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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 중국
사1
진나라의 흥망

만리장성

진의 시황제라고 하면 먼저 만리장성을 연상할 정도로 만리장성은 시황제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만리장성은 처음부터 시황제가 모두 쌓은 것이 아니다. 전국 시대에 이미 여러 제후의 나라에서 자국의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그 국경선에 장성을 쌓은 일이 있었다.

만리장성

북방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 명 시대에 증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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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의 장성은 산동반도를 둘러싸도록 낭야산에서 태산 방향으로 쌓았으며 초나라의 장성은 여수(汝水)와 한수에 걸쳐 쌓았다. 특히 진나라·조나라·연나라 등 세 나라는 북쪽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각각 장성을 쌓았다. 황하 중류의 이른바 중원에 가까운 위나라도 장성을 쌓았다.

천하가 통일되자 이 같은 장성은 오히려 교통을 방해할 뿐으로 불필요한 곳에 있는 장성은 철거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당시 북쪽에는 흉노(匈奴) 세력이 강성하여 장차 국경을 위협할 염려도 있었기 때문에 천하를 통일한 시황제로선 흉노를 저지하기 위해서도 북쪽에 있는 장성은 철거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더 보강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다.

시황제 32년 시황제가 북쪽 변방 지대를 시찰하고 있을 때 일찍이 장생불사의 영약을 구하기 위하여 동해로 떠났던 노생이 돌아와 아뢰기를 “도참설(圖讖說)에 이르기를 ‘진나라를 망치는 자는 호(胡)’라 하였습니다.”라고 하자 시황제는 이 호야말로 북쪽에 있는 오랑캐 흉노를 가리킴에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각주1)

이에 장수 몽염(蒙恬)으로 하여금 30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북쪽 오랑캐를 쫓아버리고 장성을 쌓도록 하였다. 몽염은 이 장성을 쌓는 데 있어 지형에 따라 험고한 곳을 이용하여 관새(關塞)를 만드니 임조(臨兆)에서 시작하여 요동에 이르는 연장 1만여 리에 달하는 대공사였다. 또 황하를 건너 양산(陽山)에 의거하여 구불구불 굽이를 이루면서 북쪽으로 올라갔다. 이 공사를 위하여 군사는 노숙을 해야 했고 몽염은 10여 년 동안 상군(上郡)에서 나오지 못하였다.

직도(直道)

진시황은 흉노 방비를 위해 수도 장안에서 만리장성까지 오르도스 지방으로 직도를 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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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리장성의 공사에 동원된 병사와 인부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극적 전설을 낳고 있다.

맹강녀(孟姜女)는 만리장성 축조 공사에 징용되어 간 남편을 위하여 두툼한 겨울옷을 마련하여 가지고 어려운 여행 끝에 공사 현장에 도착하였다. 오랜만에 남편을 만날 기쁨에 들떠 있던 맹강녀에게 뜻하지 않은 비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슬픔을 어떻게 다 필설로 형용할 수 있으랴! 남편의 유해라도 있으면 하고 찾아보았으나 그 유해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그녀가 통곡하여 장성 주위를 맴돌자 갑자기 성벽이 무너지면서 남편의 유해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춘추 시대 열녀로 이름난 기량(杞梁)의 아내가 전사한 남편을 위하여 통곡하자 그에 감동하여 성벽이 무너지면서 남편의 유해가 나타났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전쟁이나 부역에 남편을 잃은 아내는 몇만, 아니 몇십만에 이르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오뉴월에도 찬 서리를 내리게 한다는 여인들의 눈물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에 그 슬픈 사연을 호소하고 있다.

시황제는 널리 천하를 순행하고자 하여 그때까지 아직 길이 뚫리지 않았던 구원(九原)에 길을 내고 바로 감천(甘泉)에 도달하기를 원하였다. 몽염은 이 길을 뚫기 위하여 산을 파고 골짜기를 메꾸어 1천 8백 리에 달하는 길을 닦았다. 시황제 37년(기원전 210) 10월에 시황제가 거동길에 올라 회계에서 노닐고 해안을 따라 북으로 낭야를 향해 떠났다. 이 거동에는 승상 이사와 왕명을 출납하는 임무를 맡은 조고가 수행하였다.

