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

시건국 원년으로부터 시작된 왕망의 새로운 나라 ‘신’은 왕망이 죽음으로써 멸망하기까지 겨우 15년간 계속되었다. 이 15년간은 끊임없는 혼란과 동란의 연속이었다.

왕망은 우선 전한 후기의 부패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고식적인 수습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제도 자체의 개혁을 제창하였다. 그러나 이 제도의 개혁이 현실 생활을 바탕으로 한 개혁이 아니고 태고의 주나라 시대로 복귀하는 제도였다.

관직의 명칭만 보더라도 3공(三公)·9경(九卿)·27대부(大夫)·81원사(元士)의 주나라 제도를 그대로 따랐고, 지명까지도 바꾸는 일이 있어 혼란을 가져오는 실례가 많았다. 왕망은 개명광(改名狂)이라 불릴 정도로 형식을 좋아했다.

당시 가장 문제거리로 대두된 토지의 겸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왕망은 토지를 모두 왕조의 소유로 하고 개인간의 토지 매매를 일체 허용하지 않는 이른바 왕전제(王田制)를 실시하였다.

왕전제란 한 가구의 남성이 8인 이내일 때는 9백 헥타아르 이상의 전답을 소유해서는 안 되며 이 상한선 이외의 전답은 토지가 없는 자에게 나누어준다. 또 원래부터 토지가 없는 가구에게는 1백 헥타아르의 전답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왕전제는 정전제(井田制)를 흉내낸 것으로 역사에 역행하는 제도였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이어서 3년 후에는 폐지를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예 문제도 토지 문제 못지않게 심각하였다. 왕망은 노예의 매매를 금지시킬 것을 정식으로 공포하였으나 원래 노예 문제는 주로 지주가 무제한으로 토지를 소유함으로써 야기된 문제였기 때문에 토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노예 매매를 완전 금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밖에 왕망은 제도를 개혁하는 가운데 가혹한 형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범법자가 날로 늘어나 관노(官奴)와 관비(官婢)로 전락하는 자가 많았다. 원래의 노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데다 더더욱 많은 노비가 발생하여 그 수가 10만에 달하였다.

왕망은 상공업의 부정 거래와 물가의 조작 인상, 고리대금 문제 등에 대하여도 여러 가지 개혁 조치를 강구하였으나 그 결과는 빗나가 도리어 백성을 괴롭히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었다.

한 가지 예로 화폐 제도는 15년 동안에 무려 5번이나 개혁되었는데 그때마다 화폐 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등귀하는 바람에 영세 상공업자들이 대량으로 파산하였으며 시장 거래는 물물 교환에 의해 이루어질 정도로 사회의 경제가 혼란에 빠졌다.

이처럼 사회적·경제적 위기가 수습 불가능의 상태에 이르렀는데도 조정에서는 새로 징병을 실시하여 흉노와 서역에 대하여 전쟁을 벌였다. 그 위에 매년 자연 재해가 일어나 굶주려 죽는 자가 10인 가운데 7, 8명에 이르는 참혹한 상태에 이르는 지역도 있었다.

결국 왕망의 개혁 정치는 전면적으로 실패하여 이미 통치를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하고 말았다.

왕망의 한왕(유방)조 찬탈에 아무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안중후(安衆侯) 유숭(劉崇), 엄향후(嚴鄕侯) 유신(劉信), 동군 태수 책의(翟義) 등이 군사를 일으켰으나 왕망이 파견한 군대에 의해 진압되고 말았다. 유신·책의 등의 군세는 한때 10만에 이른 적이 있었으나 정보에 빨랐던 왕망에 의해 진압되었다.

왕망의 한왕(유방)조 찬탈은 무력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대사마에서 안한공, 재형, 가황제 등으로 한 걸음씩 계단을 밟듯이 행해졌기 때문에 찬탈을 눈치챈 때는 이미 왕망이 옥좌에 앉은 후였다.

