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이야기 일본

헤이안 시대 가나문자와 문화

중국으로부터 선진 문화를 받아들인 것은 6세기 말~9세기 초 무렵이다. 이 기간 동안의 일본 문화는 중국 문화에 많은 영향력을 받았지만, 9세기 말에 이르러 당나라가 기울기 시작하자 유학생을 보낼 필요가 없다는 건의에 따라 견당선이 폐지되었다. 일본인들은 3세기 동안 꾸준히 중국으로부터 문화를 받아들여 수많은 모방과 수정 속에 그들만의 것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이처럼 일본풍의 문화가 서서히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문자가 발명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본의 문자는 9~10세기 사이에 몇몇 한자를 간략하게 써서 그 자체에는 별다른 뜻이 없는 표음부호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전된 것으로써 ‘가나(假名)’라고 하는 음절문자이다.

이 가나는 처음에는 많은 혼란을 가져왔다. 예를 들면 가나에 사용된 한자는 두 가지 방법으로 간략히 만들어졌다. 즉 ‘히라가나(平假名)’라는 한 가지 방법은 한자의 초서체를 모방한 것으로 ‘노예(奴隸)’를 뜻하는 한자 ‘奴’는 ‘누’의 음을 가진 ‘ぬ’로 표시한다. ‘가타가나(片假名)’라는 다른 한 가지 방법은 한 음가(音價)를 표시하기 위해 한자의 한 부분을 골라 낸 것으로 ‘노예(奴隸)’를 의미하는 같은 한자 ‘奴’는 ‘ヌ’자가 되었는데 이것 또한 ‘누’ 음을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가나로 쓰기 위해 한자를 고르는 일이 무질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였다.

엄격히 말해서 일본의 음절문자는 조악한 문자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능률적으로 구사할 수 있게 발전하면서 가나로 된 문학작품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문학작품은 귀족 여성들에 의해 많이 쓰여졌다. 그들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으므로 당시 공식석상에서 사용하는 한자를 배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보다 쉬운 가나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문장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후지와라씨 집권 당시 귀족들은 황실과 인연을 맺기 위해 자신의 딸들을 궁중에 들여보내려 안간힘을 썼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특별교육을 시켜야 했고, 그 교육을 담당할 재능 있는 여성들을 많이 모아야만 했다. 만약 귀족의 딸이 궁중에 들어가게 되면 그녀들은 궁중까지 따라 들어갔으며, 일단 궁중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문학과 학문에 열중하였다.

일본에서 가장 뛰어난 문학작품으로는 9세기 말~10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다케토리 모노가타리(竹取物語)》이다. 이 작품은 대나무 속에서 태어난 가구점 딸이 펼치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중간마다 귀족들에 대한 비판이 스며 있다.

《다케토리 모노가타리》

옛날 어느 할아버지가 나무를 하러 숲에 갔다가 대나무에서 예쁜 여자 아이를 발견하여 데려왔다. 할아버지는 그 아이를 카구야히메라 이름 짓고 애지중지 길렀다. 어느덧 카구야히메는 아름답게 성장하여 귀공자 5명과 황제의 청혼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카구야히메는 모든 청혼을 거절하고 자신을 맞으러 온 달나라의 수레를 타고 하늘로 돌아간다.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일본 산문 문학의 황금기는 10세기 말~11세기 초이며, 이 시기의 작가 대부분은 궁정여인들이었다. 그들은 정서를 31음절로 된 시나 일기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이들 작품 중에는 여행기도 있었으나 궁정의 호화로운 생활과 남녀 간의 애정을 묘사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시기의 유명한 작품은 11세기 초에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가 쓴 장편소설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이다. 이 작품은 헤이안 시대의 문학으로서뿐만 아니라 일본 문학이 세계 문학에 공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22세 때 남편인 노부타카[藤原宣孝]와 사별한 후 좌대신 미치나가의 저택에 출입하게 되었으며, 《겐지 모노가타리》는 그때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녀는 미치나가의 딸 쇼시의 시중을 들기 위해 1007년 궁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겐지 모노가타리》 54권을 완성시켰다.

《겐지 모노가타리》의 주인공은 히카루 겐지[光源氏]는 황족의 신분에서 백성의 신분인 겐지[源氏]로 격하된 인물이었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재다능한 주인공 히카루 겐지가 많은 여성들과 교제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일들을 서술한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히카루 겐지 외에 3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며 그들이 활약하는 무대도 수도를 비롯하여 키나이 지방은 물론 멀리 규슈에 이른다. 중심인물로는 히카루 겐지와 그의 후처 무라사키노우에[紫の上]가 주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겐지 모노가타리》에 나타난 독특한 필치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처럼 공감을 주며, 풍부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세계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서로 사랑하는 마음 자세를 갖자고 말하고 있다.