작은 아들 호해는 귀염을 받고 있었는데 수행하기를 청하니 시황이 허락하였다. 시황이 낭야로 가던 도중에 병이 들어 몽염의 아우 몽의를 시켜 재를 올려 병의 쾌유를 빌게 하였으나 몽의가 채 돌아오기도 전에 시황은 사구(沙丘)에 이르러 병이 더욱 위독해졌다. 시황이 조고를 시켜 부소에게 줄 유서를 만들었다. 그 유서의 내용은 “군사를 몽염에게 맡기고 함양에 와서 나의 영구(靈柩)를 맞아 장례를 거행하라.”였다.

유서를 봉함하였으나 미처 사자에게 주기 전에 시황이 죽었다. 유서와 옥새가 다 조고에게 있었고, 다만 아들 호해와 승상 이사 및 조고와 환관 5~6명만이 시황의 죽음을 알 뿐 그 밖의 여러 신하들은 알지 못하였다. 이사는 시황이 밖에서 죽고 진정한 태자가 없으므로 시황의 죽음을 발표할 경우 예기치 않았던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국상을 비밀에 붙였다.

이 사이 이들 세 사람은 공모하여 유서를 위조하여 호해를 태자로 삼고 부소와 몽염에게는 죄를 씌워 죽음을 명하는 내용으로 바꿔 놓았다.

시황의 유해가 함양에 이르자 비로소 시황의 죽음이 발표되고 태자가 즉위하여 2세 황제가 되었다. 시황의 유해가 함양까지 운구되는 동안 악취를 막기 위하여 소금에 절인 생선을 실은 수레까지 동원되었다.

위조된 유서를 받은 부소는 곧바로 죽었으나 몽염은 이를 의심하여 재차 명령을 청문하였으나 몽염의 출세를 두려워한 조고의 음모에 의하여 결국 사약을 내려 죽게 하였다.

몽염은 죽음에 임하여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 하늘에 무슨 죄가 있기에 허물 없이 죽는단 말인가?”

또 한참 있다가 천천히 말하였다.

“염의 죄 참으로 죽어 마땅하다. 임조에서 공사를 시작하여 요동까지 1만여 리가 되는 장성을 쌓았으니 그 가운데는 어찌 지맥(地脈)을 끊은 곳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게 바로 염의 죄다.”

그리고는 약을 마셔 죽었다.

몽염의 이 같은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말했다.

“모든 백성들의 평화를 닦아야 한다고 극간하지 못하고 시황의 뜻에 영합하여 공사를 벌인 것이야말로 몽염의 죄이거늘 무슨 지맥 끊은 일에 죄를 돌리려고 한단 말인가!”

일찍이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한 후 분서갱유 등 독재 정치를 감행하자 그의 장자 부소는 이를 극간하다가 시황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결국 함양에서 쫓겨나 몽염 장군에게 가게 되었다. 내쫓긴 명목은 몽염 장군을 감독케 한다는 것이었으나 엄격히 판단해보면 당시의 진나라 형편으로는 시황제의 이 같은 조치가 전연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만약 몽염 장군이 은밀히 반란을 꾀하여 흉노와 결탁하여 남쪽을 공격한다면 활력을 잃은 당시의 진나라로선 과연 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시황제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몽염 장군을 감독하는 임무가 막중함을 알았고 자신의 장자 부소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내쫓는 척하면서 몽염 장군 있는 곳으로 보낸 것이 시황제의 본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같은 인사 조치는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호해에게 제위를 물려주는 결과를 낳았고 그로 인하여 진왕조는 불과 15년의 단명 왕조로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시황제의 각석문자 탁본

시황제는 태산에서의 봉선 의식을 행한 최초의 인물로, 그 각석문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또 그는 10년간 5차례나 순행을 했는데 이는 각지의 실정을 알아봄과 동시에 황제가 받은 하늘의 기를 지방에 나누어준다는 의례적 행위이기도 했다. 그가 스스로의 덕을 찬양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의 각석 탁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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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중국사1
이야기 중국사1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중국 고대부터 전한 시대까지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 썼다. 엄청난 인구와 광대한 국토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진정한 중국의 힘이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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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만리장성이야기 중국사1,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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