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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 중국
사1
은주시대

은의 쇠퇴

은의 주왕은 하의 걸왕과 더불어 ‘하걸은주(夏桀殷紂)’, 줄여서 ‘걸주(桀紂)’라 하여 전형적인 폭군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사기》에는 걸왕의 악역무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고 다만 덕을 닦지 않고 무력으로 백성을 해쳤기 때문에 백성이 그에 견디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주왕의 포학에 대해서는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자변첩질(資辯捷疾), 문견심민(聞見甚敏)”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주는 자질과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두뇌가 명석하여 모든 일을 듣거나 보고 그 진상을 꿰뚫어보는 눈이 날카로웠다. 재능과 체력이 뛰어나 맹수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렇듯 뛰어난 자질을 덕을 쌓는 데 쓰지 않고 반대로 나쁜 방향으로 썼던 것이다. 자기과잉(自己過剩)으로 흘러 충신이 간하는 말 따위는 아예 들은 척도 아니하고 구변 좋은 말로 자신의 비행을 덮어버리는 등 자신보다 나은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기도취(自己陶醉)에 빠진 것이다. 또 주왕은 주색에 대해서도 몹시 호탕하여 특히 달기를 미친 듯이 사랑했다. 사랑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흠뻑 빠져 이로 인해 나라를 망친 것이다.

달기는 유소씨(有蘇氏)의 딸로서 일찍이 주왕이 유소씨를 토벌할 때 유소씨가 전리품으로 바친 미녀였다.

그녀는 절세의 미인이었고 또 좀처럼 보기 드문 독보적 존재였다고 한다. 달기를 얻은 그날부터 주왕은 완전히 그 요염한 자태에 빠져 그녀의 환심을 사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했다.

“이것이 진짜 여자이다. 지금까지 많은 여자를 겪어 봤지만 그것들은 달기에 비하면 목석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이 나를 위해 특별히 내려준 여자다. … 나는 생전 처음으로 진짜 여자를 만났다. 지금까지의 여러 제왕들도 이런 여자는 구경조차 못했을 것이다.”

주왕은 달기를 얻자 미친 듯이 기뻐했다. 얻는 그 순간부터 나라를 망칠 본격적인 행동을 저질렀다.

주왕은 성품이 포학했기 때문에 감정의 표현도 극단적인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일에 대해서도 때와 장소, 기분에 따라 기복이 심했다. 그런데 그러한 감정의 기복도 달기는 자연스럽게 맞출 수 있는 재주가 있었다. 말하자면 생각과 감정이 주왕과 일체가 되어 버린 셈이었다.

주왕은 생전 처음 다른 사람과 일체되는 감정을 경험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인간이 지니고 있다는 오욕칠정(五慾七情)이 모두 일체가 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달기는 “지금까지의 궁중 음악이 마땅치 않사오니 좀 더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음악을 만들도록 함이 어떠하시온지.”

그때 주왕은 지금까지의 궁중 음악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달기는 먼저 꿰뚫어보고 있구나.’ 주왕은 속으로 생각했다. 주왕은 음악을 담당한 관원에게 명하여 더욱 관능적이고 분방한 음악을 만들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북리(北里)의 무(舞)〉, 〈미미(靡靡)의 악(樂)〉이다.

만민의 모범이 되어야 할 천자가 음란한 궁중 음악을 만들어 밤낮으로 마시고 즐기니 신하들과 백성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달기는 한 가지 일을 끝내면 다른 일을 생각해냈다. 그것도 규모가 더 크고 돈이 많이 드는 공사를 일으켰다.

천하의 재물을 모으기 위해 세금을 무겁게 매겨 녹대(鹿臺)의 금고와 거교(鉅橋)의 곡창을 세웠다. 또 사구(沙丘)의 이궁(離宮)을 확장하여 그 안에 길짐승과 날짐승 등을 놓아 길렀다.

사구의 이궁은 달기가 특히 좋아했다.

“대왕마마, 사구에 가시지 않겠사옵니까?”

사구의 이궁 돌계단 난간에 비스듬히 서서 젖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달기의 자태는 주왕이 가장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주왕이 다가서자 달기가 말하였다.

“대왕마마, 환락의 극치란 어떤 것이온지 한번 끝까지 가보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시어 제왕으로서 후회 없는 삶을 누리시옵소서.”

은나라 전차 복원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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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주지육림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연못의 물을 퍼내고 그 밑바닥과 주위를 돌로 쌓은 다음 그곳에 술을 가득 채워 마음 내키는 대로 마시고, 안주는 뜰에 있는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불고기를 마음껏 먹는 것이다. 주지육림이 완성되자 잔치가 벌어졌다.

“이 잔치에 참석하는 자는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남자는 반드시 여자 한 사람을 들쳐업고 짐이 있는 곳까지 와야 한다.”

주왕의 명이 떨어지니 참가자들은 좋든 싫든 그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뜰에 쳐졌던 장막이 주왕의 명령으로 내려지자 거기에는 천여 명이나 되는 벌거숭이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놀이를 시작하라.”

벌거숭이 신하들이 달려들자 벌거숭이 여자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달아났고 신하들은 그들을 붙들려고 쫓아다녔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올랐다. 환성도 올랐다. 숲 속 나무 밑에서 벌거숭이 남녀들이 서로 엉켰다. 신하들에게 업힌 여자들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안간힘을 쓰다가 술이 가득한 연못으로 빠져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

은 시대 무사 복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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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포락(炮烙)의 형(刑)’이 제정되었다.

