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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 일본

히데요시를 둘러싼 여인들

히데요시는 53세에 이르기까지 후계자가 없었다. 1589년 처음으로 쓰루마쓰[鶴松]라는 아들을 낳았지만 겨우 3세 때 죽었기 때문에 히데요시는 후계자 문제로 무척 고심하였다.

히데요시는 천하를 통일하던 해에 조카 히데쓰구[秀次]를 그의 후계자로 정하여 관백의 자리를 그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태합(太閤)각주1) 으로서 후시미(代見)에 성을 쌓아 그곳에 은거하기로 작정하였다. 이때가 바로 제1차 조선 출병의 해였다.

그러나 1593년 히데요리[秀賴]가 태어났다. 히데요리의 출생은 관백 히데쓰구의 지위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는 것이었다. 히데쓰구는 자신의 지위에 차츰 불안을 느끼게 되었으며 그 불안이 쌓이고 얼마 후에는 공연히 죄 없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세간에서는 히데쓰구를 살생관백(殺生關白)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절명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음에 대비하여 미리 만들어 놓고, 보관하게 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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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제1차 조선 출병 후 얼마 지나 전세가 교착상태에 빠지자 다이묘들 간에 대립현상이 나타나고 히데쓰구가 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런 소문을 들은 히데요시가 히데쓰구를 가만히 둘 턱이 없었다. 1595년 히데요시는 마침내 단안을 내려 히데쓰구를 고야 산의 절에 유폐시켰다가 자결토록 하였다.

히데쓰구의 머리는 산죠가와라(三條河原)에 효수되었으며, 히데쓰구의 어린 세 아들과 아내 그리고 애인 등 30여 명이 히데쓰구가 효수된 앞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히데요시는 이들 시체를 묻은 무덤에 ‘히데쓰구 악역총(秀次惡逆塚)’ 역적 히데쓰구의 무덤이라는 뜻을 새긴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으나 너무나도 참혹한 처사에 세상 사람들은 이 무덤을 축생총(畜生塚)이라 부렀다. 다시 히데요시는 히데쓰구에게 주었던 취락제까지 파괴했다. 결국 히데요시도 히데쓰구 못지않은 살생관백의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생모나 애첩 요도기미[淙君], 요도기미가 낳은 히데요리에게는 깊은 애정을 쏟았다. 히데요리에게 보낸 편지는 정과 사랑을 담은 인정미 넘치는 것으로서 후세까지 전하고 있다.

히데요시는 히데요리를 금지옥엽처럼 귀여워했다. 다이묘들에게도 히데요리를 잘 섬기도록 부탁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조카 히데쓰구를 자결토록 한 후 히데요시는 다이묘들로부터 어린 히데요리를 힘껏 보호하겠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그리고 1596년에도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하였다. 자신이 죽은 후 히데요리의 앞날이 얼마나 염려스러웠으면 이 같은 일을 되풀이했을까? 그는 자신의 일을 돌이켜보며 인과응보의 이치를 깨닫고 히데요리의 앞날을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여기에도 안심하지 못하고 히데요리를 천황에게 인사를 시키기도 하였다.

1598년 3월 히데요시는 그의 부인과 애첩 그리고 히데요리 등 가족들을 데리고 다이고(醍醐)의 산보인(三寶院)에서 호화스런 꽃놀이를 하였다. 이 꽃놀이를 마친 얼마 후 히데요시는 병석에 눕게 되었다.

7월 들어 히데요시는 아사노[淺野長政] · 마시타[增田長成] · 이시다[石田三成] · 나쓰카[長束正家] · 마에다[前田玄以] 등 5봉행각주2) 과 이에야스 · 마에다[前田利家] · 우에스기[上杉景勝] · 우키타[宇喜多秀家] · 모리[毛利輝元] 등 5대로(大老)각주3) 에게 다시 히데요리를 돕겠다는 서약을 받았으며 8월에는 5대로에게 혈판(血判)각주4) 서약서를 쓰도록 하였다. 또 숨을 거두기 얼마 전에도 친히 5대로에게 히데요리의 장래를 부디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부디 히데요리의 일을 잘 부탁하오. 5대로 여러분, 정말 잘 부탁하오…. 히데요리가 훌륭히 해낼 수 있도록 다섯 분에게 부탁하오. 그 일밖에는 아무 일도 걱정되는 일이 없소.

오직 아들 히데요리가 걱정되어 죽어도 차마 편히 눈을 감을 수 없다는 아쉬운 심정이 이 편지 속에 역력히 나타나 있다.

이슬처럼 떨어졌다 이슬처럼 사라지는 게 인생이련가!
세상만사 모두가 일장춘몽이로세!

히데요시는 이렇게 남기고 죽어갔다. 때는 1598년 8월 18일 히데요시의 나이 6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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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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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일본사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신화시대부터 현대까지 일본의 수많은 사건과 역사적 변천을 체계적으로 수록했다. 야마토 정권, 귀족정치의 대두, 무사정권의 수립과 군웅할거 시대, 메이지 유신과 전쟁 등..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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