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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드라마, 한
국을 말하다

유신 정신을 명분으로 신문의 드라마 비판

일일 연속극의 주요 시청층이었던 여성들에겐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겠지만 박정희 정권의 일일 연속극 축소 지시는 196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일일 연속극을 비판해온 신문과 지식인 등의 오피니언 리더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사실 일일 연속극 축소는 신문과 지식인층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합작품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드라마 내용에도 미주알고주알 간섭하기 시작했다. 1973년 담화에서 윤주영 장관은 "텔레비전 방송국 시청자의 반수 이상이 농민과 어민들인데도 드라마는 농촌을 소재로 한 것이 거의 없다."라며 "각 방송국이 농민들에게 지혜를 불어넣어 주는 프로를 만들어주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농촌 근대화를 위해 국가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새마을운동의 정당성과 효과를 안방에 전달해도 부족한 마당에 오히려 드라마가 농촌 주민의 사기를 꺾는 해악을 저지르고 있다는 인식이 낳은 발언이었다. 문공부 장관의 담화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유신 정신 구현의 전위부대로 활약하던 신문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방송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드라마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나섰다.

흥미로운 것은 신문의 방송 공격이 이전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과거엔 주로 저질과 퇴폐를 양 축으로 삼아 드라마를 공격한 신문들은 이 무렵엔 TV 드라마가 부추기는 빈부 격차와 사회 갈등에 비판의 포커스를 맞추었다. 소비주의 조장과 이에 따른 서민과 농민의 상대적 박탈감이 유신 정신이 구현하고자 한 '국민 총화'와 '대동단결'의 장애물이자 막대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복마전(伏魔殿)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비판의 고갱이었다.

『서울신문』 1973년 7월 17일자 사설은 "아직도 '프로'의 태반이 저속성을 지양했다고 보기에는 요원한 것 같다."라며 "밝고 씩씩하고 의욕적인 면보다는 여전히 어둡고 실망어린 감상적인 연속극이 사태를 이루고 있다. TV의 경우 방송국마다 5~6종의 일일 연속극을 방영하면서 무모한 경쟁을 일삼는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상업성 위주의 현상이라 하겠다. ······ '스폰서'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소비성 향락이나 도시 취향적인 편성으로 기울어 역사적인 새마을 사업에 총력을 쏟고 있는 농촌의 피나는 현실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있다는 것은 방송이 정녕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지 의심마저 든다."라고 했다.

『동아일보』 1973년 7월 18일자 사설 역시 "작년 통계에 의하면 멜로드라마의 경우 그 주제나 소재가 농어촌을 배경으로 한 것이 TV와 라디오를 합쳐 불과 23.8퍼센트에 지나지 않으나 도시를 소재로 한 것은 무려 72퍼센트나 된다는 편중 현상을 빚어내고 있다."라며 다음과 같이 개탄했다.

모두가 잘 살아보자고 새마을운동을 시작한 상황에서 드라마는 사회 갈등과 빈부 격차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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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도시 중심의 드라마는 농어민의 도시 동경심과 좌절감을 자극할 것이며 결국 농어촌 문화와 도시 문화와의 상이성을 비집어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중세사가 기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조 사회에 양반 문화와 서민 문화의 병립은 그 당시의 신분 제도로 인해 불가피했었다. 그러나 그 신분 제도가 사라진 지 오래인 현 자유 사회에서 단지 인공적인 전파 미디어의 편중성으로 말미암아 도시 문화 대 농어촌 문화권이 피상적으로 갈려나가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에 불과 몇 안 되는 방송 회사들이 시청망을 넓히기 위해 편성하는 무절제한 전파 미디어가 3000만 온 겨레의 심장에 독버섯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두고자 하는 바이다."

하지만 어이하랴. 시청자들이 바로 그 '독버섯'을 강렬하게 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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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농민에 지혜 주는 방송 프로 만들어야"」, 『동아일보』, 1973년 7월 16일, 2면.
  • ・ 「방송의 책임: 윤문공, 방송법의 이행 촉구」, 『서울신문』, 1973년 7월 17일, 5면.
  • ・ 「전파 미디어에 바란다」, 『동아일보』, 1973년 7월 18일, 3면.

김환표 집필자 소개

IT와 SNS 문화,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문화평론가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월간 『인물과사상』에 ‘사회문화사’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인물 포커스’를 연재하고..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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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 저자김환표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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