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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드라마, 한
국을 말하다

황금 시간대의 도둑 특별경계령

1973년 10월 6일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은 일일 연속극 경쟁을 다시 불 지피는 연료가 됐다. 방송 시간 단축과 광고 수주율 하락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한국인들은 소비를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맨 채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TV 앞에서 보내고 있었다.

당시 일일 연속극은 '만들면 본다'는 불문율에 지배할 만큼 여전히 시장성이 높았다. 그 인기가 어찌나 높았던지, 서울 시경은 1974년 10월 16일 황금 시간대에 도둑에 대한 특별경계령을 내리고, 좀도둑이 들어온 것도 모를 정도로 TV에 푹 빠진 서울 시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담화까지 발표했다. 일일 연속극 경쟁에서 나타난 주목할 만한 현상은 황금 시간대에 벌어진 편성 경쟁이었다. 편성 경쟁에 불을 지핀 방송사는 TBC였다. 4월 춘계 개편을 단행한 TBC는 얼마 안 있어 MBC보다 연속극들을 5분씩 일찍 시작하게끔 손질했고, 같은 해 추계 개편 뒤에도 두 번의 손질을 더 했다. TBC가 당긴 방송사 간 편성 경쟁은 '5분 앞당겨 편성하기'를 넘어 드라마와 드라마 사이에 5분짜리 미니 프로를 끼워 넣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하는 등 '5분 단위의 경합'마저 나타났다.

방송사끼리 머리를 싸매고 유리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 횡행하면서 방송사 간 눈치 보기와 함께 치열한 정보전도 진행되었다. 『경향신문』 1974년 9월 5일자 기사는 "1974년 동계 프로그램의 개편을 앞두고 3개 TV국은 열띤 정보전을 벌이고 있다."라며 "기본 편성표의 청사진은 A급 비밀임은 물론 개편 작업도 방송국 내가 아닌 은밀한 장소(주로 호텔)에서 진행되는데 여기에 참석하는 멤버도 편성 실무의 중견 이상 급이다. 1974년도 하계 개편 때 A국의 청사진이 B국으로 넘어갔다. 어떤 첩자(?)에 의해 넘겨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로 인하여 B국은 A국의 일일 연속극이 시작되기 5분 전에 자기네 일일 연속극을 시작시킴으로써 유리한 고지의 경쟁을 벌였다. 이렇듯 기본 편성표의 정보전은 A급 비밀이므로 때로는 이중 청사진을 작성하는 때도 있다. 상대국의 스파이로 하여금 그 청사진을 절취해가게 함으로써 상대국 편성에 혼란을 빚게 하는 작전이다. 또 어떤 때는 상호 동시에 청사진을 교환하고 여기서 교환 편성표에 '변동을 않기로' 약속하는 화평 조약을 한 적도 있지만 아직 그 화평 조약이 실천된 적은 한 번도 없다. TV 3국 동계 프로그램 개편 작업에 바쁜 편성 간부들은 한결같이 묵비권을 쓰고 있다."라고 썼다.

MBC의 〈갈대〉

ⓒ MBC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TBC의 〈인목대비〉

치열한 눈치 보기와 정보전을 벌였던 방송사들은 시청자를 선점하기 위해 다른 방송사가 예고한 날보다 먼저 드라마를 시작했다.

ⓒ TBC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눈치 보기와 정보전 이후엔 방송사 간 실력대결이 펼쳐졌다. 1974년 10월 방송 3사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4편의 드라마를 새로 방영하면서 정면 대결을 피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경향신문』 1974년 10월 29일자 기사는 "시간 띠는 물론 작가와 테마, 그리고 스태프와 캐스트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대결을 벌여왔다며 "이제 남은 것은 현재 상태에서의 3국의 실력대결뿐, 이런 판국에 4개의 드라마가 동시에 막을 올렸다는데서 주목을 끌게 된 것. MBC는 9시 20분 일일극 〈복녀〉의 후속물로 남지연 작 〈갈대〉를 내놓겠다고 이미 1개월 전부터 예고해왔다. 그 디데이는 10월 28일. 그런데 여기에 하루 앞질러 27일부터 TBC가 신봉승 극본의 〈인목대비〉를 터뜨렸다. 바로 같은 시간인 9시 20분 〈윤지경〉의 후속물로, 이것도 그 주연을 놓고 이미 오래 전부터 화제를 뿌려오던 것, 그러니까 상당한 기간을 두고 으르렁대던 두 TV국의 결전인 셈이다."라고 진단했다.

1974년 11월까지 방송된 TV 드라마는 모두 55편으로, KBS와 TBC가 20편, MBC가 15편이었다. 일일 연속극의 주종은 여전히 멜로물로 전체 드라마의 50%에 육박하는 26편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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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정순일·장한성, 『한국 TV 40년의 발자취: TV 프로그램의 사회사』(한울아카데미, 2000), 116쪽.
  • ・ 조항제, 「1970년대 한국 텔레비전의 구조적 성격에 관한 연구: 국가 정책과 텔레비전 자본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신문학과 박사학위논문, 1994년 2월.
  • ・ 「TV 3국 기본 프로 개편 싸고 치열한 정보전」, 『경향신문』, 1974년 9월 5일, 8면.
  • ・ 「불꽃 튀기는 드라마 전쟁」, 『경향신문』, 1974년 10월 29일, 8면.
  • ・ 「일일 연속극 '전성시대'」, 『조선일보』, 1974년 12월 20일, 조간 5면.

김환표 집필자 소개

IT와 SNS 문화,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문화평론가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월간 『인물과사상』에 ‘사회문화사’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인물 포커스’를 연재하고..펼쳐보기

출처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 저자김환표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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