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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 중국
사1
진나라의 흥망

한초의 쟁패

한왕(유방) 유방은 한신의 계책에 따라 그 해 8월에 옛길을 따라 동쪽으로 진출하여 관중의 옹(雍)을 공격하였다. 이 옛길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길이어서 기습 작전에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유방의 군사는 순식간에 옹왕 장한을 무찌르고 장한이 도망하자 다시 그를 추격하여 포위하였다. 또 여러 장수를 파견해서 각지를 공격하니 새왕 장사흔과 책왕 동예 등은 모두 싸우지도 못하고 항복하였다. 유방은 눈 깜짝할 사이에 넓은 관중의 땅을 차지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항우는 몹시 격분했다. 그는 당장 유방을 치고 싶었으나 제나라 전영도 쳐야 하고 또 조나라가 제나라와 연합하여 배반할 기미마저 보여 전영을 칠 것인가 유방을 칠 것인가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장량으로부터 항우에게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왕(유방) 유방은 약속된 직(職)을 받지 못하여 관중의 왕이 되고자 합니다. 약속대로 관중의 왕만 된다면 그 이상 동쪽으로 진출할 생각은 없을 것입니다. 또 근자에 제나라·조나라가 힘을 합하여 초나라를 멸망시키자는 내용의 밀서를 그들의 밀사로부터 빼앗아 동봉하오니 헤아려 주시옵소서.”

장량의 편지 속에는 ‘제나라·조나라가 연합하여 초를 멸망시키자’라는 내용의 밀서가 들어 있었다.

장량의 편지를 받은 항왕은 먼저 북쪽의 제나라부터 토벌키로 하였다. 장량은 편지 한 통으로 항왕의 마음을 움직여 제나라를 치게 하고 그 사이에 유리한 공격을 펼칠 계획이었다.

제나라를 공격하기로 한 항왕은 동원령을 내려 구강왕 경포에게 출병을 명했으나 경포는 병을 핑계삼아 자신은 출전치 않고 수천 명의 군사를 부하 장수에게 인솔시켜 보내왔을 뿐이었다.

항우는 화가 나서 “나는 저를 우대하여 제후로 삼았거늘 벌써부터 마음이 달라지다니 어디 두고 보자.”하며 그를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항우는 싸움에는 강했다. 친히 군대를 이끌고 북상하여 전영을 격파했다. 전영은 목숨을 구하여 평원까지 달아났으나 그곳에서 주민들에게 살해되었다. 항우는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 제나라의 성을 불사르고 항복한 제나라 병사를 또 구덩이에 생매장하였다.

전영의 아우 전횡(田橫)은 그동안에 흩어졌던 제나라 병사들을 모아 성양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싸움에 지기만 하면 어김없이 몰살당할 것이므로 전횡의 군사는 필사적으로 항전하였다. 이 때문에 항우는 팽성으로 개선하지 못하고 제나라에 머물러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한왕(유방) 유방은 함곡관을 넘어 하남을 평정하고 남으로 평음진을 건너 낙양의 신성에 이르렀다. 이때 신성의 삼로(三老)각주1) 동공(董公)이 한왕(유방)을 설득하였다.

“무릇 싸움에는 대의명분 없이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항우는 무도하게도 의제를 시해했으니 이것은 천하의 역적입니다. 대왕께서는 인의를 위하여 마땅히 3군의 무리에게 의제를 위하여 소복으로 상을 거행하게 하시고 널리 제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린 다음 항왕을 공격하소서.”

이에 한왕(유방)은 의제의 상을 발표하고 제후들에게 사자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고하였다.

“천하가 모두 의제를 내세워 우리는 모두 의제를 섬겼다. 그런데 지금 항우는 의제를 추방하여 시해했으니 이것은 천하의 역적이다. 과인이 스스로 의제의 상을 발표하여 군사들은 모두 소복으로 거상하게 하고 관중의 병사와 삼하(三河, 하남·하내·하동)의 병사를 거두어 남쪽으로 강한(江漢)을 타고 내려가 제후왕을 따라 의제를 시해한 초의 역적을 격살하려 하노라.”

한왕(유방)의 이 같은 통고를 받은 제후들은 의제를 시해한 항왕의 처사에 분개하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군사를 동원하여 한왕(유방)의 휘하에 들어오니 이로써 유방은 다섯 제후의 군사 56만을 거느릴 수가 있었다. 낙양으로부터 항우의 수도인 팽성까지는 황하와 회하가 뒤얽혀 흐르는 지대였다. 한왕(유방)은 주로 수로를 이용하여 동쪽으로 팽성을 향해 진격하였다.

이때 항우는 끈질기게 항전하는 제나라를 치기 위해 성양에 있었다. 한왕(유방)이 팽성을 향해 진격한다는 소문을 듣고서도 먼저 제나라를 평정한 다음에 한왕(유방)을 공격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팽성은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유방의 군대는 힘 안 들이고 팽성을 함락하였다. 팽성에 입성한 한군은 금은보화와 미녀들을 끌어안고 날마다 전승 축하연을 벌였다. 군기는 문란해지고 사기 또한 엉망이었다. 병력의 수만을 믿고 항우의 반격에 대비하는 방어 태세가 소홀하였다.

