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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 중국
사1
진나라의 흥망

박랑사의 철퇴

시황제에게 멸망당한 6국의 관계자들은 진나라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 가혹한 법률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시황제에 대한 보복을 노리는 자들이 많았다.

시황제 29년(기원전 218) 동쪽 순행길에 나선 시황제가 박랑사를 통과할 때 갑자기 큰 철퇴가 날아와 시황제의 경호 마차에 명중하였다. 시황제가 탄 수레를 겨냥하여 던진 것이 빗나가 경호 마차를 맞힌 것이다. 시황제가 크게 놀라 급히 범인을 수색토록 하였으나 범인을 찾지 못하였다. 크게 노한 시황제는 온 천하에 영을 내려 10일 동안의 대수색 작전을 폈으나 범인을 끝내 체포하지 못하였다.

이 사건의 주범은 사실은 이보다 훨씬 뒤에 유방(劉邦)을 도와 유방으로 하여금 한나라를 창건하게 한 명참모 장량(張良)이었다. 장량은 원래 6국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멸망당한 한나라 사람이었다. 그의 조상은 한나라의 명문 거족으로 5대에 걸쳐 재상의 자리를 이어 왔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멸망시켰을 당시 장량은 아직 어려 관직에 등용되지는 않았으나 조국을 멸망시킨 진나라에 대한 적개심은 늘 그의 가슴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시황제를 암살할 용사를 널리 찾고 있었는데 놀랄 만한 힘을 가진 역사를 발견하였다. 그 역사는 120근이나 되는 철퇴를 아주 멀리까지 던질 수 있는 장사였다. 당시의 1근은 256그램이었다고 하니 약 30킬로그램의 철퇴였다. 그러나 이 철퇴는 아깝게도 빗나가 시황제 암살은 실패에 그치고 말았다.

형가의 친구였던 축(筑)의 명인 고점리도 형가의 암살 실패 사건 이후 성명을 바꾸고 숨어 지내고 있었다. 신기에 가까운 축의 솜씨만은 숨길 수가 없어 그 소문이 시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시황제는 고점리가 형가의 친구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나 너무나 축의 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에 한 번 궁중에 불러 축을 연주시키기로 하였다. 시황제는 설마 고점리가 딴 마음을 먹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고점리는 의기남아였다. 그는 생각 끝에 축 안에 납을 집어 넣어 이를 시황에게 던져 죽이려 하였다. 연주가 한창 무르익어 가자 시황제는 오직 연주 소리에 도취되어 있는 듯하였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고점리가 시황제를 겨누어 축을 냅다 던졌다. 그러나 그 축은 아깝게도 빗나가 저격 사건은 또 실패로 끝나고 고점리는 죽임을 당하였다.

이 사건 이후 시황제는 종신토록 진나라에 멸망당한 여러 나라의 사람들은 절대로 신변 가까이 접근시키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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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중국사1
이야기 중국사1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중국 고대부터 전한 시대까지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 썼다. 엄청난 인구와 광대한 국토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진정한 중국의 힘이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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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박랑사의 철퇴이야기 중국사1,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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