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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가 된 무왕은 밤에도 잘 자지 않고 정사에 열중하였다. 그러다 보니 지나친 노고로 건강을 해쳐 병상에 눕게 되었다. 주왕조가 선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나라 안팎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미비점이 많았다. 군신들은 불안을 느꼈고 주공 단은 자신이 무왕을 대신하여 죽기를 빌었다. 그런 정성 때문인지 무왕의 병세가 호전되었으나 완쾌치 못하고 끝내 죽고 말았다. 태자 송(誦)이 뒤를 이으니 이가 곧 성왕(成王)이다.

성왕은 나이가 너무 어렸다. 주공 단이 섭정으로서 국사를 맡아보았지만 원래 국사란 평온무사하게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섭정이 된 주공은 겨우 이룩한 왕업을 굳건히 하고 보다 발전시키기 위하여 섭정의 권한을 넘어 보다 강력한 자세로 정치에 임했다. 동생들 중에 혹시 주공 단이 나라를 빼앗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자가 있었다.

일찍이 주왕의 아들 녹보를 은나라에 봉하면서 그를 보좌·감시토록 명령받았던 관숙선·채숙도는 녹보와 제휴하여 주공에게 반기를 들었다. 형제에게 상의도 없이 독단 전행하는 주공이 불만스러웠고 주나라 조정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나 하는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를 눈치 챈 녹보가 그들을 충동질하여 앞서의 패배를 설욕하고 은의 세력을 만회하려고 반란을 일으켰다.

주공은 단호히 그들을 토벌하려고 하자 왕실 내부에서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주공은 “만약 이런 사태를 방치한다면 애써 이룩한 선왕의 위업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하고 토벌에 나서 3년 만에 진압하였다. 《사기》에는 이 반란에 관여한 자를 관숙선과 채숙도 두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 두 사람 외에 곽숙(霍叔)이라는 동생도 이에 관여하였기 때문에 이 반란을‘삼감(三監)의 난’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 난을 진압한 주공 단은 녹보와 관숙선을 사형에 처하고 채숙도를 추방하는 한편 은의 유민들의 세력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주왕의 또 다른 아들 미자개(微子開)를 송(宋)에 봉하여 그곳으로 은의 유민을 분산, 이동시켰다. 은의 옛 땅을 위(衛)로 개칭하여 막내 동생인 강숙봉(康叔封)에게 주어 은의 유민을 다스리게 하였다.

앞서 삼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종실 일부에서는 그들의 토벌을 반대하는 자가 많았다는데 그들의 반대 이유가 논공행상에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15명이나 되는 동생 가운데 삼감의 난 진압에 선뜻 협력하고 나선 것은 소공뿐이었으며, 《사기》의 〈제세가(齊世家)〉에 이 토벌에 참가하라는 명령을 태공망에게 전한 것도 소공을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기록한 사실로 보아 당시 주공은 소공과 매우 밀접한 협력 관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공 단의 섭정은 7년 동안 계속되었다. 성왕이 성장하여 친정(親政)을 할 수 있게 되자 정권을 돌려주고 신하의 자리로 돌아왔다. 성왕의 스승으로서 정사를 보필하여 관제를 새로 정하고 새로운 주나라의 예악을 제정하는 등 그의 충성과 빛나는 업적은 후세의 귀감이 되고 있다.

주나라의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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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중국사1
이야기 중국사1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중국 고대부터 전한 시대까지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 썼다. 엄청난 인구와 광대한 국토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진정한 중국의 힘이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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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성강지치이야기 중국사1,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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