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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 중국
사1
고대 중국 역사의 기원

요순의 시대

황제가 죽은 다음 얼마 지나서 요(堯)임금이 천자가 되어 나라 이름을 당(唐)이라 했고, 순(舜)임금이 요임금의 뒤를 이어 천자가 되고 나라 이름을 우(虞)라 했다.

이 두 황제는 모두 검소하고 질박하였다. 요임금은 초가집에서 살았고 벽에는 석회를 바르지 않았으며 음식도 현미와 야채를 주식으로 하였다. 겨울철에는 겨우 한 장의 녹피(鹿皮)로 추위를 견뎠고 의복이 너덜너덜해지지 않으면 새옷으로 갈아입지 않았다. 천하에 단 한 사람이라도 기아에 허덕이거나 죄를 범한 사람이 있으면 이것이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요임금은 생각하였다.

요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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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에는 요임금의 사람됨을, “그의 어짊(仁)은 하늘과 같았고 그의 지혜는 신과 같았다. 백성들은 그를 해처럼 따랐고 구름처럼 바라보았다. 부귀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사람을 깔보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요임금은 총명하고 인정 깊었으며 하늘의 뜻을 받들고 백성들을 어린 자식처럼 사랑하는 정치를 행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은 모두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며 마음껏 태평성세를 즐겼다. 방방곡곡 어디를 가나 강구연월(康衢烟月)에 격양가가 넘쳐 흘렀다.

해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지면 집에 돌아와 쉰다
우물을 파 마시고
밭을 갈아 배를 채우니
내 살아가는 데 임금의 힘 있으나 마나일세

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哉

이 노랫소리를 듣는 요임금은 비로소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요임금이 제위에 오른 지 70여 년 세상은 변함없이 평화로웠건만 7년 동안이나 계속되는 홍수로 황하(黃河)가 넘쳐흘러 골치를 앓아야만 했다. 요임금은 치수(治水) 책임자로 곤(鯀)을 등용하였으나 9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었고 아들인 단주(丹朱) 또한 불초하여 제위를 물려줄 수가 없었다. 그는 누군가 천하를 맡아 다스릴 만한 인재에게 제위를 맡기고자 하여 널리 그 적임자를 찾았다.

“천하를 맡길 훌륭한 인재를 골라 추천하시오.”

여러 중신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으나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방제(放齊)라는 중신이 아뢰기를 “맏아드님 단주는 사리에 통달하고 총명하옵니다.”라고 말하여 제위를 아들에게 넘겨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요임금의 의사를 타진하였다.

그러자 요임금은 “아니되오. 단주는 사람이 완흉(頑凶)각주1) 하여 천하를 맡길 수 없소.” 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천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오래전부터 민주적인 사고 방식에 따라 중대한 일이 있으면 주위의 지도자들에게 의견을 물어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관용을 보였다. 당시에도 사람을 등용할 때는 지혜 있고 능력 있는 자를 추천토록 하여 선발하는 민주적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요임금과 순임금의 제위도 민주적 협의에 의해 덕 있는 사람에게 넘겨준다는 ‘선양(禪讓)’의 방식을 취했다.

또 한 사람의 중신 환두(驩兜)가 공공을 추천하였다. 이 공공은 역사에 가끔 등장하는 인물인데 요임금은 공공의 인격에 문제가 있다 하여 이를 물리쳤다. 다음에는 중신 사악(四嶽)이 곤(鯀)을 추천하였다. 요임금은 일찍이 곤이 그의 명령을 어긴 일이 있어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겼으나 다시 한 번 시험하기로 하고 그에게 치수 사업을 맡겼다. 9년이 걸려도 실적이 없었다. 이때 요임금은 점점 나이가 들어 어떻게든 후계자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될 긴박한 상황에 놓였다. 이에 요임금은 “귀족이든 숨은 선비이든 그 출신 여하를 막론하고 추천해 올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요임금은 일찍이 당시 허유(許由)라는 사람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천하를 넘겨주려 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허유는 펄쩍 뛰면서 영수(潁水)가의 기산(箕山)에 숨었다. 그 후 허유는 요임금이 다시 구주(九州)의 장을 삼으려 한다는 말을 듣자 영수에 나아가 그의 귀를 씻었다.