팽성의 함락 소식을 들은 항우는 왈칵 성을 냈다. 그는 포위 중에 있는 군사 가운데서 정병 3만을 골라 부대를 편성하여 팽성을 향해 말을 달렸다. 이때 한군은 항우가 동쪽에서 공격해올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항우는 한군의 허를 찔러 새벽에 서쪽 소현(蕭縣)을 무찌르고 동쪽으로 팽성에 육박하여 정오 무렵에 한군을 크게 깨뜨렸다. 한군은 패하여 모두 곡수·사수(穀水·泗水)로 달아나니 항우는 이를 추격하여 10여만 명을 죽였다. 항우는 계속 한군을 추격하여 수수(雎水)에 이르렀다.

수수의 낭떠러지까지 쫓긴 한군은 진퇴유곡의 함정에 빠졌다. 앞에는 강이 가로막혀 있고 뒤에서는 추격이 급하였다. 한군은 강으로 뛰어들었다. 서로 짓밟혀 죽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수수에 떨어져 죽은 한군은 무려 10만 여명에 달했다. 강물이 시체에 막혀 흐르지 못할 지경이었다.

항우군은 유방의 본진을 세 겹으로 포위하였다. 하늘로 솟아 오르고 땅을 파고드는 재주가 없으면 꼼짝 없이 죽어야 할 급박한 운명에 놓여 있었다.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체념 비슷한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고 있을 때, 갑자기 서북쪽으로부터 일진 폭풍이 불어닥쳐 나뭇가지가 꺾이고 집이 무너지며 돌과 모래가 하늘로 휘말려 올라가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밤과 같았다. 항우가 거느린 초군이 크게 놀라 사방으로 흩어지며 어지러워졌다.

유방은 이 혼잡한 틈을 타서 수십 기를 데리고 포위망을 뚫고 도망칠 수가 있었다.

유방은 고향인 패에 들러 가족들을 데리고 가려 하였다. 유방이 패로 도망친 것을 안 항우군은 급히 추격해왔다. 이 소문을 들은 유방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피하고 집에 없었기 때문에 한왕(유방)은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거리에서 겨우 아들 효혜(孝惠)와 딸 노원(魯元)을 만나 이들 두 아이를 수레에 싣고 서쪽으로 도망쳤다. 초군은 급히 추격해오고 유방의 말은 지쳐 점점 추격군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유방은 두 자식을 수레 밖으로 밀어 떨어뜨렸다. 함께 타고 있던 하후영(夏侯嬰)이 잽싸게 두 아이를 안아 올렸다. 이렇게 하기를 거듭 세 번이었으나 그때마다 하후영은 두 아이를 안아 올렸다.

유방의 가족을 돌보고 있던 심이기(審食其)는 다른 가족들은 분산시키고 유방의 아버지 태공(太公)과 여후와 함께 달아나다가 불행하게도 초군에게 발각되어 포로가 되었다. 항왕은 이들 유방의 가족들을 항상 군중에 두어 인질로 삼았다.

유방이 팽성에서 패하자 그를 따르던 제후들은 하나둘씩 유방을 배반하고 항우 쪽으로 갔다. 새왕 장사흔과 책왕 동예가 항왕에게 항복하였으며 제나라·조나라도 한왕(유방)을 배반하고 초나라와 화친을 맺고자 하였다.

한왕(유방) 유방은 앞으로의 대책을 장량과 의논하였다.

“나는 앞으로 관중 이동의 땅을 공략하는 데 있어 그 작전 지역을 각각 분담할까 하는데 누가 그 임무를 감당할 만하오?”

“구강왕 경포는 항우가 가장 아끼는 올빼미처럼 사나운 장수입니다. 항우가 제나라를 토벌할 때 경포에게 동원령을 내렸으나 경포는 병을 핑계삼아 수천의 병사를 보냈을 뿐이니 항우는 그 일로 경포를 벼르고 있습니다. 경포를 설득하여 우리 편에 끌어들인다면 가히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팽월이 제나라와 연합하여 양에서 항우에게 배반하였으니 이 또한 맡길 만한 인물입니다.

또 대왕의 장수로는 홀로 한신이 큰 일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이 세 사람에게 위임하신다면 초나라를 능히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왕(유방) 유방은 경포를 설득할 인물을 물색하였으나 적임자를 쉽게 찾지 못했다. 좌우의 사람들을 보고 “천하의 대사를 함께 계책할 사람이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로군!” 한탄하였다.

알자 벼슬로 있는 수하(隨何)가 앞으로 나오며 말하였다.

“폐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한왕(유방)이 말하였다.

“누가 능히 회남에 이르러 구강왕 경포를 달래어 그로 하여금 군대를 동원하여 초나라를 배반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항왕의 발을 두어 달만 묶어 놓는다면 내가 천하를 취하는 데에 걱정이 없을 것이다.”

“신이 청컨대 사자로 가겠습니다.”

한왕(유방)은 수하를 사자로 삼아 20명의 수행원과 함께 회남으로 파견하였다.

팽성의 싸움에서 패한 한신은 다시 군대를 수습하여 한왕(유방)과 함께 형양(滎陽)에서 만났다. 한신뿐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졌던 군사들이 형양으로 집결하였으며 소하는 관중의 노약자들을 징발하여 형양에서 합류하니 한군의 군세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항우는 유방의 형양성을 공격하였으나 한신은 초군과 싸워 경(京)·색(索) 사이에서 초군을 크게 깨뜨렸다. 유방은 이에 담으로 둘러싸인 도로를 변수(汁水)까지 이어서 오창(敖倉)의 곡식을 운반하는 보급로를 구축하였다.

오창은 천하의 곡식이 집중되는 진나라 때 만든 식량 창고로 형양 서북쪽 오산에 있었다. 이곳을 확보하기만 하면 식량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항우군은 오창의 보급로를 중점적으로 공격하는 한편 형양성을 포위하는 작전을 펴 유방군과 대치하였다.