《겐지 모노가타리》

일본 귀족의 생활을 화려하게 그려낸 《겐지 모노가타리》는 이후 일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모노가타리》와 비견되는 작품으로 세이쇼나곤[淸少納言]의 《마쿠라노소시(枕草子)》가 있다.

세이쇼나곤은 기요하라[淸原元輔]의 딸로 이치죠 천황의 황후 데이시를 섬겼으며, 무라사키 시키부보다 15세 연상이었다. 그녀는 981년 결혼하고, 993년 30세 되던 해에 황후 데이시를 섬기게 되었다.

어느 날 황후 데이시가 여러 시녀들이 있는 곳에서 무심코 한마디 하였다.

“향로봉(香爐蜂)의 눈은?”

다른 시녀들은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 어리둥절 했으나 세이쇼나곤은 즉시 일어나 드리워져 있던 주렴을 걷어올렸다. 황후는 이 같은 세이쇼나곤의 재치 있는 행동에 감탄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세이쇼나곤은 중국 당나라의 《백씨문집(白氏文集)》각주1) 에 실린 ‘향로봉의 눈을 보기 위해 주렴을 높이 걷어 올렸네!’라는 시구를 떠올리며 주렴을 걷어올렸던 것이다. 이런 점을 미루어 세이쇼나곤은 한시에도 풍부한 지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라사키 시키부도 쇼시에게 《백씨문집》을 가르쳤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은 여성이지만 한학에 대한 조예가 꽤 깊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문학 이외에도 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에는 서예와 회화가 발달하였다. 서예는 한자삼필(漢字三筆)로 일컬어지는 사가 천황, 구카이[空海], 다치바나[橘逸勢]와 회화에서는 중국풍의 화법인 당화(唐畵)와 일본풍의 화법인 야마토화(大和畵)가 유행하였다. 당시의 예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화공 구다라[百濟河成]와 공장(工匠) 히다[飛驒工]가 각기 그들의 기예를 겨루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어느 날 화공 구다라는 공장 히다로부터 집을 새로 지었으니 한번 방문해 달라는 초대를 받았다. 구다라가 그 집을 방문해 보니 네 귀퉁이가 번듯한 훌륭한 집이었다. 주인 히다가 안에서 손짓을 하며 그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러나 구다라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문이 스스로 닫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른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그쪽 문도 마찬가지였다. 동쪽 문으로 가면 동쪽 문이 닫히고, 서쪽 문으로 가면 서쪽 문이 닫히는 바람에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단단히 골탕을 먹은 구다라는 잔뜩 부아가 난 채 돌아가고 말았다.
며칠 후 이번에는 구다라가 히다를 초청하였다. 히다가 구다라의 집을 살펴 보니 장지 뒤쪽에 보기에도 역겨운 검푸른 시체가 가로놓여 있고 악취가 코를 찔러 견딜 수가 없었다. 질겁하고 돌아서는 히다의 등 뒤에서 구다라의 웃음 섞인 말이 들려왔다.
“그것은 시체가 아니라 내가 그린 그림이라고!”

이 이야기는 구다라의 그림 솜씨와 히다의 건축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가나문학이 발달했던 이 시대에는 문학작품을 그림으로 담아 표현하는 두루마리 그림이 많이 출간되었다. 처음에는 내용 중간에 삽화 정도로 들어가던 그림이 차츰 그림이 주가 되고 설명이 곁들여지는 두루마리 그림으로 변천하였다.

11세기경의 두루마리 그림은 전하는 것이 없으나 12세기 것으로 여겨지는 두루마리 그림이 몇 점 전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 《겐지 모노가타리》의 두루마리 그림은 일부분만 전해지지만 화려함과 은근한 조화미가 일품이다. 또 시기산지(信貴山寺)의 전설을 그렸다는 두루마리 그림과 응천문 화재를 다룬 두루마리 그림은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밖에 11세기 후반에 그렸다는 〈쵸주기가(鳥獸戱畵)〉는 일본 최고(最古)의 예술 만화로 평가되고 있다.

〈쵸주기가〉

동물을 의인화하여 그린 풍자화. 그러나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일본사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신화시대부터 현대까지 일본의 수많은 사건과 역사적 변천을 체계적으로 수록했다. 야마토 정권, 귀족정치의 대두, 무사정권의 수립과 군웅할거 시대, 메이지 유신과 전쟁 등..펼쳐보기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Daum백과] 헤이안 시대 가나문자와 문화이야기 일본사, 김희영, 청아출판사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