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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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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국가를 이룩한 진시황제는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하여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는 승상 이사(李斯)에게 명하여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모든 제도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장군 몽염에게 명하여 흉노를 토벌하고 만리장성의 대공사를 감독하도록 하였다. 시황제는 자기의 정책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세력을 철저히 단속하기 위하여 역사상 유례없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하였다. 또 아방궁의 건설과 여산릉(驪山陵)의 공사 등으로 3백만 명의 무상 노역을 동원했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였다. 과중한 조세 부담, 가혹한 법과 형벌로 온 천하는 마치 감옥과 같았다.

진왕조의 지주 정권과 농민 간의 모순은 시황제가 죽은 다음해인 기원전 209년에 마침내 진승(陳勝)·오광(吳廣)이 반란을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반란을 신호로 각지에서는 진나라 타도를 외치는 반란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고 유방과 항우도 이때에 봉기하여 여러 제후들과 힘을 합쳐 진나라 타도에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에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다투게 되었다. 유방의 진영에는 소하, 장량, 한신 등의 명참모·명장이 있어 유방을 잘 보좌하였고, 항우의 진영에는 범증이 자주 계책을 진언하였으나 항우는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처음 유방에게 불리했던 전세가 날이 갈수록 유리해져 유방은 마침내 궁지에 몰린 항우를 해하(垓下)의 싸움에서 완전 고립시킴으로써 오강에서 최후를 마치게 하였다.

이 유방과 항우의 싸움은 소설 《초한지(楚漢誌)》의 무대이기도 하다. 엄격히 말할 때 진나라 타도의 수훈갑은 항우임에 틀림없었으나 마지막 승리의 열매를 거둔 것은 전한 왕조를 세운 유방이었다.

진의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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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왕조의 계보

영씨(嬴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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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중국사1
이야기 중국사1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중국 고대부터 전한 시대까지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 썼다. 엄청난 인구와 광대한 국토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진정한 중국의 힘이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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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진나라의 흥망이야기 중국사1,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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