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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오는 외국선
일본이 쇄국 정책을 고수하여 외국과의 교역을 중단한 이래 유럽은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에 의해 근대 국가로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특히 영국을 중심으로 한 산업 혁명은 기계공업에 의한 산업의 근대화가 추진되어 방적기가 발명되고 증기기관을 동력에 이용하게 됨으로써 직물공업은 갑자기 수공업에서 기계공업으로 전환됐고, 이에 발맞추어 기타 산업에도 기계화에 의한 근대공업의 시대가 대두하게 되었다.
산업의 근대화에도 기계화를 착실히 추진해 온 유럽에서는 제품의 판매시장과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앞다투어 해외진출을 기도하게 되었다. 특히 영국 · 프랑스 · 러시아 등은 국력의 신장과 더불어 식민지를 손에 넣기 위한 격렬한 경쟁을 벌이며 그 눈길을 아시아로 돌리게 되었다.
유럽 제국 가운데 맨 먼저 일본에 도전한 것이 러시아였다. 1792년 사다노부가 막부의 실권자로 있을 때 러시아의 스크만 중위가 홋카이도의 네무로에 나타나 교역을 요구하였다. 막부에서는 너무나도 갑작스런 일에 놀라 해안 방비를 엄중히 하는 한편 홋카이도를 막부 직할지로 삼았다. 그리고 관리를 파견하여 순시를 강화하고 북방의 탐험에 착수하였다.
북방 탐험의 명령을 받은 마미야 린조[間宮林藏]는 1808년 사할린이 대륙의 일부가 아니고 섬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린조는 사할린에서 해협을 건너 시베리아로 들어가 그 속의 풍토와 풍속을 조사하여 돌아왔다.
일본과의 무역을 포기하지 않은 러시아는 러스크만이 다녀간 지 12년 후인 1804년 다시 무역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러스크만과의 약속에 따라 나가사키에 나타난 것이었다. 당시의 사절 레자노프는 황제 알렉산드르 1세의 국서를 휴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부에서는 쇄국 정책을 변경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반년 동안이나 회답을 기다리던 러시아 사절을 돌려보냈다.
2회에 걸쳐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러시아는 그 후 자주 일본 북방에 출몰하여 보복을 노리다가 1807년 사할린과 에토로프 어장을 습격하여 불사르는 사건을 일으켰다. 막부에서는 군대를 파견하여 방비를 강화하였다. 이렇게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치시마 방면의 측량과 탐험을 하고 있던 러시아의 함장 고로우닌이 쿠나시리 섬에 상륙하여 식량과 식수의 보급을 위해 일본 측 관리와 교섭을 벌였다. 그러나 이 교섭은 일본 측의 관리가 긴장한데다가 통역의 미숙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결국 고로우닌은 체포되어 3년간 억류생활을 하게 되었다.
러시아 외에도 영국은 나가사키 항내의 측량을 하는 등 자주 일본 근해에 모습을 나타냈다. 1813년에는 다시 나가사키에 내항하여 네덜란드 상관장에게 네덜란드가 프랑스의 속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통고하였다. 그리고 네덜란드를 대신하여 영국과 일본과의 무역을 교섭하였으나 네덜란드 상관장이 이를 거절함으로써 영국 배는 돌아가고 말았다. 네덜란드 상관을 끝까지 지킨 상관장은 그 후 네덜란드 국왕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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