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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8월 4일 벨기에를 침범한 독일군은 프랑스를 일격에 항복시키기 위하여 서부 전선에 군사력을 집중시켰다. 독일군은 러시아의 거대한 힘이 미처 준비를 갖추기 전에 조속히 공격을 끝내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 9월 초 독일군은 파리로부터 약 65킬로미터 떨어진 마른 강에 도착해 있었고 프랑스군은 영국의 지원을 받아 파리를 사수하기 위한 강력한 방어벽을 구축함으로써 이곳에서의 전쟁은 일단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기타 전선에서는 치열한 공방전이 진행되는 가운데 1917년에 이르러서 연합군은 불리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니베르의 실패, 영국의 파스샹탈 공격 좌절,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가 연합 대열에서 이탈하는 등 불운한 상태가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이제 독일은 승전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1917년 4월 그때까지 중립을 지키고 있던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함으로써 연합국 측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게 되었다.

미국이 참전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독일의 무분별한 잠수함 작전에 있었다. 영국으로 수송되는 모든 물자를 단절시켜 영국을 경제적 고립 상태에 빠뜨린 후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전략에 의해 독일 잠수함은 영국으로 향해 가는 모든 선박에 대하여 국적을 불문하고 격침시켰다.

미국인의 인명과 물자 · 위신, 공해상에서 자유로운 항해 권리를 빼앗긴 미국은 격분하였고 때맞추어 독일 정부가 멕시코 주재 독일 대사에게 보내는 암호문이 영국에 탐지되어 미국에 넘겨졌다.

독일과 미국이 전쟁을 시작할 경우 멕시코는 독일 측에 가담하여 미국을 견제한다. 멕시코는 이러한 대가로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를 얻게 될 것이다.

이 암호 전문의 내용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독일에 대한 증오심을 극도로 자극시켰다.

윌슨 대통령은 독일에 대한 선전 포고의 결의를 의회에 요청하였고, 의회는 1917년 4월 6일 대독 선전 포고를 결정함으로써 미국이 참전하게 된 것이었다. 미국의 참전은 미국의 선박이 피격당한 데에 대한 보복과 미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의명분을 앞세웠다.

“미국은 세계의 민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하여 참전한다.”

윌슨 대통령

윌슨 대통령의 결정으로 미국까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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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참전으로 연합군의 사기는 높아지고 독일군의 사기는 저하되어 전쟁의 종결을 희망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1918년 윌슨 대통령은 종전 후의 국제 관계의 기본 형태를 천명하였다.

‘14개 조항’이라고 일컬어지는 윌슨 대통령의 구상은 민족 자결주의, 국제 관계에서의 민주 원칙의 공고화, 국제연맹의 창설 등이었다.

14개 조항의 속기록

1918년 1월 윌슨 대통령이 발표한 14개 조항의 속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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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패배가 명백해지자 독일군 사령관 루덴도르프는 연합군이 독일 영토를 전쟁터로 만들기 이전에 휴전하기를 원하였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독일군이 처참하게 조국에서 패배당하는 모습을 독일 국민이 보지 않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루덴도르프는 패전의 책임을 독일 황제와 군부가 지지 않고 민간 정부가 져야 한다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 구상에 따라 패전의 뒤처리를 위한 민간 정부를 급조하여 입헌 군주국 체제를 갖추도록 일을 추진하였으나 패배의 충격과 기아에 허덕이던 독일 국민들은 마침내 혁명을 일으켜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를 퇴위시키고 민주 공화국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1918년 11월 11일 혁명 정부는 독일을 대표하여 패전의 책임을 지게 되었고 오전 11시를 기하여 양측 군대는 적대 행위를 중지하고 찬란한 태양빛을 받으며 중간 지대로 걸어나오게 되었다. 이제 잔혹한 전쟁은 끝나고 평화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1919년 1월 연합국 대표들은 파리에 모여 평화 조약 체결을 위한 협의에 들어갔다. 이 협의에서는 미국 · 영국 · 프랑스 · 이탈리아 · 일본 등 5개국의 의견이 강력히 반영되었다. 한 달간의 협의 끝에 다섯 개의 협정을 완성하였는데 각기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불가리아, 터키와 개별 조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하였다. 물론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국이 독일과 체결한 협정이었다. 1919년 6월 28일 독일이 서명한 이른바 베르사유 조약은 패전국에게 가혹한 부담을 주는 것이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베르사유 조약

전승국 대표들. 좌로부터 프랑스 수상 조지 클레망소,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 이탈리아 수상 비토리오 올란도, 영국 수상 로이드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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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일본사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신화시대부터 현대까지 일본의 수많은 사건과 역사적 변천을 체계적으로 수록했다. 야마토 정권, 귀족정치의 대두, 무사정권의 수립과 군웅할거 시대, 메이지 유신과 전쟁 등..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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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유럽에서의 전황이야기 일본사,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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