한왕(유방) 유방이 형양에 온 것은 한왕(유방) 2년 5월의 일이었다. 그 해 6월에 위왕(魏王) 표(豹)가 어버이의 병을 핑계삼아 휴가를 얻어 돌아간 후 한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와 화친하였다. 한왕(유방)은 역이기를 위왕 표에게 보내서 달랬으나 굴복하지 않자, 8월에 한신을 보내어 위나라를 공격토록 하였다.

위왕 표는 포판에 많은 군대를 배치하고 임진(臨津)을 방어하고 있었다. 한신은 배를 이어 임진을 건너는 척하면서 군사를 몰래 하양으로 돌려 나무통으로 가교(假橋)를 만들어 강을 건너 안읍(安邑)을 기습하였다. 위왕 표는 깜짝 놀라 군대를 이끌고 한신을 맞아 싸웠으나 한신의 상대가 못 되었다. 한신은 표를 사로잡아 형양에 있는 한왕(유방)에게 보내고 위나라를 평정하였다.

위나라를 평정한 한신은 한왕(유방)에게 사람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계책을 진언하였다.

“원컨대 신에게 3만의 군사를 빌려 주시면 북쪽으로 연나라와 조나라를 평정하고 동쪽으로 제나라를 토벌하고 남쪽으로 초나라의 보급로를 끊은 다음 형양에 돌아가서 대왕과 합류할까 합니다.”

한왕(유방)은 한신의 계책을 받아들여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고 장량을 보내어 한신을 돕도록 하였다. 한신은 장이와 함께 군사 수만을 이끌고 동으로 정경을 내려가 조나라를 칠 계획이었다. 조왕과 성안군 진여는 한신이 공격해온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정경 어귀에 집결시키고 20만 명이라고 일컬었다. 광무군 이좌거(李佐車)가 성안군을 설득하였다.

“지금 한군은 승세를 타고 멀리 와서 싸우니 그 예봉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천 리 먼 곳에서 양식을 공급하게 되면 군사들이 굶주리기 쉽다 하였습니다. 지금 정경의 길은 수레가 나란히 지나갈 수 없고 기마는 대열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한군의 양식은 반드시 그 후방에 있을 것이 확실합니다. 원하옵건대 신에게 3만의 군사를 빌려 주신다면 그들의 보급로를 끊어 놓겠습니다. 족하께서는 구거(溝渠)를 깊게 하고 본진을 굳게 지키면서 그들과 교전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저들은 앞으로 나와도 싸울 수도 없고 후퇴하려 해도 돌아갈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복병이 그 후방을 끊어 약탈할 것이 없게 한다면 10일이 못 되어 두 장수의 머리를 휘하에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성안군은 광무군의 계책을 듣지 않았다.

한신은 사람을 시켜 염탐한 결과 광무군의 계책이 채용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이에 군대를 이끌고 정경을 향해 내려갔다. 정경의 어귀에서 30리 떨어진 곳에 야영하고 밤중에 군중에 영을 내려 날랜 기병 2천 명을 선발하였다. 그리고 이들 2천 명에게 붉은 기 한 개씩을 갖고 사잇길로부터 산속에 숨어 들어가 조나라의 군진을 바라보고 있으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명령하였다.

“조나라 군대는 우리가 달아나는 것을 보면 반드시 진지를 비워놓고 쫓아올 것이다. 너희들은 빨리 조군의 진지에 들어가서 조나라의 기를 뽑아버리고 한나라의 붉은 기를 세워라.”

한신은 이에 만 명을 선발대로 보내어 물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니 조나라의 군대가 바라보고 크게 웃었다(병법을 모른다 하여). 아침에 한신은 대장기를 높이 세우고 북을 치며 행군하여 정경 어귀로 진격하였다. 조나라 군대는 진지를 열고 한군을 공격하여 오랫동안 전투를 벌였다. 한신과 장이가 거짓으로 북과 기를 버리고 수상(水上)의 군진으로 달아나니 조나라 군사는 과연 진지를 비워 놓고 한나라의 기와 북을 빼앗으며 한신·장이를 추격해왔다. 한신·장이가 수상의 군진으로 들어가자 군사들은 결사적으로 조군과 싸웠다.

이 틈에 한신이 내보냈던 기병 2천 명이 일제히 조나라 진지로 달려들어가 조나라의 기를 다 뽑아버리고 한나라의 붉은 기 2천 개를 세워 놓았다.

조군은 힘껏 싸웠으나 이기지도 못하고 한신·장이 등도 사로잡지 못하였으므로 진지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조나라 진지에는 이미 한나라의 붉은 기가 꽂혀 있었다. 조군은 크게 놀라 한군이 이미 조왕의 장수들을 다 사로잡은 줄로 생각하고 혼란에 빠져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조나라 장수가 도망치는 군사를 베면서 막으려 하였으나 대세는 어찌할 수 없었다. 이에 한나라 군대가 앞뒤에서 무찔러 들어가니 조군은 대패하였다. 성안군은 참살당하고 조왕 헐(歇)은 사로잡혔다.

여러 장수들은 승전을 기뻐하면서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 이르기를 ‘산을 우편으로 배후를 삼고 물을 앞으로 왼편에 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이와는 반대로 물을 등져 진을 치고도 마침내 승리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전술입니까?”