포락의 형이란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바르고 그 아래 숯불을 피운 다음 죄인들을 구리 기둥 위로 걸어가게 하는 형벌이었다.

천하의 모범이 되어야 할 천자로서 하는 짓이 포악하고 백성의 재물을 무거운 세금으로 거두어 사치와 환락에 탕진하니 백성들의 고통은 말할 수 없었고 불평불만이 높아갔다. 포락의 형은 이런 불평불만을 억누르기 위한 공포 정치의 한 가지였다.

“무사히 그 기둥을 끝까지 걸어가는 자에게는 그 상으로 죄를 면해 주리라.”

불바다 위에 한 개의 구리 기둥이 걸쳐졌고, 기둥에는 미끄러지기 쉽게 기름을 칠해 놓았다. 기둥을 너무나 미끄럽게 칠하거나 불 가까이 놓으면 뜨겁고 미끄러워 한 발짝이나 두 발짝에서 쉽게 떨어지고 만다. 그러면 흥미가 없기 때문에 일부러 적당히 거리를 띄워 놓지 않으면 안 된다.

불 속에 떨어져 죽느냐? 기름 기둥을 무사히 건너서 사느냐 하는 절박한 갈림길에서 한 가닥 희망을 안고 엉금엉금 구리 기둥 위를 기어가는 죄수들의 모습은 인간으로서는 차마 볼 수 없는 잔인무도의 극치였다.

실낱만큼의 한 가닥 희망을 안고 한 발 두 발 걸어가다가 앞으로 두세 발만 걸으면 죄를 용서받고 살 수 있는 찰나에 기진맥진 불 위에 떨어져 비명을 지르고 뿌지직 살이 타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쾌감을 느끼는 달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주왕은 이 같은 잔인한 형벌을 서슴지 않았다.

당시 은왕조에는 천자의 정치를 보좌하는 삼공(三公)이 있었는데 서백창(西伯昌, 후의 주문왕), 구후(九侯), 악후(鄂侯) 세 사람이었다. 모두 당대의 고결한 인격자로서 구후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어 주왕의 부인이 되었는데 주왕의 말을 듣지 않아 죽임을 당했으며 아버지인 구후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체는 젓으로 담그어졌다.

악후는 이 사실을 간하다가 그도 역시 죽임을 당하여 그의 시체는 포(脯)로 만들어졌다. 서백은 이러한 사실을 듣고 주왕의 행동을 탄식하여 마지 않았다. 서백이 탄식했다는 사실을 밀고한 자가 있어서 서백은 유리(羑里)의 옥에 갇히고 말았다. 서백의 가신들은 놀라 미녀와 진기한 보물 등을 잔뜩 바치고 겨우 서백을 석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석방된 서백은 “제 영토의 일부인 낙서(洛西)의 땅을 바치겠사오니 제발 포락의 형만은 중지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아뢰었다. 주왕은 낙서 땅이 탐이 나 그 땅을 받기로 하고 포락의 형을 중지하였으며 서백은 고국으로 돌아가버렸다.

이처럼 삼공을 죽이거나 떠나게 한 것은 모두 달기의 계략이었다. 삼공이 있어 자꾸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간하였기 때문에 달기에게는 이들 삼공의 존재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삼공이 없어지자 아첨에 뛰어나고 사리사욕밖에 모르는 비중(費中)과 악래(惡來)를 등용하여 점점 가혹한 정치를 펴고 더욱 음란에 빠졌다.

은왕조의 여러 충신들은 멸망해가는 은왕조를 구하기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주왕에게 간하였다. 서형인 미자계(徽子啓), 충신 조이(祖伊) 등이 간했으나 그들의 간언을 들은 척도 하지 않자 모두 자취를 감추어버렸고 왕자 비간(比干)은 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간했으나 듣기는커녕 더욱 심해만 가는지라 이에 목숨을 걸고 사흘에 걸쳐서 주왕에게 간하였다.

그러자 주왕은 “나는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고 들었다. 과연 비간의 심장에 일곱 개의 구멍이 있는지 조사해 보자.” 하고 마침내 비간을 죽여 그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기자(箕子)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거짓 미치광이가 되어 노복이 되었다가 주왕에게 발견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 밖에도 임신한 여자의 자궁을 갈라 그 속에 무엇이 있나 보려고 한 일이 있었다. 또 기수(淇水)라고 하는 강에서 어떤 노인이 강을 건너지 못해 안절부절하자 주왕이 그 까닭을 물었다. 측근이 “노인은 뼈 속에 골이 비어 다리가 시려서 못 건너는 것이옵니다.”라고 답하자, “그러면 골이 어떤 것인지 보아야겠다.”라며 노인의 종아리를 잘랐다.

이러한 주왕의 포학 무도한 정치로 은나라는 공포에 뒤덮여 머지않아 붕괴되는 운명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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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중국사1
이야기 중국사1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중국 고대부터 전한 시대까지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 썼다. 엄청난 인구와 광대한 국토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진정한 중국의 힘이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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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은의 쇠퇴이야기 중국사1,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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