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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진무 천황의 신화
기원전 660년 일본의 제1대 진무[神武] 천황이 천황의 자리에 오르기 전 어느 날의 일이다. 그는 형제와 아들들을 불러 한자리에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선조가 하늘에서 내려온 지 어언 179만 2470년이 되었소. 그 동안 이곳은 잘 다스려져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으나 멀리 떨어진 동쪽 지방의 백성들은 아직도 신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고생하는 자들이 많소. 그래서 나는 동쪽으로 수도를 옮겨 이 세상 곳곳에 신의 혜택과 평화를 심어주고자 하는데 어떻게들 생각하오?”
그러자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대답하였다.
“좋은 말씀이오. 우리들도 일찍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소. 지체하지 말고 즉시 떠나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진무 천황은 추운 겨울 날 부하들을 거느리고 배에 올라 동쪽을 향해 노를 저었다. 배는 기타큐슈(北九州)를 지나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를 거쳐 무사히 오사카(大阪)에 상륙하였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며칠 후 이코마 산(生駒山)을 향하여 다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이코마 산을 넘으려는 순간 갑자기 앞을 가로막는 무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가스네히코를 우두머리로 이코마 산 일대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는 반도(叛徒)들이었다.
마침내 진무 천황이 거느리는 부대와 반도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은 지리에 익숙치 못한 진무 천황의 부대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어 진퇴양난의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와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어두운 컴컴한 밤으로 변하며 심한 폭풍이 몰아쳤다. 너무나도 뜻밖의 사태에 모두들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황금새가 날아와 진무 천황의 활 끝에 앉았다. 그러자 온 세상을 밝힐 듯한 놀라운 광채가 발산되면서 나가스네히코가 거느리는 무리들의 눈을 부시게 하였다. 이 틈을 노려 진무 천황의 부대는 반도들을 평정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진무 천황은 가시와라를 수도로 정하고 제1대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이 이야기는 712년에 편찬된 일본 최고(最古)의 사서 《고사기(古事記)》와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록되어 있는 진무 천황의 동방정벌기다. 이 두 역사책은 일본의 중요한 사료임에는 틀림없으나 진무 천황의 즉위 연대는 사실과 다르며, 8세기 초에 《고사기》나 《일본서기》의 편찬자들이 1370여 년을 소급해서 기술한 것이다.
《고사기》나 《일본서기》의 기록에 의하면 진무 천황은 고대 야마토족[大和族]이 숭배하고 있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즉 태양신의 손자가 하늘에서 내려왔으며 그가 일본의 제1대 천황인 진무 천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규슈 히유가(日向)의 다카치호노미야(高千穗宮)에 살았다고 적혀 있다.
진무 천황이 천황에 즉위한 것이 기원전 660년이라고 하지만, 고고학상으로 진무 천황의 실재를 입증할 만한 자료는 나타나지 않고 있어 모두 가상으로 적혀진 것으로 간주된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제12대 게이코[景行] 천황 때 여러 나라를 평정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탁월한 공을 세운 인물로서 야마토 다케루노미코도[日本武尊]를 꼽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오로지 야마토 조정의 위대함과 건국의 영웅들을 찬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다케루는 게이코 천황의 셋째 아들로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용맹과 담력을 가지고 있었다. 천황은 미나미큐슈(南九州)에서 오랫동안 야마토 조정에 반항하고 있는 구마소(熊襲)를 정벌하기 위해 다케루를 파견하였다.
구마소가 있는 미나미큐슈는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험난한 곳이었다. 게다가 구마소 수장의 집은 요새처럼 되어 있어 쉽게 공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때마침 신축 낙성연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다케루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장하여 술자리에 참석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구마소의 수장은 아름다운 여인을 가까이 오게 하여 치근덕거렸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다케루는 적당한 기회가 포착되자 재빨리 칼을 뽑아 단칼에 수장의 가슴을 꿰뚫고 다시 그의 형을 내리쳤다. 시뻘건 선혈을 내뿜으며 수장은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 우리 형제들처럼 용감한 사람은 없었소. 이제 그대가 우리 형제를 죽였으니 그대야말로 천하제일의 장사요.”