기산

허유가 요임금의 선양을 거절하고 숨었다는 영수가의 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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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소에게 물을 먹이러 왔던 허유의 친구 소보(巢父)가 허유의 귀 씻는 모습을 보고 그 연유를 묻자 허유가 답했다.

“못 들을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귀를 씻고 있는 중일세.”

“못 들을 말이 무슨 말인가?”

“요임금이 저번에는 나에게 천하를 넘겨준다 하더니 이번에는 또 구주의 장을 삼는다고 했다네.”

이 말을 들은 소부는 물을 먹이려던 소를 끌고 상류 쪽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허유가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소부는 “더럽혀진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상류 쪽으로 가서 깨끗한 물을 먹이려고 그러네.”라고 답하고, 소를 몰고 유유히 상류 쪽으로 갔다.

순임금의 효성

순이 아직 제위에 오르기 전 밭을 갈 때, 온갖 짐승이 그의 효성에 감동해서 코끼리가 코로 밭을 갈고 새가 발톱으로 김을 매어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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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임금의 소망은 마침내 이루어지게 되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최종적으로 후보에 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순(舜)이었다. 순은 전욱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완악(頑惡)하기로 유명한 고수(瞽膄)이다. 순의 생모가 죽자 고수는 곧 후처를 얻었다. 후처에게서 이복 동생인 상(象)이 태어났는데 양친은 모두 온화한 순을 학대하고 상만을 귀여워했다. 그러나 순은 참으면서 효도를 다했다. 그는 집을 떠나 여러 가지 일에 종사했으나 무슨 일에든지 성실하고 동료들의 모범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러한 소문은 드디어 요임금의 귀에 들어가 요임금이 불러놓고 본즉 과연 뛰어난 인재임을 알 수 있었다. 우선 순을 시험해보기 위하여 두 딸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순에게 시집보내 이들 부부 사이를 관찰하였다. 그녀들은 부도를 다하여 부부의 사이에 흠잡을 것 없이 원만하였다.

“군자의 도는 부부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듯이 이들 부부 사이를 본 요임금은 순의 능력을 인정하여 비로소 안심하게 되었다.

순임금의 두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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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순의 가정에서 말썽이 일어났다. 말썽을 일으킨 사람은 순의 이복동생 상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짜고 그의 아버지이며 순의 아버지인 고수를 꾀어 순을 죽이려 하였다.

하루는 광의 지붕을 수리케 하여 순을 지붕에 올라가게 한 후 사다리를 치우고 불을 질러 태워 죽이려 하였다. 순은 미리 준비해간 두 개의 삿갓을 펴 날듯이 내려와 위기를 모면했다. 또 한 번은 우물을 파게 한 후 순이 나오려 하자 상이 흙을 덮어 씌워 생매장하려 하였으나 순은 위험을 예측하고 옆으로 빠지는 통로를 미리 마련해 놓아서 죽음을 모면했다. 우물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온 순은 평상 위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순의 동생인 상은 “이번에야말로 순이 꼭 죽었을 것이다. 두 형수들에게 나의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하리라.” 하고 뽐내면서 집에 돌아와 보니 순이 태연한 모습으로 거문고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은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형님을 걱정하느라 몹시 속을 태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순은 전과 다름없이 부모를 극진히 받들었고 동생을 한결같이 사랑하였다. 요임금은 순의 인물됨을 높이 평가했고 이어서 여러 요직에 등용하여 시험해본 결과 모두 훌륭하였다. 순은 20세에 효행으로 유명해졌고, 30세에 등용되고, 50세에 섭정(攝政)이 되었으며 58세 때 요임금이 죽자 61세 때 정식으로 제위에 올라 39년 동안 재위하였다.

순의 치세 때도 요임금 때와 못지않은 태평성대를 구가하였으며 우(禹)·고요(皐陶)·직(稷)·설(契)·기(夔) 등의 어진 신하들이 순임금을 도와 더욱 빛나는 정치를 실현하였다. 특히 요임금의 말년부터 문젯거리로 여겼던 치수 사업을 곤의 아들 우에게 맡긴 결과 우는 탁월한 지혜와 뼈를 깎는 노력으로 마침내 치수 사업을 성공시켰다. 《사기》는 다음과 같이 우의 공적을 소개하고 있다.

