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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드라마, 한
국을 말하다

드라마의 놀라운 생명력

방윤의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여전히 강세였다. 방윤이 1978년 3월 낸 보고서에 따르면, 1977년 11월 현재 라디오와 텔레비전 드라마는 총 847편이었다. 방송시간으로는 23만 658분이었으며, 이를 일수로 환산하면 약 160일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드라마 공화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정권의 강요에 의해 축소되었다지만 여전히 일일 연속극은 50편에 달할 만큼 드라마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다. 방송사별로는 TBC가 15편, KBS가 20편, MBC가 15편이었다. 드라마 가운데 19편이 멜로드라마로, 이 가운데 17편을 TBC와 MBC 등 두 상업 방송이 제작해 여전히 일일 연속극과 멜로드라마가 시청률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예전 TBC 사옥. 시청률이 많이 나오는 멜로드라마는 상업방송이었던 TBC와 MBC가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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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경쟁이 치열한 만큼 방윤이 정한 방송심의규정에 저촉된 작품의 숫자도 늘어만 가 1977년 1년 동안 방송심의규정에 저촉된 작품은 모두 36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21건이 상류층이 주인공이 되고 '불륜'을 소재로 한 멜로드라마였다. 퇴폐적이며 비생산적이어서 가정 질서나 국민 생활을 파괴할 우려가 있다는 게 저촉의 주요 이유였다. 안방극장이 규제와 검열 속에서 신음하던 것과 달리 영화계엔 이른바 호스티스물이 넘쳐났다. 1977년 개봉돼 60만 명을 동원한 〈겨울여자〉의 대히트를 시작으로 이른바 호스티스·창녀물은 한국 영화계를 접수했다. 같은 해〈내가 버린 여자〉는 38만 명, 〈속 별들의 고향〉은 32만 명을 동원했고, 이듬해엔 〈O양의 아파트〉가 28만 명을 불러 모았다. TV에 밀려 하향세에 있던 영화는 관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기염을 토했는데, 이 때문에 "영화 경기를 살리는 데는 아무래도 호스티스와 창녀들의 공이 큰 것 같다."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숨을 쉴 공간을 열어주고자 한 것일까? 박정희 정권은 영화계에 범람한 호스티스물에 대해선 비교적 관대했지만, TV에 대한 규제의 칼날은 더욱 시퍼렇게 세웠다. 특히 1978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정희 정권의 폭압 통치가 마지막을 향해 달리면서 TV에 대한 통제는 극에 달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1978년은 드라마뿐 아니라 방송사의 수난의 해라 기억될 만했다.

정순일에 따르면, "2월 5일 TBC의 〈엄마 안녕〉과 MBC의 〈옥녀〉를 경고 처분한 윤리위원회는 2월 25일 방송에 장발자 출연 금지 권고안을 방송사에 발송했고 3월 14일에는 부유층의 호화 생활을 방송하지 말라고 각 사에 통보한다. 5월 10일에는 TV 출연자들에게 주는 상품이 과다하므로 줄여줄 것을 요구하고 26일부터는 텔레비전 외화의 사전심의를 시작한다. 6월 1일 〈해외토픽〉에서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장면이 방영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각 사가 이를 억제하도록 요청하는 일반 권고문을 보냈다. 7월에 들어와서는 〈묘기 대행진〉에서 전율감을 느낄 정도의 소재는 삼가달라는 일반 권고안을 각 사에 보내고 8월 1일에는 민방의 어린이 TV 프로그램 가운데 50퍼센트가 외국 제작이라고 지적하면서 국내 프로그램으로 대치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했고 8월 31일에는 요즘 TV 게임 프로그램은 의도적으로 남녀가 몸을 비비거나 껴안게 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그 시정을 요구했다. 9월 7일에는 MBC의 〈청춘의 덫〉을 경고했고, 11월 30일에는 극에서 가능한 한 사투리 사용을 억제해줄 것을 요구하는 일반 권고를 방송사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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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정권은 TV에 대한 규제는 강화했지만 영화계에 불던 호스티스 바람에는 관대했다.

그런 수난 속에서도 드라마는 놀라운 생명력을 유지했으니, 그 중심에 바로 시청자의 취향을 적극 고려한 대중성이 있었다. 이연현은 1970년대 말을 "질투, 멜로드라마의 삼각연애, 근검절약에 위배되는 위화감이 판을 치는 ······ 압제하의 상업성 추구 소재의 시대"였다고 분석했는데, 사실 이는 1970년대 말뿐만 아니라 1970년대를 관통한 특성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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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차범석, 「방송 드라마와 예술성」, 『신문과방송』, 1978년 6월호.
  • ・ 김학수, 『스크린 밖의 한국영화사 1』(인물과사상사, 2002), 250쪽.
  • ・ 정순일, 『한국 방송의 어제와 오늘』(나남출판, 1991), 250쪽.

김환표 집필자 소개

IT와 SNS 문화,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문화평론가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월간 『인물과사상』에 ‘사회문화사’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인물 포커스’를 연재하고..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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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 저자김환표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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