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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태평양을 넘어서
세키가하라의 싸움이 있기 전해인 1599년 이에야스는 후시미 성에서 한 사람의 스페인 선교사를 소환 · 면담하였다. 그 선교사는 헤로니모 데 헤스스라는 사람으로 일찍이 필리핀에서 건너와 히데요시의 금교(禁敎) 정책에 따른 검거를 피하기 위해 숨어 있던 자였다.
이에야스는 이 선교사에게 부탁하여 필리핀 장관에게 편지를 보내도록 하였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천주교를 보호하겠으니 종전대로 친교를 회복하기 바람. 우라가를 스페인에게 개항하여 일본과의 무역을 희망함. 광산기사와 항해사를 파견해주기 바람.
헤스스는 크게 기뻐하며 이에야스의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에도에 들어가 교회를 세워 프란시스코파의 세력 기반을 구축하려 하였다.
필리핀에서도 헤스스의 편지를 받아보고 크게 만족해하였다. 그 후 우라가 항에는 스페인 상선이 이따금 드나들게 되었고 또 프란시스코파를 비롯한 도미니크회, 아우구스티노회 등의 스페인계 선교사들이 건너와 천주교를 전파하게 되었다.
이에야스는 또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와의 무역을 희망하고 있었다. 당시 멕시코는 노바 에스파냐라 불리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며, 필리핀과 멕시코 사이에 정기선(定期船)이 왕복하고 있었다. 마침 그 정기선에는 전 필리핀 장관이 타고 있었는데 이에야스는 그를 후대하여 아담스가 만든 배로 무사히 멕시코에 데려다 주었다.
얼마 후 그 답례로써 멕시코에서 사절을 보내왔는데, 사실은 그 사절의 첫째 목적은 일본 근해에 있다고 소문이 난 금은도(金銀島)를 탐색하기 위해서였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또 이에야스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는 아담스를 위시하여 신교를 신봉하고 있는 영국인과 네덜란드인들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무역을 미끼로 일본에 가톨릭을 전파하고 급기야는 일본을 그들의 식민지로 삼으려 한다고 신랄히 구교국가를 비난하였다. 금은도를 탐색한 것 자체도 일본 침략을 위한 사전 준비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들이 이처럼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비난하는 첫째 목적은 상업상의 경쟁자를 일본에서 추방하려는 속셈에서였다. 이렇게 해서 결국 스페인과 일본의 무역은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다.
센다이의 다이묘 마사무네는 그 당시 토호쿠 지방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마사무네는 이에야스와 마찬가지로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와의 무역을 희망하고 있었다. 마사무네는 에도에서 사귄 바 있는 스페인 신부 루이스 소테로의 권유에 따라 그의 가신 하세쿠라[支倉常久]를 로마교황청에 보낼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따라 하세쿠라는 소테로와 함께 1613년 가을 일본 기술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길이 32미터, 너비 10미터의 유럽풍 범선(帆船)에 몸을 싣고 180명의 승무원들을 거느리고 센다이 가까이 있는 쓰키노우라 항(月浦港)을 떠났다.
하세쿠라 일행은 멕시코에 건너가 대서양을 넘어 스페인에 상륙하였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국왕 펠리페 3세를 알현하고 마사무네의 편지를 바쳤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선교사를 보내주기 바람.
일본 상선의 멕시코 취항을 희망함.
스페인 상선이 센다이에 도착하게 된다면 크게 환영하겠음.
그 후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에 건너 간 하세쿠라 일행은 로마에 들어가 교황 파울루스 5세를 알현하였다. 그러나 하세쿠라 일행이 마드리드로 돌아왔을 때 뜻하지 않은 소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야스가 지금까지의 천주교 보호 정책을 버리고 천주교 금지 정책으로 전환했다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필리핀의 마닐라 상인들은 멕시코와 일본과의 무역이 자신들의 상권을 침해한다 하여 맹렬히 반대하고 있었다.
이 같은 사정으로 인하여 하세쿠라는 사절로서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필리핀을 거쳐 1620년 일본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1615년 히라도의 영국 상관에서는 류큐에서 가져온 고구마를 처음으로 재배하여 그 고구마를 접시에 담아 영주 마쓰라[松浦鎭信]에게 바쳤다. 고구마는 일명 당(唐)감자, 류큐감자라고도 불렸으며 언제 전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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