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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드라마, 한
국을 말하다

좌절하는 사회성 드라마

1987년 6월항쟁은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은 변화를 가져왔다. 민주화 열풍은 방송 환경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고 드라마 제작 역시 변화의 조류에 몸을 실었다. 일선 PD들은 TV 드라마의 발전을 위해 드라마 제작에 가해지는 소재 제약이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는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폭로하고 정치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온 영역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 1988년 11월 21일자 기사는 "TV 드라마가 달라지고 있다. 최근 방영됐거나 방영 중인 TV 드라마 중에는 사회성이 짙고, 풍자와 고발 형식을 띤 작품들이 부쩍 늘어 새로운 경향을 보이고 있다."라며 "안방극장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MBC 미니 시리즈 〈우리 읍내〉를 비롯해 KBS 수목 드라마 〈풍객〉, 연속극 〈은혜의 땅〉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 읍내〉가 가벼운 터치의 코믹 사회 풍자극으로 인기를 끈 반면 〈풍객〉과 〈은혜의 땅〉의 경우 사회비판적 성격이 강해 뚜렷한 메시지를 시청자에게 던져주었다. 〈풍객〉은 주제를 우회하거나 비유함이 없이 직접적인 사회비판을 드라마의 주 내용으로 삼아 흥미와 함께 감동을 주었다. 지난 주 막을 내린 〈풍객-쓰라린 세월〉은 우리 사회에서 고질적 병폐 중 하나로 비판을 받아온 반체제 문인들의 의식 말살 과정을 고발, 충격을 주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기관원들에 잡혀가 작품의 내용을 추궁받는 과정에서 언론 탄압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드라마는 폭력에 의해 한 인간이 어떻게 상처를 입고 폐허화돼가는 것을 보여준 반면 주인공을 통해 시대정신에 족쇄를 채웠던 암울한 사회 분위기가 우리의 모습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라고 했다.

사회성 드라마의 대표 주자는 KBS의 〈논픽션 드라마〉였다. 〈논픽션 드라마〉는 1988년부터 약 1년 동안 방영되었는데, 방영 내내 "이대로 놓아두면 사회 고발극, 폭로극으로 치달을 위험"이 크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방송 경영진과 정치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명환에 따르면, "올림픽을 4개월 앞두고 신인 작가와 젊은 연출가의 투입, 로케에 의한 필름 제작이라는 점도 의욕적이었으나 무엇보다도 논픽션이 갖는 현실 진단욕 그리고 그 가능성에 대한 개발 의지가 충만했다. ······ 전반적으로 흐르는 작품 분위기는 척박한 삶과 소외받는 계층의 정황 노출로 무겁고 우울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항하는 왜소한 서민들의 모습, 그리고 진실의 고발 작업이 실화와 사례를 통해 떠올라 불행한 시대에 희생된 삶들이 편편히 묘사되었다. 예전에 금기와 성역으로 묻어버렸던 제도적 폭력과 부조리도 크게 강조하였다. ······ 방영 8개월을 넘으면서 작품이 어둡고 우울하며 첨예한 소재로 일관되었기 때문이다."

〈논픽션 드라마〉는 방영 내내 경영진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결국 KBS는 "과다한 제작비 부담으로 매주 1편씩의 물량을 감당할 수 없는 실정"이라는 과중한 제작비 부담을 이유로 이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실제 〈논픽션 드라마〉의 편당 제작비는 2500만 원으로 다른 드라마의 2배에 달할 만큼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 드라마 제작에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에 일선 제작자들은 "사회 고발 성격을 강하게 띠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종영 결정이 이뤄진 것"이라며 철야 농성에 돌입하는 등 적잖은 파문이 일었다.

이게 시사하듯 절차적 민주화는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성 드라마는 방송사 경영진과 정치적 압력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드라마에 사회성을 담아내고자 했던 노력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좌절되었는데, 시청률이 낮아졌다는 점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빈부 격차와 계급 문제, 땅 투기 등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반적으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논픽션 드라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낮은 시청률은 방송사 경영진과 정치권이 사회성 드라마를 통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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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양 TV 사회 비판 드라마 큰 인기」, 『경향신문』, 1988년 11월 21일, 16면.
  • ・ 오명환, 「TV 드라마 3년 수난사」, 『방송시대』, 1993년 봄·여름호, 368쪽.
  • ・ 「'논픽션 드라마' 내달 중지」, 『경향신문』, 1989년 4월 26일, 16면.

김환표 집필자 소개

IT와 SNS 문화,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문화평론가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월간 『인물과사상』에 ‘사회문화사’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인물 포커스’를 연재하고..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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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 저자김환표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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