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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년 3월, 당시의 실권자였던 나카노오오에 황태자는 조정과 백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도를 아스카(飛鳥)에서 오쓰노미야(大津宮)로 옮겼다. 조정과 백성들은 오랫동안 정들었던 아스카를 그리워하며 노래까지 만들어 불렀다.

오쓰노미야로 천도한 다음해인 668년, 나카노오오에 황태자가 55세의 나이로 즉위하니 그가 바로 덴지[天智] 천황이다. 그는 무려 23년간이나 황태자로서 정치를 담당했던 관록의 소유자였다.

덴지 천황의 동지이자 다이카 개신의 주역이었던 가마타리가 669년에 죽자, 천황은 이런 가마타리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대직관(大織冠)과 후지와라[藤原]라는 성을 수여하였다.

가마타리는 죽기 전까지 중국 당나라의 법률을 본받아 제도를 규정하는 ‘영(令)’을 제정하고 있었다. 천황은 이 규정에 따라 경오년적(庚午年籍)이라는 호적을 만들었는데 이 호적은 그때까지 미비했던 호적을 일신한 것으로 근대 호적의 모체가 되었다.

덴지 천황은 즉위하기 전 그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던 동생 오아마노[大海] 황자를 황태자로 삼았다. 오아마노 황자는 덴지 천황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이미 구사카베[草壁] 황자까지 두고 있었다. 그는 호족들로부터의 신망이 높아 누가 보더라도 천황의 후계자로서 흠잡을 데가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덴지 천황에게는 오토모[大友] 황자라는 총명한 아들이 있었다. 고령이었던 천황은 이 황자를 각별히 총애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하였으나 그 어머니의 신분 때문에 호족과 중신들은 반대하고 있었다. 덴지 천황은 그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고뇌하면 할수록 이미 황태자로 책립되어 있는 오아마노 황자가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천황의 이 같은 심정을 오아마노 황자가 모를 턱이 없었다.

천황과 황태자 사이는 날이 갈수록 멀어지고 냉랭해져 갔다. 이럴 때 중간에서 두 사람 사이를 원만히 중재해주던 가마타리도 이제는 죽고 없으니 사태는 더욱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671년 정월, 천황은 파격적으로 오토모 황자를 태정대신(太政大臣)에 기용하였다. 태정대신은 정치를 총괄하는 직책으로 모든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자리였다. 천황은 이 자리를 새로 만듦으로써 차기 천황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줄 심산이었다.

황태자로 책립된 오아마노 황자는 덴지 천황의 이 같은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오아마노 황자는 머리를 깎고 요시노 산(吉野山)의 절로 은신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도성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소문이 퍼졌다.

오아마노 황자가 요시노 산에 들어가 숨은 것은 마치 호랑이를 들에 놓은 것과 같다.

이 소문을 들은 천황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섯 명의 대신들에게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오토모 황자를 배반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아냈다.

그러나 덴지 천황은 두려움을 씻지 못한 채 671년 죽고 말았다. 해가 바뀌어 672년 임신년(壬申年)이 되었다. 요시노 산에 은신해 있던 오아마노 황자에게 조정에서 군대를 동원하여 요시노 산을 토벌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날벼락 같은 소문이 전해졌다. 사태가 이쯤에 이르자 오아마노 황자도 앉아서 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가만히 앉아 죽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차라리 결판을 내는 것이 낫다.”

오아마노 황자는 자신의 봉지인 미노(美濃)에서 군대를 일으켜 수도를 향해 진격하였다. 그러자 여러 지방 호족들이 원군을 보내와 병력이 급격히 증강되었다. 오아마노 황자가 거느리는 군대는 동쪽과 남쪽에서 맹렬한 형세로 수도를 압박해 들어갔다.

한편 조정에서는 오아마노 황자가 진격해 온다는 전갈을 듣자 모두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전국에 모병관을 보내어 군대를 모으려 하였으나 좀처럼 모아지질 않았다.

오아마노 황자가 거느리는 군대는 야마토에서 서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동쪽으로 진격하여 난공불락의 관문들을 쉽게 넘어 오미(近江)의 도로를 파죽지세로 진격하고 있었다. 그들은 적과 아군을 식별하기 위하여 붉은 천으로 표시를 하고 조정군의 저항을 뿌리치면서 비와 호(琵琶湖)의 남쪽 세다(瀨田)까지 육박하였다.

마침내 양군 사이에 최후의 결전이 벌어졌다. 치열한 공방전 끝에 조정군은 무너지고 조정군을 지휘하던 오토모 황자는 야마자키로 도망쳤으나 고립무원의 외톨이가 되어 마침내 자결하고 말았다. 결국 임신의 난은 오아마노 황자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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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일본사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신화시대부터 현대까지 일본의 수많은 사건과 역사적 변천을 체계적으로 수록했다. 야마토 정권, 귀족정치의 대두, 무사정권의 수립과 군웅할거 시대, 메이지 유신과 전쟁 등..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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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임신의 난이야기 일본사,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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