“이것도 또한 병법에 있는 것인데 다만 제군이 살피지 못했을 뿐이다.‘죽을 땅에 빠진 뒤라야 살 수 있고, 망하는 땅에 서본 뒤에라야 존재할 수 있다’고 병법에 말하지 않았던가? 또 나는 본래부터 사대부들을 훈련시켜 따르게 한 것이 아니고 평소에 아무 훈련도 쌓지 않은 저자의 사람들을 몰아다가 싸우게 한 것이니 그들에게 살 땅을 준다면 다 달아날 것이니 어찌 그들을 부릴 수 있겠는가?”

제장이 듣고 모두 탄복하였다.

조군을 무찌른 한신은 군중에 영을 내려 광무군을 죽이지 못하게 하고 “광무군을 사로잡아 오는 자에게 천금의 상을 내리겠노라.”고 하였다. 얼마 후 광무군을 포박하여 휘하에 데리고 온 자가 있었다. 한신은 곧 그의 포승을 풀고 마주앉아 광무군을 스승의 예로 대접하고 물었다.

“내가 북으로 연나라를 치고 동으로 제나라를 치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공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광무군이 사양하여 말하였다.

“나라를 망친 대부는 나라를 보존할 일을 도모할 수 없으며 패군의 장은 무용을 말할 자격이 없다 하였습니다. 신이 어찌 대사를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한신이 말하였다.

“백리해(百里奚)가 우(虞)에 있을 때는 우가 망하고 진(秦)에 있을 때는 진나라가 패자가 되었으니 백리해가 우에 있을 때는 어리석고 진에 있을 때는 지혜로웠던 것이 아닙니다. 임금이 그의 계책을 채용했느냐 채용하지 않았느냐에 달렸을 뿐입니다. 만약 성안군이 족하의 계책을 들었더라면 신은 이미 포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원컨대 족하는 사양하지 마시고 계책을 가르쳐 주십시오.”

한신이 거듭 말하자 광무군이 입을 열었다.

“신은 들으니 지혜 있는 사람도 일천 가지 일을 생각하면 한 가지 일은 실수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일천 가지 일을 생각하면 그중에 한 가지 일은 성공한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광부의 말도 성인은 귀를 기울인다 하였습니다. 지금 장군께서는 위왕 표를 사로잡고 일거에 정경을 내려와 하루아침에 조나라의 20만 대군을 깨뜨리고 성안군을 베어 죽이니 장군의 위엄이 천하에 진동합니다.

그러나 싸움에 피폐한 군대를 몰아 갑자기 연나라의 견고한 성을 함락하려 한다면 아무리 싸우고자 하여도 지구전이 되어 힘으로써는 함락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장군을 위한 계책으로는 싸움을 정지하고 군대를 휴식시키며 조나라 백성들을 위무하고 군사들에게 술을 먹인 뒤에 연나라로 향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그 뒤에 변사를 보내어 서면을 받들고 가서 한군의 우수한 점을 알리면 연나라는 반드시 복종할 것입니다. 연나라가 이미 복종한 다음 제나라에 또 변사를 보내어 연나라가 항복한 사실을 알리게 되면 비록 지혜 있는 자가 있을지라도 제나라를 위한 다른 계책을 세우지 못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에 따르겠습니다.”

한신은 광무군의 계책에 따라 사자를 연나라에 보내니 연나라는 과연 형세만 바라보고 항복하였다.

한신은 한왕(유방)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간의 승전 상황을 보고하고 이어 장이를 세워 조왕을 삼을 것을 청하니 한왕(유방)이 허락하였다. 이로써 장이는 조왕이 되었다.

형양성에서 항우군과 대치하고 있던 유방은 점점 형세가 불리하였다. 항우군이 형양성을 포위하여 오창에서의 보급로를 차단하니 식량이 떨어져 바닥이 날 지경이었다. 군사를 굶주리게 하고 싸울 수는 없는 것이다.

유방은 강화를 희망했다. 형양을 경계로 삼아 유방은 형양 서쪽을 지배하고 항왕은 형양 동쪽을 지배하자는 조건을 내세워 항왕에게 사자를 보냈으나 항우의 아부(亞父) 범증이 이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범증은 항우에게 권하여 더욱 맹렬한 기세로 형양성을 공격하니 사태는 더욱 급박해지고 있었다.

“항우의 진영에 범증이 있는 한 강화 제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항우와 범증의 사이를 이간시켜 항우로 하여금 범증을 의심하게 하는 계략을 씀이 좋겠습니다. 대왕께서는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하고 진평(陳平)이 계책을 말하였다. 진평은 항우의 사자가 형양성에 올 것에 대비하여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항우의 사자가 형양성에 이르자 진평은 초호화판으로 차린 음식 상을 들려 가지고 나왔다. 초나라 사자를 흘끗 바라보고 놀라는 척하면서 “아부(범증)가 보낸 사자인 줄 알았더니 항왕이 보낸 사자이시군요. 이거 실례해야겠습니다.” 하고 그 음식상은 도로 물리도록 하고 대신 검소하게 차린 음식상을 내어 항왕의 사자를 접대하였다.

사자의 보고를 받은 항우는 더럭 의심이 났다. 그렇잖아도 범증의 존재가 거북스러웠는데 혹시 유방과 내통하고 있다면 그대로 둘 수 없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한 항우는 차차 범증의 권한을 빼앗아버렸다.

범증도 차차 항우에 대한 불만이 쌓였다. 홍문에서 자기 지시대로 유방을 제거했더라면 팽성에서의 수모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 형양성을 포위하는 고생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자기의 실수는 생각지도 않고 요즈음에 와서는 자신을 의심하고 권한까지 빼앗지 않았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범증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범증은 항우를 찾아가 “천하의 대세는 이미 결정이 났소이다. 이제부터는 대왕께서 직접 처리하십시오. 신은 이제 나이가 들어 고향으로 돌아가 관직 없는 백성으로 여생을 마칠까 합니다.”라고 청원하였다.