구마소를 평정한 후 다케루는 여러 지방의 반항 세력을 평정하면서 이즈모(出雲) 지방에 도달하였다. 이즈모의 수장은 끈질기게 야마토 조정에 반항하는 만만찮은 자였다. 다케루는 계책을 써서 이 자를 제거하기 위해 먼저 그의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다케루는 그에게 수영을 하자고 유인한 후 물에서 먼저 나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목검(木劍)과 그 자의 칼을 바꿔치기 하였다. 수영이 끝나자 다케루는 검술시합을 제의하였다. 아무런 눈치도 못 챈 이즈모의 수장은 “좋소.”하며 칼을 뽑았으나 이미 다케루의 칼이 지나간 상태였다. 이렇게 하여 다케루는 어렵지 않게 이즈모도 평정할 수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공을 세운 다케루는 야마토로 개선하였으나 휴식을 취할 겨를도 없이 이번에는 동쪽 지방을 평정하기 위해 그의 아내와 함께 출정길에 올랐다. 그는 도중에 이세 신궁(伊勢神宮)에 있는 백모 왜희(倭姬)를 방문하였다.
왜희는 그를 반가이 맞으며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천총운검(天叢雲劍)과 작은 주머니를 하나 건네주면서 말하였다.
“위급한 일이 닥치거든 이 주머니를 열어 보아라.”
동쪽으로 향한 다케루는 연승을 거두면서 사가미국(相模國)에 도착하였다.
사가미의 호족은 감언이설로 다케루를 유인하여 초목이 우거진 마른 들판에 몰아넣고 사방에서 불을 질렀다. 그들은 다케루를 태워 죽일 계획이었다. 맹렬한 불길이 열을 내뿜으며 점점 가까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때 다케루는 큰어머니가 건네준 주머니를 생각했다. 급히 주머니를 열어보니 거기에는 부싯돌이 들어 있었다. 다케루는 천총운검으로 주위에 있는 풀을 마구 후려쳐 쓰러뜨리고 부싯돌로 맞불을 놓아 위기를 모면하고 사가미의 호족을 멸하였다.
이때부터 천총운검을 초치검(草薙劍)각주1) 이라 불렀으며 천황족 수장들의 영적, 세습적 지위의 상징인 ‘삼종(三種)의 신기(神器)’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삼종의 신기에는 이 초치검 외에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몸을 상징하는 거울과 영혼의 정수로 여겨지는 구슬 목걸이가 있다. 이것들은 역대 천황이 즉위할 때 가장 중요한 징표가 되었다.
한편 첫 번째 위기를 넘긴 다케루는 미우라(三浦) 반도에서 보소(房總) 반도로 가기 위해 배에 올랐다. 그런데 이날 따라 해신(海神)이 노했음인지 금새 큰 파도가 일렁거려 배가 뒤집힐 듯하였다. 이때 그의 아내가 갑자기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든 것이었다. 다케루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잠시 후 파도가 잔잔해지면서 다케루는 무사히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다케루는 슬픔을 억누르며 동쪽의 에조(蝦夷)를 평정하고 귀환길에 올랐다. 쓸쓸함이 가득했던 다케루는 아시가라 산(足柄山) 고갯마루에서 동쪽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아즈마 하야.(아, 나의 아내여! 나의 아내여!)”
그 후 동쪽 나라를 ‘아즈마’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본사에서 《고사기》나 《일본사기》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두 역사책은 중국 문화가 일본에 수입되기 이전인 원시 일본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편협한 애국자들과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에 의해서 빛을 보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고사기》나 《일본서기》에 기록된 신화는 지나치게 미화되었고 때로는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일본에서는 이 두 역사책을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바이블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경향은 비단 초기의 신화에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개되는 역사에서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역사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두 역사책의 기록을 소개하는 경우는 그것을 사실로서 인정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 책의 내용을 소개하기 위한 것임을 밝혀둔다.
역사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비단 일본의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의 공통된 과제로써 과거에도 이에 관한 학자들의 연구가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심층적인 연구가 다방면으로 진행되고 있어 이 문제의 사실적 해명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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