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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1 진나라의 흥망
유방과 항우의 등장
진승의 봉기는 실패로 끝났으나 그가 일으킨 진조 타도의 투쟁은 그치지 않았다.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던 봉기는 일시적으로 좌절되었지만 그로부터 반년 후에는 다시 열화처럼 타올랐다. 그러나 이 투쟁의 지도권은 이미 농민의 지도자로부터 지주 계급과 6국의 옛귀족 세력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대표적 인물은 유방(劉邦)과 항우(項羽)이다. 유방의 자는 계(季)이고, 패(沛, 지금의 강소성 패현) 출신으로 진나라 때 사수(泗水)의 정장(치안 담당 하급 관리)을 지냈다. 그는 패에서 군사를 일으켜 점차 병력을 집결시킨 후 망탕산(芒碭山)에 웅거하였다. 유방이 봉기한 것은 진승이 7월에 대택향에서 봉기한 두 달 후인 9월이었다.
유방의 인상은 높은 코에 용의 얼굴이고 왼쪽 다리에는 72개의 사마귀가 있었으며 사람을 아꼈다. 주기를 좋아하여 언제나 활달하였으며 큰 도량을 지니고 있어 조그마한 집안 살림은 돌보지 않았다. 그가 일찍이 함양에 나아가 부역에 종사하고 있을 때 시황제의 위풍당당한 거마 행렬을 보고 큰 숨을 몰아쉬면서 “대장부로 태어나서 한 번 저렇게 되어볼 것이다!”라고 탄식하였다.
선보(單父) 사람 여공(呂公)은 당대의 유명한 관상가였다. 유방의 관상을 본 여공은 유방을 존경하여 말하기를 “제가 많은 사람의 관상을 보아왔습니다만 당신과 같은 관상은 본 적이 없습니다. 저의 말을 헛되이 생각 마시고 원컨대 스스로를 자중자애하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소청이 있습니다. 저에게 불초 여식이 있사오니 설거지나 하고 청소나 하는 아내로 맞아주셨으면 합니다.”
이에 여공이 그의 딸을 유방에게 주니 이 여인이 바로 나중에 여후(呂后)가 되었다.
일찍이 시황제가 살아 있을 때 항상 말하기를 “동남쪽에 천자의 기운이 서려 있다. 마땅히 그 기운을 눌러야겠다.”고 하여 동남쪽으로 순행하여 천자의 기운을 눌렀다. 천자의 기운을 누르는 의식은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 지내고 재앙을 없애달라고 기도를 드리는 의식이다. 유방이 이 소문을 듣고 마음에 짚이는 바가 있어 망탕산 깊숙이 연못가에 들어가 숨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의 부인 여후가 항상 그의 숨은 곳을 찾아왔다. 유방이 괴이하게 생각하여 여후에게 물었다.
“아무도 모르게 이 깊은 산중에 홀로 숨었는데 어떻게 번번이 찾아내시오.”
“당신 숨는 곳의 위쪽 하늘에는 항상 이상한 구름 기운이 서려 있으므로 그 구름을 보고 당신을 찾습니다.”
이 소문을 듣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처음 유방이 사수 정장의 하급 관리로 근무하고 있을 때 여산의 시황제 능묘 조영 공사에 동원되는 인부의 인솔 책임자가 되어 여산으로 가고 있었는데 도중에 탈주하는 자가 속출하였다. 유방이 생각해보니 여산까지 도달하기 전에 모두가 다 도망칠 것이 확실하였다. 유방은 난처하였다. 목적지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패에 돌아가도 처벌될 것이 뻔하였다. 유방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당신들은 모두 돌아가시오. 나 또한 이대로 도망치리다.”
동원된 인부를 해산시키자 그 가운데 수십 명이 유방을 따랐다. 당시에는 이와 같이 탈주자가 속출하였다. 진승·오광이 진조 타도를 외치고 봉기하자 순식간에 군사들이 모여들어 군세가 강해진 것은 모두 다 탈주자들의 집단이 모여들었기 때문이었다.
국경 지대에 위치한 패의 현령은 진승·오광이 봉기하자 그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골치를 앓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봉기에 가담할 생각을 굳히고 패현의 서기로 있던 소하(蕭何)와 옥리(獄吏) 조참(曹參) 등과 의논하였다.
“나리께서는 중앙에서 임명된 관리로서 이곳에 부임하여 법에 의해 백성을 다스렸기 때문에 아무리 봉기에 가담한다 하더라도 패의 장정들은 쉽게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방법은 패에서 도망쳐온 무리들을 밖에서 모아 그들로 하여금 패현의 장정들을 설득하고 압력을 가하여 나리의 뜻에 따르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소하가 진언하였다.
“패에서 도망쳐온 무리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유방이 도망쳐 백 명 정도의 무리와 함께 있는 모양입니다.”