항우는 범증을 만류하지 않았다. 범증은 터질 듯한 분노를 안고 팽성을 향해 길을 떠났으나 그는 분에 못이겨 등창이 재발하여 팽성으로 가는 도중에 죽고 말았다.

항우의 진영에서 범증은 떠났지만 항우군은 더욱 포위망을 압축하여 육박해 들어왔고 보급은 끊겨 식량은 떨어지고 말았다. 유방은 더 이상 형양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장군 기신(紀信)은 자신을 희생시켜서라도 한왕(유방)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왕(유방)에게 말하였다.

“사태가 매우 급박합니다. 신이 진평과 의논하여 대왕을 탈출시킬 계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이 거짓 항복하는 척하여 초나라 군사를 속일 것이니 대왕께서는 이 틈을 타서 형양성을 빠져 나가십시오.”

한왕(유방) 유방은 기신의 충성을 마음에 새겼다.

밤이 되자 진평은 동문으로부터 여자를 포함하여 무장병 2천 명을 성 밖으로 내보냈다. 이를 본 항우의 초군이 사방으로부터 덤벼들어 이들을 공격하였다. 이때 기신이 황옥거(黃屋車)를 타고 깃털로 된 깃발을 수레 왼쪽에 휘날리며 나가자 군사들을 시켜 큰 소리로 말하였다.

“성중에 식량이 떨어져 한왕(유방)이 항복하러 나온다.”

황옥거는 노란색 비단으로 지붕을 씌운 수레로 천자가 타는 수레이고 깃털로 된 깃발 또한 천자가 탄 수레에만 달게 되어 있다. 이때 한왕(유방)은 천자가 아니었으므로 장군 기신이 초나라 군사의 이목을 집중시켜 그들을 속이기 위한 계책이었다.

한왕(유방)이 항복하러 온다는 말을 들은 초군 진영에서는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였다. 성을 포위하고 있던 장병들은 너도나도 동문으로 모여들어 한왕(유방)이 항복하는 꼴을 구경하려 하였다.

한왕(유방)은 이 틈을 타서 수십 기를 데리고 서문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한왕(유방) 유방이 항복하러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항우는 급히 동문으로 달려왔다. 항우는 황옥거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유방을 끌어내라.”

항우는 크게 소리쳤다. 끌려나온 유방의 얼굴을 살피던 항우는 깜짝 놀랐다.

“이게 누구야!”

항우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눈을 부릅떴다.

“유방은 어디 있느냐?”

“한왕(유방)께서는 이미 성을 빠져나가셨을 거요.”

기신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하였다.

“간사한 이 놈을 불태워 죽여라.”

항우는 이를 부드득 갈며 그 자리를 떠났다.

형양에서 빠져나온 한왕(유방)은 남쪽으로 달아나다가 완(宛)·섭(葉)의 중간에서 경포를 만났다. 한왕(유방)은 경포와 함께 군대를 거두어 모으면서 성고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일찍이 한왕(유방)의 알자 벼슬로 있던 수하가 구강왕 경포를 설득하러 갔다. 수하는 경포를 만나 이해 득실을 들어 설득한 결과 초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와 한편이 될 것을 허락하였으나 감히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마침 초나라 사자가 구강왕이 있는 곳에 머무르면서 급히 초나라를 도울 군대를 출동시키라고 경포에게 독촉하고 있었다. 수하는 혹시 경포의 마음이 변할까 염려하여 초나라의 사자가 숙박하고 있는 여관을 찾아가 상좌에 앉으면서 말하였다.

“구강왕은 이미 한나라와 한편이 되었는데 어찌 초나라가 군대를 출동시키라고 할 수 있는가?”

경포는 놀라고 초나라의 사자는 불끈 일어서며 경포를 노려보았다. 수하는 경포를 설득하였다.

“일은 이미 벌어졌습니다. 초나라의 사자를 죽여서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급히 한나라로 돌아가서 힘을 합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에 경포는 초나라의 사자를 죽이고 이어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초나라는 항성(項聲)·용저(龍且)로 하여금 경포를 막아 싸우도록 하였다. 수개월에 걸친 싸움 끝에 용저가 경포의 군사를 깨뜨렸다. 경포는 군대를 이끌고 한나라로 달려가고자 하였으나 항우가 죽일 것을 두려워하여 단신으로 수하와 함께 한나라로 돌아왔다.

한나라에 돌아온 경포는 다시 사람을 시켜 구강에 들어가서 그의 처자와 군대를 거느리고 돌아오도록 하였다. 초나라에서는 이미 구강의 군대를 몰수하고 경포의 처자를 죽인 후였다. 이에 경포의 사자는 경포의 옛 친구와 신임했던 자들을 찾아다니며 수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한나라에 돌아왔다.

형양성에서 장군 기신에게 감쪽같이 속아 유방을 놓친 항우군은 유방이 완·섭 사이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계속 추격전을 벌여 완성에 육박해 들어왔다. 한왕(유방)은 굳게 지키며 대세를 관망하고 있었는데 이때 팽월이 한나라 장수가 되어 게릴라전을 펼쳐 하비(下邳, 강소성)에서 항성과 설공(薛公)을 무찌르고 설공을 살해하였다.

“항성이 패하고 설공이 죽었다고!”

