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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1 전한시대
흉노와의 관계
일찍이 고조가 백등에서 흉노에게 7일간이나 포위되자 진평의 기계를 써서 그 포위에서 풀려나는 일이 있었다. 그 후에도 흉노는 자주 북쪽 변방을 침범하여 한나라를 괴롭혔으므로 고조는 유경으로 하여금 화친조약을 체결하도록 하였다.
그 조약의 내용은 ‘한나라의 적장 공주(嫡長公主)를 선우의 아내로 할 것, 해마다 피륙과 곡식·술·음식 등을 보낼 것, 한나라가 흉노에 대하여 형제가 될 것’ 등으로 매우 굴욕적인 조약이었다. 화친조약을 맺은 뒤에도 흉노는 몇 차례 국경을 침범한 일이 있긴 했으나 전쟁다운 전쟁은 없었다.
혜제 3년(기원전 192) 흉노로부터 여태후에게 매우 외설적이고 무례한 편지가 날아들었다.
“고독에 번민하고 있는 나는 늪지대에서 나서 말이 마구 달리는 평원 광야에서 자랐다. 이따금 국경을 넘어 중국에 노닐기를 원하였더라. 지금 폐하(여태후)도 혼자된 몸, 나 또한 혼자 있어 두 임금이 모두 쓸쓸하니 우리 있는 것으로써 없는 것을 바꿈이 어떠하리.”
《춘추좌전》에 ‘장맥분흥(張脈憤興)’이라는 말이 있다. 혈기가 바야흐로 터질듯이 넘쳐 흘러 욕정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나도 그렇고 과부가 된 당신도 그럴 것이니 우리 잘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일종의 능멸과 조롱이 뒤섞인 것이었다.
여태후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여 당장 사자의 목을 베고 흉노를 공격하려 하였다. 즉시 제장들을 모아 이 일을 의논하니 상장군 번쾌가 먼저 말하였다.
“원컨대 신이 10만의 군대로 흉노 땅을 휩쓸고 오겠습니다.”
여러 장수들이 다 여태후의 뜻에 영합하여 “그렇습니다.” 하고 찬성할 뿐 아무도 이견을 내세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낭중(郎中)으로 있는 계포(季布)가 앞으로 나서며 “번쾌를 참형에 처해야 되겠습니다. 일찍이 고조께서 40여 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가서도 백등에서 곤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때 번쾌는 상장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번쾌가 어떻게 10만의 군대를 가지고 흉노를 휩쓸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면전에서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더구나 진나라가 오랑캐의 정벌을 너무 일삼았기 때문에 진승 등이 봉기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도 번쾌가 망녕된 말로 아첨하여 천하를 요동시키고자 합니다.” 하였다.
이때 전상에 있던 대신들은 모두 두려워하였으며 여태후는 조회를 폐회하였다.
냉정히 판단해볼 때 지금 당장 흉노와 싸울 시기는 아니었다. 여태후도 이 같은 점을 알고 그 이상 흉노 정벌의 논의는 하지 않고 계속 화친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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