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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 중국
사1
전한시대

소하와 조참

혜제 2년 재상 소하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혜제는 친히 소하의 병상에 나가 문병하였다. 이 자리에서 혜제는 소하에게 물었다.

“후임 재상으로 누가 가합하다고 생각하시오.”

“그 신하의 사람됨을 알아보는 것은 임금만한 사람이 없다 하였습니다. 폐하께서는 누가 좋다고 생각하시옵니까?”

“조참이 어떻소?”

“잘 보셨습니다.”

소하는 조참을 후임 재상으로 천거하였다. 조참은 소하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사인(舍人)들에게 “내가 곧 입궐할 것이니 서둘러 행장을 준비하도록 하라.” 하고 말했다. 과연 잠시 후에 대궐에서 사자가 내려와 조참은 입궐하여 소하의 뒤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조참과 소하는 원래 친한 친구 사이였으나 후에 장상의 지위에 오르면서 정치적 의견이 맞지 않아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소하가 죽음에 임하여 후임 재상으로 추천한 것은 조참이었다.

조참은 재상으로서 국정을 맡게 되자 모든 일을 변경함이 없이 소하가 실시하던 규칙을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 관리들 가운데 문필과 능력보다는 충의지심이 두텁고 덕이 있는 사람을 측근으로 발탁하고 문필과 능력을 앞세워 명예를 탐하는 자를 추방하였다. 그리고 대신들이 정치적 문제에 대하여 문의하는 일이 있으면 조참은 술과 고기를 가져오라 하여 정사는 제쳐놓고 곤드레만드레 취하여 마시고 먹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다.

조참의 이 같은 행동을 본 혜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혜제는 조참의 아들을 불러 그로 하여금 조참에게 다음과 같이 묻도록 하였다.

“아버지께서는 막중한 재상의 자리에 계시면서 국정은 몰라라 하고 마시고 잡수시는 것으로 일을 삼으시니 이래서야 어떻게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조참은 불덩이처럼 성을 내어 옆에 있던 널판지 조각을 들어 그의 아들을 세차게 때리면서 “네가 무엇을 안다고 입을 놀려대느냐. 국사 같은 일은 네 따위 무리들이 함부로 입에 담을 일이 아니니라.” 하고 꾸짖었다.

이 소문을 들은 혜제는 더욱 의아한 생각이 들어 직접 조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조참은 당황하면서 “폐하에게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폐하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선제와 폐하를 비교할 때 누가 더 영명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짐이 어찌 감히 선제를 따르겠소.”

“그러면 폐하께서 신과 소하를 비교할 때 누가 더 어질다고 보십니까?”

“그대가 소하만 못한 것 같소.”

조참은 매우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폐하는 선제에 미치지 못하고 신 또한 소하만 못합니다. 선제와 소 재상은 천하를 평정하고 또한 법령과 제도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 등은 그 제정된 법령과 제도를 굳게 지켜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혜제는 조참의 의미심장한 말을 알아듣고 “좋은 생각이시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하고 조참의 의견에 찬동하였다.

여기서 ‘소규 조수(蕭規曹隨)’란 고사성어가 유래하였다. 즉 ‘소하가 제정한 법령·제도를 조참이 그대로 이어받아 지킨다’는 뜻이다.

조참의 이 같은 정치적 구상은 어디서 나왔을까? 조참은 혜제 밑에서 재상을 맡기 얼마 전에 제나라의 재상을 역임한 바 있었다. 그때 조참은 저명한 학자와 유생을 초빙하여 국가 안정책에 대한 자문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정책이 각양각색이어서 별로 참고되는 바가 없었고 그 후 조참은 교서(膠西, 산동성 고밀현 북쪽)의 대학자 개공(蓋公)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개공은 “도를 다스리는 데는 청정(淸淨)을 제일로 삼아야 하여 이렇게 함으로써 백성이 스스로 편안해진다.”라는 도리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국정을 담당하는 사람은 정치상의 규정이나 제도를 간소화해서 백성을 안심시키지 않으면 국가도 안정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사상은 ‘청정무위(淸淨無爲)’ 또는 ‘무위이치(無爲而治)’라고도 불린다.

이 같은 정치 사상은 진의 폭정과 장기간의 전란을 겪은 백성들이 생활의 안정을 갈망하던 사회 현실에 적합한 사상이었다. 이는 이미 황제나 노자의 경전 가운데 나와 있는 것으로 황노 사상(黃老思想) 또는 황노 정치라고도 불렸다. 한대 초기에 이 황노 사상을 제창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재상 조참이었다.

그 후 이 사상은 조정에까지 파급되어 궁정 내의 모든 관리들이 이 사상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마침내는 한대 초기의 정치적 지도 이념이 되었다.

한대 초기의 ‘백성에게 휴식을 제공한다’는 국가 정책은 한의 고조, 혜제, 여후에 의해 20여 년간 추진되어 나름대로의 성과를 올렸다. 역사가들은 당시의 상황을 “의식은 풍족하고, 형벌은 줄어들고, 천하는 평온하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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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중국사1
이야기 중국사1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중국 고대부터 전한 시대까지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 썼다. 엄청난 인구와 광대한 국토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진정한 중국의 힘이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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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소하와 조참이야기 중국사1,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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