화가 잔뜩 난 항우는 주력부대를 이끌고 팽월을 치러 갔다. 그리고 성고성은 종공(終公)에게 맡겨 지키도록 하였다.

유방은 이 틈을 다서 종공을 깨뜨리고 성고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팽월을 치러 간 항우는 단숨에 팽월의 게릴라부대를 격파하고 이어 형양성을 함락한 다음 성고성을 포위하였다.

한왕(유방)은 성고성에서 탈출하여 홀로 등공(藤公)과 함께 동으로 황하를 건너 수무(修武)를 향해 달아났다. 수무에는 장이와 한신의 군병이 있었다. 소수무(小修武)의 전사에서 숙박한 한왕(유방)은 이른 새벽에 “한나라의 사자다.”라고 소리치며 조나라의 군진에 달려 들어갔다. 이때 장이와 한신은 아직 일어나기 전이었다. 한왕(유방)은 그들의 침실에 들어가 그들의 인부(印符)를 빼앗고 여러 장수를 지휘 소집하여 그들의 배치를 바꿔 놓았다. 이런 후에야 한신과 장이는 일어나 한왕(유방)이 와 있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

한왕(유방)은 두 사람의 군대를 빼앗고 장이에게 조나라 땅을 수비하라 명하고, 한신을 상국으로 삼아 조나라 군대 중에서 아직 징발하지 않은 자를 징집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라고 명하였다.

성고성에 포위되었던 한나라 장수들은 하나둘씩 빠져나와 한왕(유방)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항우군은 마침내 성고성을 함락하고 서쪽으로 진격해왔다. 한나라에서는 군대를 동원하여 공성(鞏城, 하남성)에서 항우군을 막아 더 이상 서진할 수 없도록 저항하고 있었다.

한편 한왕(유방)은 유가(劉賈)를 시켜 군대를 거느리고 팽월의 게릴라전을 돕도록 하였다. 팽월의 게릴라전은 항우에게는 매우 골치 아픈 일이었다. 한번 무찌르면 자취를 감추었다가 기회를 보아 초나라 후방을 어지럽히니 항우는 유방을 공격하랴 팽월을 공격하랴 동분서주하였다.

유방은 제장들을 모아 놓고 의논했다.

“나는 성고 이동의 땅을 포기하고 공성과 낙성(洛城, 낙양 동북)을 굳게 지켜 초나라의 서진을 저지하려 하는데 제장들의 의견은 어떠하오.”

역이기가 앞으로 나오며 말하였다.

“참다운 하늘의 뜻을 아는 자만이 왕업을 이룰 수 있다 하였습니다. 왕은 백성으로써 하늘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써 하늘을 삼는 법입니다. 지금 오창에는 곡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초나라에서는 형양성을 함락하면서도 오창을 굳게 지키지 않고 군사를 동쪽으로 돌렸으니 이것은 하늘이 한나라를 위해 돕는 일입니다. 대왕께서는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급히 군대를 진격시켜 형양을 빼앗고 오창의 곡식을 확보한 다음 성고의 천연적 지세를 요새화하고 태행(太行)의 도로와 비호(蜚孤)의 좁은 어귀를 막고 백마진(白馬津)을 굳게 지키면서 제후들에게 견제하는 형세를 보이면 천하의 형세는 한나라로 돌아올 것입니다.”

한왕(유방)은 역이기의 말에 따라 다시 오창을 빼앗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성고를 함락한 항우는 대사마 조고(曹咎)에게 성고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팽월을 토벌하기 위해 동쪽으로 떠났다.

“내가 여기 없는 동안 한나라가 싸움을 걸어오더라도 결코 싸워서는 안 된다. 15일 동안 굳게 지키고만 있어라. 15일 동안에 나는 반드시 팽월을 주살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리라.”

항우는 몇 번이고 조고에게 타일렀다. 한군이 자주 조고에게 싸움을 걸었으나 처음에 조고는 나와 싸우지 않았다. 한나라 진영에서는 사람을 시켜 조고에게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그래도 조고는 참고 견디었으나 5, 6일 동안을 계속하여 욕설을 해대니 조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화가 난 조고는 한군과 싸우기 위해 사수를 건넜다. 사수를 반쯤 건넜을 무렵 이를 기다리고 있던 한군은 조고의 초군을 맹렬히 공략하니 초군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 싸움에서 조고와 진의 항장 장사흔은 자결하고 말았다.

한군은 다시 진격하여 성고성을 빼앗고 광무(廣武)에 주둔하여 오창의 곡식을 확보하였다.

팽월을 토벌하기 위해 동쪽으로 떠났던 항우는 조고의 패전 소식을 듣고 다시 서쪽으로 돌아와 광무에 진을 치고 한군과 대치하였다.

오창의 서쪽 삼황산에 두 성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동쪽에 있는 성은 동광무, 서쪽에 있는 성은 서광무라 하였다. 그 거리가 2백 보 정도였다. 항우와 유방은 각각 이 두 성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서로 대치한 지 수개월이 지나도 승부는 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항우는 초조하였다. 팽월이 자주 양에서 게릴라전을 벌여 초나라 후방을 교란시킬 뿐 아니라 항우의 진영에는 식량이 떨어져가고 있었다. 항우는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냈다.

광무의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2백보 거리로 마주보고 있으니 얼굴도 보이고 목소리도 들리는 거리였다.

어느 날 항우는 높은 도마 위에 인질로 잡고 있는 유방의 아버지 태공을 올려 놓고 큰 소리로 한왕(유방)에게 말하였다.

“지금 당장 항복하지 않으면 태공을 삶아 죽이겠노라.”