“우가 몸을 돌보지 않고 애태우며 중국 천지를 13년 동안 헤매며 이룩한 그 굽힘 없는 치수 활동은 그대로 그의 인간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는 자기 집 문 앞을 지나갈 때 처자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그대로 지나쳐 동분서주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마침내는 허벅지의 살이 쭉 빠지고 정강이의 털도 빠졌으며 등은 낙타처럼 굽어 절룩거리면서 걸었다. 후에 이런 걸음걸이를 흉내내어 우의 발걸음(禹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는 일의 성과를 순에게 보고했고 순은 그 공을 치하하여 우에게 상을 내렸으며 만천하에 치수의 성공을 고함으로써 그후부터는 홍수의 피해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요임금 때에 있었던 천재지변 가운데 홍수의 피해 말고도 10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나타나 요임금을 당황하게 했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사실 이 신화는 어디까지가 믿을 수 있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판가름하기 어려우나 역사적 편린(片鱗)을 반영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옛 전설에 의하면 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가 태양신이라는 설과 제준(帝俊)이라고 불리는 천제와 그의 아내 희화(羲和) 사이에서 태어난 10인 형제가 태양이라는 설이 있다.

밭을 가는 신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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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화의 나라에 더운 물처럼 바닷물이 들끓는 탕곡(湯谷)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열 개의 태양은 매일 아침 이 탕곡 곁에 있는 부상(扶桑)각주2) 에 순번으로 올라가 검은 새의 등에 올라타고 대공을 건너 서쪽 하늘까지 갔다가 다시 탕곡으로 되돌아오면 하루가 지난다. 그 다음엔 제2의 태양, 그 다음은 제3의 태양이 순번대로 하루에 한 번씩 움직임으로써 몇천 년, 몇만 년 동안 천지는 조화를 이루어 무사하였다. 그런데 요임금 때 이들 10인의 형제가 장난삼아 한꺼번에 대공을 건너기 시작하였다. 열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다. 인간들은 타죽을 지경이었고 농작물은 모두 말라 죽었다. 그뿐 아니라 맹수와 맹금 등의 피해도 막심하였다.

성왕이었던 요임금도 이 뜻밖의 재난에는 손을 써볼 도리가 없었다. 생각 끝에 천제에게 호소하여 재난을 수습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천제는 자식들이 저지른 장난 때문에 일어난 재난이므로 이 재난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활의 명수인 예(羿)를 지상으로 보내어 사태를 원만히 수습토록 하였다. 천제에게는 이 열 개의 태양이 모두 사랑스런 아들이었기 때문에 예가 적당히 위협하여 부상으로 내려보내면 그것으로 사태는 수습되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는 장난삼아 지상에 재앙을 일으킨 이들 태양을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하여 열 개의 태양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활의 명수답게 화살은 조금도 빗나감이 없었다. 화살에 맞은 태양은 하나, 둘 떨어져 아홉 개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마지막 한 개의 태양마저 떨어지면 암흑 세계가 되어 인간은 살 수 없다. 요임금은 사람을 시켜 예의 전통에서 한 개의 화살을 훔쳐내게 하여 한 개의 태양만 하늘에 남게 하였다. 예는 다시금 맹수와 맹금을 죽이거나 사로잡으니 지상은 정상을 회복하였다.

후예사일

후예가 아홉 개의 태양을 활로 쏘아 떨어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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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는 인간을 위해 큰 공로를 세운 셈이었다. 그러나 천제는 사랑하는 아들 아홉을 죽인 예를 용서할 수가 없었고, 신적(神籍)에서 예를 제명시키고 말았다.

신의 자격을 박탈당한 예의 부부는 다시 천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 인간으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부부 사이에 불화가 그치지 않았다.

얼마 후 예는 하천(河川)의 신인 하백(河伯)이 백룡(白龍)의 모습을 하고 물 속에서 노닐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활로 쏘아 왼쪽 눈을 맞히고 하백의 아내인 절세의 미인 낙빈(洛嬪)을 가로챘다.

하백은 즉시 이 사실을 천제에게 고발하였으나 천제는 “네가 용의 모습을 하고 물 속에서 노닐었기 때문에 화살에 맞은 것이니 예에게는 잘못이 없다.” 하고 오히려 호된 꾸지람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영약을 곤륜산에 있는 서왕모(西王母)가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적에서 제명당한 예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죽지 않으면 안 될 인간이 된 것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든 죽지 않는 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예는 곤륜산으로 가 불사약을 가지고 있다는 서왕모를 만나 “불사약을 나누어 주시오.”라고 애원하였다.