각지에서 왕망 정권에 반대하는 봉기군이 일어난 것은 왕망의 실정이 표면화되면서였다. 일반 백성 가운데는 황제가 누가 되든 백성들의 생활만 편안하게 해준다면 그 자에게 복종한다는 심리가 다분히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한 왕조 후기의 부패한 정치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왕망이 조작해낸 갖가지 상서로운 조짐과 그의 정치적 제스처에 넘어가 성천자가 나타난 것처럼 왕망의 정치를 기대하였으나 그 기대는 무너져 오히려 혼란만 더욱 심해졌고, 백성들은 왕망 정권에 반기를 들었다.

산동의 태산에서는 낭야 출신 번숭(樊崇)이 반란의 깃발을 들자 수만 명이 그 깃발 아래 모여들었다. 이들은 싸움을 할 때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기 위하여 눈썹을 붉게 물들였다 하여 적미병(赤眉兵)이라 불렀다.

호북의 녹림산(綠林山)에도 신시(新市) 출신의 왕광(王匡)과 왕봉(王鳳)을 지도자로 한 5만의 봉기군이 집결하였다. 이들은 녹림병(綠林兵)이라 칭하였다.

황하 유역의 평야 지대에는 동마(銅馬)·청독(靑犢)·대동(大彤)·우래(尤來) 등이라 칭하는 크고 작은 봉기군이 난립하여 큰 부대는 수십만 명, 작은 부대는 1만 명 이상이 집결하여 도합 수십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 부대들은 통일된 지휘 계통이 없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전국에서 봉기군이 난립하자 각 지방의 호족과 지주 계급들도 다투어 무장을 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자체 방위를 위하여 성을 쌓거나 일부 지주들은 봉기군과 연합하기도 하였다. 이들 가운데 남양 출신 호족으로 한왕(유방)조의 핏줄을 이은 유연(劉縯)·유수(劉秀) 형제가 거느린 부대가 가장 강력하였다. 이들은 녹림병과 연합하여 한왕(유방)조 부흥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왕망의 죄상을 고발하는 한편 황족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세워 경시제(更始帝)라 일컫고 완성(宛城)에 도읍하여 왕망의 타도를 외쳤다.

그 밖에 지방 군벌의 세력으로는 농서(隴西)의 외호, 촉(蜀)의 공손술 등이 있었다.

이렇듯 잡다한 세력들이 왕망의 타도를 외치고 일어나 혹은 연합하고 혹은 공격하는 혼전을 벌였다. 왕망은 이들 봉기군에 의해 장안을 포위당해 마침내 죽임을 당했다. 성천자로서 천하에 군림하려던 그의 꿈은 불과 15년 만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 15년도 혼란과 전란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최후의 승리자는 호족 집단의 지도자로 한왕(유방)조의 일원인 유수였다. 이 이가 후한 왕조의 창시자인 광무제(光武帝)이다.

광무제 유수가 한왕(유방)조의 일원이라 하지만 황제의 계통과는 아주 소원한 사이였다. 그의 시조인 장사왕 유발은 경제의 아들이다. 경제의 아들이니까 무제와는 형제간이 된다. 무제를 제외한 13인의 황자가 제후왕이 되었는데 그 가운데 장사국은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가장 총애를 받지 못했던 여성이 낳은 유발이 장사왕이 된 것이다.

장사왕의 어머니 당희(唐姬)는 원래 정희(程姬)의 시녀였다. 정희는 노왕 여(餘), 장도왕 비(非), 교서왕 단(端) 등을 낳고 경제로부터 총애를 많이 받는 여인이었다. 어느 날 밤 경제가 정희의 처소에 들렀는데 때마침 정희는 생리 기간이었기 때문에 시녀인 당희가 대역으로 경제를 모시고 장사왕 유발을 낳았다.

이 장사왕 계통에서 멸망한 한왕(유방)조를 부흥시킨 광무제 유수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