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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의 유화 정책은 통치술이 더욱 정교하고 치밀해졌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정교한 통치술의 중심엔 역시 TV가 있었다. 1985년 2·12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선거 홍보용 드라마가 판을 쳤다. KBS가 앞장섰다. 당시 KBS는 선거 홍보용 드라마를 무려 15편이나 제작해 방영했다. 선거용 드라마를 제작하며 KBS가 표면적으로 내건 제작 이유는 혼탁, 과열돼가는 선거 분위기를 지양하고 공명선거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거 홍보용 드라마의 대부분은 야당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저급하고 야비스러울 정도의 내용 일색이었으며 시청자들에게 여당을 지지하도록 강압하는 내용도 있었다. 예컨대 2월 5일 방송된 KBS 1TV의 '연속 입체 기획'의 〈내가 진짜요〉란 미니 드라마는 입후보자들이 서로 자기가 배비장 선생의 직계 양아들이자 대변자라고 주장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이 같은 일들은 '허수아비 작태'이며 정치를 꼭두각시놀음으로 만드는 짓이라고 비꼬면서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정책 대결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날 〈내가 진짜요〉란 미니 드라마는 야권 입후보자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KBS의 선거 홍보용 드라마는 사장 이원홍의 작품이었다. 이에 대해 KBS노동조합이 1989년 펴낸 『5공하 KBS 방송 기록』은 "사장인 이원홍의 지시로 예능국 김현직 국장과 안국정 씨가 제작했다. 그 당시 인기 있었던 고발 프로인 〈추적 60분〉의 형식을 본 따 사회자가 진행하면서 모니터로 드라마를 꾸며나가는 형식이 채택됐다. 당시 송재호 씨는 이 같은 일방적인 여권 옹호성 편파 방송을 맡을 수 없다고 항의했으나 묵살됐고 당시 분위기로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에 송 씨는 그렇다면 여·야 공정한 비판을 하는 관심 있는 드라마를 제작하자고 건의했으나 김 국장은 나라를 위한 일이니 맡으라고 부탁했다 한다. 녹화가 진행되는 동안 당시 KBS 사장이었던 이원홍 씨는 수시로 녹화 장소에 찾아와 지켜 서서 즉석에서 맘에 안 드는 대목을 고치라고 지시하는 등 반민주적 작태를 행했으며 수시로 전화를 걸어 녹화 진전 상황을 점검하기도 하였다. 송 씨는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거센 항의와 협박을 받고 심지어 방송국에서도 한 1년간 출연에 심한 불이익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효성빌라에 산다는 한 주부는 송 씨에게 '당신은 그 같은 방송을 하느냐, 돈이 없어서라면 내가 돈을 줄 테니 그따위 방송을 하지 말아라'는 전화를 했는가 하면 무수한 편지를 통해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방송국에서도 한 1년 동안 저 친구가 나오면 시청률 떨어진다며 배역 주기를 거부했으므로 자신도 2·12총선에서의 KBS 편파 왜곡 선거 방송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부산 영도에 사는 한 시민은 송 씨에게 '당신 똥 먹어 봤느냐? 나는 똥은 먹어도 당신의 방송은 못 듣겠다'고 항의, 이에 견디다 못한 송 씨는 '대한민국의 수준이 당신 같으면 이 KBS에서 아무리 친여권적인 편파 방송해도 야당이 승리할 것이다'라고 항의했다 한다. 송 씨는 지금도 이 일로 인해 늘 억울하고 죄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당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탤런트들도 역시 항상 부끄러움을 떨쳐버리지 못하며 이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한 간부들을 맹렬히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