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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
히데요시 시대부터 시작된 주인선 무역은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그러나 그렇게 활발했던 무역도 쇄국령의 발표와 함께 점점 활력을 잃으면서 일본은 고립상태에 빠져들게 되었다.
에도 막부는 무슨 이유로 쇄국 정책을 취했을까? 쇄국의 주요 원인의 하나가 천주교 금지에 있었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로 천주교를 금지시켜야만 했을까?
천주교가 일본에 처음 전해진 이후 집권층에서는 천주교에 대하여 회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경향이 짙었다. 천주교 선교사가 일본에 건너와 천주교를 전파하고 신자를 늘리는 목적은 결국 신자들로 하여금 모반을 일으키게 하고 천주교국의 군대를 파견하여 이들과 힘을 합쳐 일본을 점령하기 위해서라고 보았던 것이다.
천주교를 이런 측면에서 이해하여 일본을 위해서는 유해한 종교이므로 금지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론은 일찍이 히데요시 시대부터 일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자들의 신앙심은 매우 뿌리 깊은 것이었다. 위로는 다이묘로부터 아래로는 농민 · 어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전파되어 있었다. 때문에 만약 신자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모반을 일으킨다고 할 경우 그 힘이 얼마나 강대할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야스 또한 천주교에 대하여 히데요시와 거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외국과의 무역을 활발히 하여 그 이익을 획득하는 일이 시급한 문제였으므로 천주교의 전파를 잠정적으로 묵인했을 뿐이었다. 이 틈을 타서 간토에서 토호쿠 지방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신자의 수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였다.
1613년 전국에 걸쳐 엄격한 천주교 금지령이 내려졌다. 교회는 파괴되고 선교사와 신자들은 체포되어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많은 신자들을 체포하여 가마니 속에 집어넣어 마구 굴리는 등 가혹한 고문을 가하면서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하였다.
히데요시의 부하였으며, 유명한 천주교 다이묘이었던 다카야마[高山右近]가 필리핀 마닐라로 추방된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천주교 신앙을 근절시키려는 막부의 정책은 해가 갈수록 더욱 격렬해졌다. 아무리 심한 고문을 가하더라도 신앙을 버리지 않는 자는 화형(火刑)에 처해졌다. 이처럼 가혹한 박해의 회오리바람에도 불구하고 마닐라와 마카오로부터 비밀리에 일본으로 건너오는 선교사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자 1623년 막부에서는 일본 무역선의 마닐라 취항을 금지시켰고, 그 다음해에는 무역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닐라 장관의 서신을 휴대하고 입국한 사신을 추방했다.
히라도에 설치되었던 영국의 상관도 네덜란드 상관과 일본 무역을 둘러싸고 마찰을 벌이다가 1622년 상관 폐쇄를 결정함으로써 영국과의 교역도 단절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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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 – 이야기 일본사,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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