한왕(유방)도 큰 소리로 응수하였다.

“나는 그대와 함께 북면하여 회왕에게 명을 받아 형제가 되기를 약속하였으니 내 아버지가 바로 그대 아버지나 다름이 없다. 그대가 반드시 그대 아버지를 삶아 죽이려거든 나에게 국 한 그릇을 나누어 보내달라.”

항왕이 화를 참지 못하고 태공을 죽이려 하자 항백이 만류하였다.

“천하의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직 알 수 없으며 천하를 위해 일하는 자는 자질구레한 가사 따위는 돌보지 않는 법이니 비록 태공을 죽인다 해도 아무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항왕은 항백의 말을 듣고 태공을 죽이지 않았다.

초군과 한군이 오랫동안 서로 버티어 결판이 나지 않으니 장정들은 병역에 동원되어 고생이 막심했고, 노약자들은 보급품을 수송하느라 극도로 피로해 있었다. 이런 상태를 언제까지고 그대로 기다릴 수는 없었다. 성미가 급한 항우는 유방에게 다음과 같이 제의하였다.

“천하가 크게 어지러운 지 수년에 백성들의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것이 모두 다 우리 두 사람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 두 사람이 한 번 싸워 자웅을 결단하면 천하의 백성들은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것 아닌가? 한 번 싸워서 자웅을 결단하자!”

유방은 웃으면서 “싸우려면 차라리 지혜로써 싸울지언정 힘으로는 싸우지 않겠다.” 하고 항우의 죄목 열 가지를 들어 항우를 공박하였다.

항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쇠뇌(강궁의 한 가지)를 당겨 한왕(유방)을 겨냥하여 힘껏 쏘았다. 쇠뇌는 한왕(유방)의 가슴을 맞혔다. 한왕(유방)은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하여 “오랑캐놈이 내 발을 맞혔다.” 하며 발을 문지르며 성 안으로 들어갔다.

한왕(유방)은 상처가 악화되어 병석에 눕게 되었다. 장량은 한왕(유방)에게 간청하여 말하였다.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일어나서 군사들을 위로하여 사졸들을 안심시키고 초나라로 하여금 승세를 타 공격해오는 일이 없도록 하셔야 합니다.”

한왕(유방)은 억지로 일어나 군사들을 위로하다가 병이 더욱 악화되어 성고성으로 돌아왔다.

한편 한왕(유방)으로부터 제나라를 공격하라는 명을 받았던 한신은 군대를 이끌고 동으로 평원 나루를 향해 가는 도중에 한왕(유방)이 이미 역이기를 시켜서 제나라를 설득하여 항복받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한신이 제나라 공격을 중지하려고 하자, 변사 괴철(蒯徹)각주2) 이 한신을 설득하였다.

“지금 장군께서는 조서를 받고 제나라를 치러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나라에서 홀로 밀사를 보내어 제나라를 항복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디 장군에게 중지하라는 조서가 있었습니까? 또 역이기는 일개 변사입니다. 수레 앞의 가로나무에 엎드려 세 치의 혀를 놀려 제나라의 70여 성을 항복받았습니다. 장군께서는 수만 군대를 거느리시고 1년여의 싸움 끝에 겨우 조나라의 50여 성을 평정하였으니 장수로 있은 지 수년이 되도록 도리어 한낱 더벅머리 선비의 공만도 못하단 말입니까?”

한신은 괴철의 말을 들어 제나라를 치기 위해 황하를 건넜다. 이때 제나라는 이미 역이기의 말을 듣고 한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강화를 맺고 한군에 대한 방비를 풀고 있었다. 한신은 제나라 역성하(歷城下)의 군대를 습격하고 그 승세를 몰아 마침내 임치에 이르니 제왕 전광(田廣)은 역이기가 자기를 속였다 하여 그를 삶아 죽이고 고밀(高密) 땅으로 달아나 초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게 하였다.

제왕 전광의 구원 요청을 받은 항왕은 용저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제나라를 구원토록 하였다. 제왕 전광과 용저의 연합군이 한신과 싸우려 하자 어떤 사람이 용저를 설득하였다.

“한나라의 군대는 멀리 와서 싸우니 힘을 다하여 싸울 것이므로 그 공격을 당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장군께서는 성벽을 높게 하여 지키면서 이미 잃어버린 성의 성주들을 불러 모아 초나라가 와서 구원한다는 사실을 알리면 그들은 반드시 한나라를 배반할 것입니다. 한나라의 군대는 2천 리나 되는 먼 길을 와서 싸우니 이미 항복했던 성들이 모두 배반하면 그들은 식량을 얻을 수가 없을 것이므로 싸우지 않고도 항복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용저가 말하였다.

“나는 평소부터 한신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다. 제 힘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지 못하고 빨래하는 아주머니에게 빌붙어 밥을 얻어먹거나 백장의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나오던 겁쟁이이니 내 어찌 한신 따위를 두려워하겠느냐.”

용저는 싸우기로 하고 유수(濰水)를 사이에 두고 한신과 마주하여 진을 쳤다. 한신은 밤에 몰래 사람을 시켜 일만여 개의 자루를 만들고 거기에 모래를 가득 채워서 유수의 상류를 막게 하였다. 그리고는 군대를 이끌고 반쯤 건너가서 용저를 공격하다가 거짓으로 지는 체 돌아서서 달아났다. 용저는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한신이 겁쟁이임을 내 알고 있었더니 과연 그렇군!”

