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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말하다

신문은 일일 연속극을 비판했나

신문의 일일 연속극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이미 1960년대부터 신문은 일일 연속극 비판의 전위부대였다. 아마 신문의 비판이 없었더라면 일일 연속극이 '저속', '퇴폐', '저질'의 불명예를 뒤집어쓰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문의 비판은 날이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갔고 1970년대 중반 들어 최고점에 다다랐다.

신문은 왜 그렇게 일일 연속극을 소리 높여 비판한 것일까? 민족중흥과 국민총화에 힘써야 할 방송이 국가와 민족의 앞날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회기풍을 해치는 일일 연속극만 양산하는 모습을 보면서 발동한 우국충정 때문이었을까? 그런 애국심도 작용했겠지만, 더 큰 이유는 광고 시장을 TV에 빼앗겼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한국의 광고 시장은 1974년부터 크게 팽창했다. 1973년 230억 원이던 광고비 총액은 1974년 430억 원으로 뛰어올랐고 이듬해엔 650억 원을 기록했다. 중요한 것은 1974년을 기점으로 TV 광고 총액이 신문을 따돌렸다는 사실이다. 1970년 TV 광고비는 18억 원에 불과해 신문(60억 원)은 물론이고 라디오(26억 원)에게조차 뒤졌다. 1971년엔 라디오를 따라잡았지만 여전히 신문과의 차이는 좁히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1974년을 기점으로 전세가 역전됐다. 1973년 65억 원에 그친 TV 광고비는 1974년 150억 원으로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신문 광고비는 81억 원에서 137억 원으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신문에 더 심각한 일은 1975년에 발생했다. 1975년 TV 광고비는 260억 원으로, 200억 원에 그친 신문을 훌쩍 따돌렸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광고주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 TV가 드디어 신문을 따돌리고 광고 시장의 지존으로 등극한 것이다. 일등 공신은 물론 일일 연속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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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시장에서의 리더십을 방송에 빼앗기자 신문업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위기감을 반영이라도 하듯, 그동안 방송 순서와 프로그램 하이라이트를 지성스럽게 중계해주던 신문은 1975년을 기점으로 TV 문화 면에 'TV 주평', '모니터' 등의 고정 칼럼을 마련해 방송과 일일 연속극에 대한 공격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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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오명환, 『텔레비전 드라마 사회학』(나남출판, 1994).

김환표 집필자 소개

IT와 SNS 문화,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문화평론가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월간 『인물과사상』에 ‘사회문화사’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인물 포커스’를 연재하고..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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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 저자김환표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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