정치를 편다는 이 정치적 전환점을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이라 부른다.

《일본서기》나 《고사기》의 신빙성과 이에 비추어 본 중국 기록에 의하면 일본의 천황 계보에서 실재성(實在性)이 인정되는 것은 제33대 스이코 천황 때부터라고 한다. 그리고 대립되는 여러 호족들의 세력을 견제하고 천황족의 우세가 확정적으로 인정된 것은 645년의 다이카 개신 이후로 보아야 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따라서 그 이전 시기의 왜나 왜왕은 천황족이나 야마토 정권과 동일시할 수 없으며 또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에 식민지를 가졌다든지 혹은 출병했다든지, 한반도에서 야마토 정권에 귀화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진다.

다이카 2년 정월 초하루, 조정에서는 새해 의식을 올리는 자리에서 새로운 시정 방침의 골자를 천황의 포고로써 발표하였다.

첫째, 지금부터 모든 토지와 인민은 국가 소유이며, 천황이 지배하는 공지(公地), 공민(公民)으로 한다.
둘째, 행정 구역을 정하여 중앙에는 수도를 두고, 수도 주위는 키나이(畿內)각주1) 로 한다. 기타 지방은 국(國), 군(郡), 리(里)로 구분한다.
셋째, 인구를 조사하여 호적을 만들고, 이 호적에 의하여 토지를 분양한다.
넷째, 조세는 조(租), 용(庸), 조(調)의 세 가지로 정한다. 천황은 조정에서 임명하는 관리를 감독하여 모든 토지와 인민을 지배한다.

천황의 포고문이 발표되자 나카노오오에 황태자는 즉시 자기 소유의 토지를 천황에게 바치며 충성을 맹세했다.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나라에는 두 임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천하만민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은 오직 천황 한 분뿐입니다.”

이는 다이카 개신의 골자를 표현하는 말로 황태자가 다른 황족이나 호족들에게 그 모범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호족들은 좀처럼 천황의 포고에 따르려 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토지와 인민을 소유하려 하였다. 이에 천황은 엄명을 내리는 한편 호족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도 힘을 기울였다. 또 호족들은 조정의 관료가 되어 식읍(食邑)이라는 명목으로 토지와 인민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일본사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신화시대부터 현대까지 일본의 수많은 사건과 역사적 변천을 체계적으로 수록했다. 야마토 정권, 귀족정치의 대두, 무사정권의 수립과 군웅할거 시대, 메이지 유신과 전쟁 등..펼쳐보기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Daum백과] 개신의 정치이야기 일본사, 김희영, 청아출판사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