현령은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 시점에 이르러 달리 방법이 없었다.
“유방과 연락을 취할 수 있을까?”
“번쾌(樊噲)라는 자가 유방과 아는 사이라 하오니 그를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번쾌는 패현의 관리가 아니고 개백장이었다. 자객 형가의 친구에도 개백장이 있었으니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호협(豪俠)한 성질이 있었던 것 같다.
현령은 번쾌를 유방에게 보내어 그들을 불러오도록 하였다. 번쾌가 유방의 무리를 데리고 현 가까이 도착했을 때 현령의 마음은 변해 있었다.
애당초 현령은 확고 부동한 의사에 의해 반란에 가담할 뜻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잘못하면 궐기한 백성들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 두려워 순간적으로 내린 판단이었다. 번쾌를 보낸 다음 곰곰 생각해 보니 유방과 같은 도망자를 부른 것은 실수라고 생각되었다. 진나라의 힘이 약해지기는 했으나 아직도 대규모의 병력이 있다.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지면 그 승부를 헤아리기 어렵다. 만약 진나라가 우세할 경우 반역자들은 여지없이 처단될 것이다. 이것이 현령의 속마음이었다.
“성문을 굳게 닫고 유방의 무리는 한 사람도 성 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유방과 내응하는 자는 가차 없이 목을 베어라.”
현령은 이렇게 엄명을 내리고 있었다.
딱한 것은 소하와 조참이었다. 현령은 이들의 내심을 알고 있었기에 우물쭈물하다간 죽을 것이 뻔했다. 소하와 조참은 어둠을 틈타 성벽을 뛰어넘어 유방의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탈출하였다.
당시 유방의 무리는 백 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 무리들은 모두 도망병 아니면 도망 인부들이었기 때문에 그 질이 아주 낮았다. 번쾌와 이들 일행이 성문 앞에 당도하니 번쾌의 말과는 달리 성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유방은 무슨 꿍꿍이속이 있구나 하고 의아해 있을 때 소하와 조참이 다가왔다. 소하와 조참의 설명을 들은 유방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방은 패현의 부로들에게 격문을 보내어 현령을 죽이고 궐기할 것을 종용하기로 하였다.
“패현의 부로들에게 보낼 격문을 하나 작성하시오.”
소하에게 부탁하였다.
소하는 생각하였다. 격문을 작성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보내느냐가 큰 문제이다.
“격문을 작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만 무슨 방법으로 그 편지를 성 중에 보냅니까?”
“그건 염려 마시오. 화살에 매어 쏘아넣으면 되지 않소.”
소하는 유방의 기지에 감탄했다.
격문을 받아 본 성중의 부로들은 현령의 처사에 불끈 화가 치솟았다. 무거운 조세, 가혹한 형벌, 병역, 부역 등 백성들의 원한은 직접 통치자인 현령에게 돌려지게 마련이다. 패현의 부로들은 현청에 몰려들어 현령을 주살하고 성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유방을 맞아들인 패현의 백성들은 유방을 현령으로 추대하고 패공(유방, 沛公)이라 불렀다. 소하와 조참 등이 패현의 자제들을 모으니 그 수가 모두 3천 명에 이르렀다.
유방은 휘하에 소하·조참·번쾌 등 한제국 건국 공신을 거느렸고 패현의 자제 3천 명을 기반으로 하여 제후들의 세력과 호응하게 되었다.
유방이 패에서 군사를 일으킬 무렵 절강성의 회계에서는 아버지 항연을 진나라 장수 왕전에게 잃은 항량(項梁)이 진나라에 대한 사무친 원한을 씻기 위해 군사를 일으킬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회계 군수 은통(殷通)은 강서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처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도처에서 지방관이 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 고장의 백성들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선수를 쳐야 하겠다.
이렇게 생각한 은통은 그 고장에서 이름난 항량에게 의논하였다. 항량은 초나라 명장 항연의 아들이다. 일찍이 항연은 20만 대군을 거느린 진나라 장군 이신과 싸워서는 이겼으나 60만 대군을 거느린 왕전에게 죽임을 당하고 초나라가 패망하였다. 초나라 사람들은 이 항연의 죽음을 믿지 않으려 했다. 진승과 오광이 맨 먼저 봉기할 때 초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영웅 불사설을 이용해서 항연의 이름을 사칭할 정도로 항연은 초나라 사람들에게 추앙되고 있었다.
항연의 아들! 이러한 이름으로 나서기만 한다면 초나라 군사는 너도 나도 앞을 다투어 내 깃발 아래 모여들 것이다. 진승·오광처럼 치사하게 남의 이름을 사칭하는 것이 아니라 떳떳한 항연의 아들인 것이다. 어디 한 번 일어서 보자.
