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국을 말하다
2008년은 드라마에게 혹독한 한 해
미드는 허리케인이었다. 미드는 한국 드라마의 위기론까지 불 지피며 드라마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만큼 영향을 주었고, 미드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으로 '머니 게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투입한 대작 드라마가 경쟁적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대작 드라마는 하나같이 신통치 않은 성적을 낳았다. 매체 환경의 변화에 따른 젊은 층의 지상파 이탈과 미드로 인해 높아진 시청자의 눈높이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스타의 몸값은 계속 뛰어오르고 한류 열풍마저 퇴조해 드라마 산업 거품론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런 가운데 닥친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불황은 드라마 업계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 광고 판매율 하락이라는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생활 사극을 개척한 이병훈 PD의 야심작 〈이산〉은 30퍼센트를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초창기 시청률이 낮아 제대로 거두지 못한 광고 수익을 회수하기 위해 당초 60부작이었던 드라마를 77부작으로 늘리는 고육책을 쓰기까지 했다. 2008년 가을 개편에서 지상파 방송 3사가 약속이나 한 듯 드라마 1편씩을 폐지한 것도 자구책 마련의 성격이 짙었다. 이게 시사하듯, '킬러 콘텐츠'로 불리며 호황을 누렸던 드라마는 2008년 폐지 1순위로 거론될 만큼 대단히 혹독한 한 해를 보내야 했다.
드라마 산업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드라마 업계는 그 해답을 '제작의 경제성'과 '대중성'에서 찾았다. 적은 제작비로 비교적 안정적인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이른바 '실속 드라마'였다. 제작비 대비 수익률이 높은 실속 드라마의 대표 선수는 역시 연속극으로, SBS의 일일 드라마 〈며느리와 며느님〉과 주말 드라마 〈조강지처클럽〉, KBS의 주말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와 〈내 사랑 금지옥엽〉 등이 그런 실속 드라마였다.
단막극의 폐지도 그런 맥락이 낳은 산물이었다. 많은 이들이 단막극 폐지 반대의 이유로 제시한 게 시청자의 볼 권리였다. 맞는 말이다. 시청자들은 다양한 드라마를 즐길 권리가 있으며, 지상파는 시청자가 문화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베풀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시청자들의 취향이었다. 지난 세월이 증명하듯, '드라마 공화국' 속 한국인이 사랑한 드라마는 연속극이었다. 드라마 역사 초창기부터 형성되었던 연속극에 대한 한국인의 유별난 사랑은 세월이 흐르면서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강화되는 경향마저 낳았다. 요컨대 단막극 폐지는 드라마의 최고 가치를 흥미와 재미로 간주하는 시청자의 취향과 시장 논리 속에서 수익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방송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어쨌든 제작의 경제성과 시장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실속 드라마의 주 시청자는 누구였던가. 전통적 주 시청자인 가정주부와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50대 이상의 중년층이었다. 젊은 층이 지상파를 버리고 경쟁 매체로 급속하게 이동한 사이에 이들이 채널 선택권을 독점했으니, 이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드라마의 안방 공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을까? 가정주부와 중년층이 즐겨 시청하던 드라마를 '막장'이라고 불러야 할지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고 말하자면 막장 드라마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 업계의 여건은 무르익을 대로 익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SBS 드라마국장 구본근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엄살이 아니었다.
"존폐에 위협이 왔는데 퀄리티만 고수할 수는 없다. 광고를 늘리기 위해서라면 퀄리티도 포기할 수 있다. 지금은 약을 써야 하는 시기다. 이 약이 아무리 독해도 효과가 있다면 써야 한다. 지금은 살아남기 위해 시청자의 반응을 테스트하는 단계다. 시청률이 담보된다면 막장 드라마의 양산도 지금의 위기에서는 어느 정도는 수용해야 한다."
이제 막장 드라마의 시대로 들어가보자.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 ・ 송혜진, 「방송 3사 드라마 제작비 '억'해야 '팍'하고 터지나」, 『조선일보』, 2008년 6월 26일.
- ・ 김고은, 「2008 방송을 돌아본다: 드라마」, 『PD저널』, 2008년 12월 17일.
- ・ 이현정, 「2008 순위의 재구성〈3〉: 드라마 '베토벤… ' '바람의 화원' 파격 소재·실험성 찬사」, 『한국일보』, 2008년 12월 16일.
- ・ 이화정, 「막장 드라마의 모든 것: 쪽대본 모르면 말을 마~」, 『씨네21』, 2009년 1월 20일.
글
출처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전체목차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2008년은 드라마에게 혹독한 한 해 –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김환표, 인물과사상사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