그리고는 한군을 추격하여 물을 건너오기 시작하였다. 반쯤 건너왔을 때 한신이 막아놓았던 모랫자루를 한꺼번에 터버리자 갑자기 큰물이 밀어닥쳤다. 한군이 급히 쳐서 용저를 죽이자 용저의 군대는 우왕좌왕 하며 달아났고, 제왕 전광도 달아났다. 한신은 이들을 추격하여 제왕과 초나라 군사들을 모두 사로잡고 제나라를 평정하였다.

한신은 한왕(유방)에게 글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청원하였다.

“제나라는 거짓과 속임수를 잘 써 변덕이 심한 나라입니다. 또 남으로 초나라와 인접하고 있으니 가왕을 세워서 진정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컨대 신을 가왕으로 세워 주십시오.”

이때 한왕(유방) 유방은 형양성에서 항우군에게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한왕(유방)은 한신의 사자가 올린 글을 펴보고 크게 노하여 꾸짖어 말하였다.

“내가 지금 곤경에 처해 있는데 와서 도와주기는커녕 스스로 왕이 되겠단 말이냐?”

장량과 진평은 한왕(유방)의 발을 일부러 밟고는 사과하는 척하며 한왕(유방)의 귀에 대고 말하기를 “한나라는 지금 불리한 형편에 있습니다. 그를 세워서 왕으로 삼고 스스로 한나라를 위하여 제나라를 지키게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이 일어날 것입니다.”고 하였다.

한왕(유방)은 곧 깨닫고 다시 사자를 꾸짖어 말하였다.

“대장부가 제후를 평정했으면 마땅히 참왕이 될 것이지 어찌 가왕이 된단 말이냐?”

한왕(유방)은 장량을 보내어 한신을 세워 제왕을 삼고 그의 군대를 징발하여 초나라를 치게 하였다.

항우는 용저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우태(旴台) 사람 무섭(武涉)을 시켜 다음과 같이 제왕 한신을 설득하게 하였다.

“지금 항왕과 한왕(유방) 두 사람의 싸움에 있어 승패의 열쇠는 족하에게 있습니다. 족하가 오른편에 가담하면 한왕(유방)이 이기고 왼편에 가담하면 항왕이 이길 것입니다. 오늘 항왕이 망하면 다음엔 족하를 쓰러뜨릴 것입니다. 족하는 항왕과 옛 인연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한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와 연합하여 천하를 삼분하여 왕이 되고자 하지 않습니까?”

한신이 사절하여 말하였다.

“신은 일찍이 항왕을 섬겼으나 벼슬이 낭중에 불과하였고 지위는 집극(執戟)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계책을 드려도 채용하지 않은 까닭에 초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로 갔습니다. 한왕(유방)은 나를 상장군으로 임명하여 수만의 군대를 주었으며 스스로 옷을 벗어서 나에게 입히고 음식을 내려서 나를 먹였습니다. 진언과 계책은 채용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내가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남이 나를 깊이 신임하는데 내가 그를 배반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니 나를 위하여 항왕에게 잘 말씀 전하여 주시오.”

무섭이 떠나가자 괴철이 관상학적으로 한신을 설득하였다.

“신이 군의 얼굴을 보니 봉후(封侯)에 지나지 않으며, 군의 등을 보니 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한신이 묻자 괴철이 말하였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오랫동안 싸우는 동안에 지혜 있는 자와 용맹한 자가 함께 곤고(困苦)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그 대세로 보아 천하의 성현(聖賢)이 아니면 이 천하의 어지러움을 그치게 할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이제 두 왕의 운명은 바야흐로 족하에게 달려 있습니다. 족하가 한나라를 위하면 한나라가 이기고 초나라 편이 되면 초나라가 이길 것입니다. 진실로 신의 계책을 써주신다면 한·초 양편을 다 이롭게 하고 함께 보존하는 일이니 천하를 삼분하여 솥발처럼 버티면 그 형세 어느 편에서도 먼저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족하와 같은 성현하신 분이 제나라의 옛땅을 다스리고 교·사(膠泗)의 땅을 소유하여 제후들을 덕으로써 회유하면서 궁전 깊숙한 곳에서 손을 마주잡고 왕으로서의 예를 지키면 천하의 군왕들은 서로 이끌고 와서 제나라에 조회할 것입니다.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고, 때가 왔는데도 감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 하였으니 원컨대 족하는 깊이 생각하십시오.”

한신이 말하였다.

“한왕(유방)이 나를 극진히 대우하고 있습니다. 내 어찌 이를 탐하여 의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괴철이 또 설득하여 말하였다.

“용맹과 지략이 군주를 진동하게 하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불세출의 공을 세운 자에게는 상이 없다 하였습니다. 지금 족하는 군주를 진동하게 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으며 상받을 수 없는 공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나라로 돌아가면 초나라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며 한나라로 돌아가면 한나라 사람은 떨며 두려워할 것입니다. 족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겠습니까?”

한신이 사례하여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더 이상 말씀하지 마십시오. 나도 이 일에 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수일 후 괴철이 다시 한신을 설득하여 말하였다.

“대체로 공이라는 것은 이루기는 어렵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때라는 것은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좋은 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원컨대 족하는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십시오.”

한신은 망설이며 차마 한나라를 배반하지 못하고 괴철의 말을 사절하였다. 괴철은 자신의 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신의 곁을 떠났다.

한 문화

수렵과 수확을 하는 한나라의 생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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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중국사1
이야기 중국사1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중국 고대부터 전한 시대까지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 썼다. 엄청난 인구와 광대한 국토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진정한 중국의 힘이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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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한초의 쟁패이야기 중국사1,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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