회계 군수를 죽이고 이곳을 기반으로 군사를 일으킬 궁리를 하고 있을 때 군수로부터 이런 제의를 받다니 일 치고는 기이한 일이었다. 항량은 먼저 그의 조카 항우(項羽)와 의논하고 싶었다.
항량은 항우에게 사정을 설명한 다음 그 대책을 의논했다.
“숙부님, 이거야말로 하늘이 내려주신 좋은 기회입니다.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습니다. 지금 곧 군수 은통의 목을 베고 강동의 자제들을 규합시켜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항량과 항우는 회계 군수 은통을 죽일 계교를 정하고 먼저 항량이 군수의 자리에 들어가 항우를 불러들였다. 은통은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위해 항우를 불러들이는 것으로 생각했다. 항우는 군수의 자리에 다가가 다짜고짜 칼을 뽑았다. 영문을 모르는 군수가 반사적으로 일어서려 하자 항우는 일어서려는 은통의 목을 향해 힘껏 칼을 내리쳤다. 외마디 소리와 함께 피를 내뿜으며 은통의 목은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항량은 은통의 목을 집어들고 은통의 인수(印綬)를 빼앗아 자기 몸에 찼다. 인수는 관리의 신분증명서이다. 군수의 인수를 몸에 찼다는 것은 군수임을 선언한 것과 같은 뜻이다. 항량은 이번 거사의 목적을 회계 백성들에게 고하고 군 소속의 여러 현에서 8천 명에 이르는 정병을 모았다.
항우의 이름은 적(籍)이고 자가 우인데 항적보다는 항우로 불린다. 원래 하상(下相, 강소성 숙천현) 사람이었는데 그의 숙부 항량과 함께 회계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신장 8척의 대장부로 힘은 능히 산을 뽑을 만하고 겹으로 된 눈동자를 가진 희대의 장사였다. 소년 시절에 학문을 가르쳤으나 학문도 싫어하고 검술을 가르쳤으나 검술 또한 싫어하였다. 항량이 크게 실망하여 노여워하자 항우가 말하기를 “학문이란 성명을 기록할 정도면 족하고, 검술은 한 사람의 적밖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이 따위는 대장부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나는 만인의 적을 상대하여 싸우는 기술을 배우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항량은 그의 기백을 기특히 여겨 그때부터 병법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진시황제의 순행 행차가 절강성의 회계에 이르렀을 때 항량은 항우와 함께 그 행차를 구경하러 나갔다. 천자가 강남 땅에 행행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며 멀리서 천자의 행렬을 구경해도 괜찮다는 윤허가 있었던 것이다.
과연 천자의 행렬은 거창하였다. 줄이은 검은 기가 하늘을 가리웠고 앞뒤로 벌여 달리는 기마대만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호위하는 친위병들의 황금 갑주는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났고 은백색 투구는 조화 있게 흔들리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술로 장식된 말과 수레에는 채색이 영롱하였다.
“호화롭구나! 대단하구나! 천자님의 위엄은 놀랍구나!”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항우는 눈을 번득거리며 행렬을 응시하다가 “저놈의 자리를 내가 대신하겠다.”고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마, 일족이 몰살당한다.”
항량은 그렇게 꾸짖었지만, ‘이놈은 기개가 쓸 만한 놈이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칭찬하였다.
이 이야기는 유방과 항우의 인물·성격을 비교할 때 흔히 인용되는 말이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한번 저렇게 되어야지!”
“저놈의 자리를 내가 대신하겠다.”
전자는 유방의 표현이고 후자는 항우의 표현이다. 궁극적으로 같은 것을 말한 것인데 유방의 표현은 매우 완곡한 표현으로 자신은 있지만 그 자신을 숨기고 있는 데 반하여 후자는 노골적이고 직설적이다. 이 표현에서도 두 사람의 성격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유방과 항우는 연령적으로 많은 차가 있었다. 시황제가 죽던 해 항우의 나이는 22세이고 유방은 37세였다. 일설에는 46세라는 설도 있다.
그 출신에 있어서도 항우는 대대로 초나라에서 장군을 지낸 명문 출신이었고, 유방은 그의 양친의 이름이 한왕(유방)조 시대의 기록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이름 없는 서민 출신이었다.
두 사람이 군사를 일으킬 때도 유방은 행정 구역상으로도 가장 하급 단위인 패현에서 일어나 패현의 자제 3천 명을 거느렸고, 항량·항우는 여러 현을 지배하는 군에서 일어나 정병 8천 명을 거느렸다. 자제와 정병은 그 질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자제란 그저 나이가 젊을 뿐 군사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자를 가리키는 말이고, 정병이란 여러 사람 가운데서 선발하여 철저한 훈련을 받은 군사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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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유방과 항우의 등장 – 이야기 중국사1,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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