예와 서왕모는 서로 아는 사이였다.

서왕모는 단 한 알의 약을 건네주면서 “이것이 마지막입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더 이상은 줄 수 없다는 다짐인 것이다. 그러나 예의 아내인 항아(姮娥)가 그 약을 훔쳐가지고 달로 도망쳐버렸다. 예는 낙심한 나머지 실의에 빠져버렸다. 예는 여지없이 아내로부터 배반당했지만 아내인 항아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하백의 처 낙빈과 놀아난 남편에게 의리 따위는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의 아내 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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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의 세계에도 남존여비의 사상이 있었는지 항아의 행위도 정당화시키지 않고 있다. 달로 도망친 항아는 남편인 예를 배반한 죄로 두꺼비 모양으로 변했다고 한다. 달에 두꺼비 모양이 생긴 것은 이때부터라고 한다.

신의 의사라고 하지만 사실은 신화를 만든 인간의 의사가 신화 속에 짙게 반영되었다고 생각된다. 남의 아내를 가로챈 바람둥이 예는 아내의 배반으로 벌을 받은 것이 되고 또한 남편을 배반한 항아도 완전 무죄가 성립하지 못하고 두꺼비의 신세가 되었다.

달을 이고 가는 여신

고구려 오괴분 4호묘의 벽화. 여신이 이고 가는 달 속에는 항아가 변했다는 두꺼비가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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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의 이야기는 매우 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삼황과 같이 사신인수(蛇身人首)라든가 인신우수(人身牛首)라는 말이 없고 불사의 영약을 필요로 하였으니 신이 아닌 인간과 같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신적에서 제명당했다는 이야기는 예가 신화와 역사 세계의 경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해주고 있다. 예의 이야기는 본질적으로는 신화이지만 어디서인지 모르게 역사적 향취를 풍기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소개했음을 밝혀둔다.

《춘추좌전》에는 예에 대하여 다른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도 요임금 때가 아니고 하(夏)나라의 태강(太康) 시대로 되어 있다. 하왕조 시대의 예는 유궁국(有窮國)의 후예(后羿)로 기록되어 있으니 동일 인물이 아닌지도 모르는 일이다. 순임금에게는 아황과 여영의 두 아내가 있었는데 아황에게서는 소생이 없고 여영에게서 외아들 상균(商均)을 낳았다. 그도 또한 불초하여 천하를 맡길 수가 없었다. 순임금도 요임금과 마찬가지로 천하를 물려줄 사람을 찾았는데 그중에서 물망에 오른 사람이 치수 사업의 성공자이며 인망이 가장 높은 우(禹)였다. 순은 제위에 오른 지 39년 되던 해 남쪽 나라들을 순행하다가 창오(蒼梧)에서 병사하였다.

순임금을 따라 상수(湘水) 부근까지 와 있던 두 왕비는 갑작스런 흉보에 비탄을 못 이겨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옆에 있는 대나무에 떨어져 얼룩진 반점(斑點)의 흔적을 남겼다. 그 후부터 소상강 부근에서는 반점이 있는 반죽(斑竹)이 나는데 이것은 그녀들의 피눈물이 변한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눈물을 흘린 두 왕비는 이윽고 세상을 떠난 남편 순임금에 대한 흠모의 정을 누를 길 없어 둘이서 얼싸안고 소상강 깊은 물에 몸을 던져 생애를 마쳤다. 후세 사람들은 두 왕비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소상강가에 사당을 지었다. 이 사당이 바로 황릉묘(黃陵廟)이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두 왕비는 소상강의 여신이 되었는데 아황은 상군(湘君), 여영은 상부인(湘夫人)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두 왕비의 이 같은 사연은 후세 사람들의 가슴에 슬픈 추억을 심어 많은 문학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게 되었다. 요·순의 역사는 신화적 색채가 짙어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어쨌든 이들 두 성군은 후세 제왕들의 이상적 군주, 이상적 정치의 실현자로 높이 숭앙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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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중국사1
이야기 중국사1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중국 고대부터 전한 시대까지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 썼다. 엄청난 인구와 광대한 국토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진정한 중국의 힘이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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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요순의 시대이야기 중국사1,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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