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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드라마, 한
국을 말하다

포옹이라는 제목은 아침 드라마로 어울리지 않는다

전두환 정권은 집권 초부터 이른바 '3S(sex, sports, screen) 정책'을 공격적으로 전개하고 1982년엔 야간 통금을 해제해 '밤 문화'를 활성화시켜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를 향락과 퇴폐로 몰아갔다. 특히 1981년 5월 28일에서 6월 1일까지 5일간 열린 국풍81은 '유사 이래 가장 거대한 놀자판'으로 사회 전체를 흥청거리게 만들었다. 5공은 그러면서도 퇴폐 저속한 사회 문화를 정화하겠다며 이른바 '국민정신개혁운동'이라는 정화 운동을 전개하는 모순적인 행태를 취했다. 정화 운동의 일환으로 음반의 마지막 트랙에는 건전가요가 삽입하도록 강요했으며 극장에서는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애국가를 틀어주었다. 그러니까 정권이 앞장서 '퇴폐 저속'을 조장하고 바로 그 '퇴폐 저속'을 빌미로 사회와 국민을 통제하는 이중적인 대중문화 정책을 구사한 것이다.

이런 이중적인 대중문화 정책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게 바로 드라마였다. 아침 드라마의 부활과 폐지는 드라마가 이중적인 대중문화 정책 속에서 얼마나 좋은 먹잇감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981년 5월 아침 방송이 부활했다. 석유 파동으로 오전 방송이 중단된 지 7년 만이었다. 아침 방송 부활은 국민 여론을 얻기 위한 이른바 전두환의 '선심조치'였다. 퇴폐 저속한 드라마가 다시 방영된다면 아침 방송 부활의 본래 의미를 그르치는 것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전두환 정권은 아침 방송을 허용하고 나섰다.

충성 경쟁을 벌이던 KBS와 MBC가 건전한 내용을 중심으로 아침 드라마를 제작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아침 드라마 방영은 구조적으로 가열 경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언론통폐합을 통해 공영방송 체제를 출범시키긴 했지만, 방송사 재원의 전부 혹은 대부분을 광고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사실상 1970년대의 상업방송 체제와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방송사 사장들의 충성 경쟁과 드라마를 통한 이른바 '우민화 정책'이 강화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광고 유치와 재원 마련을 위해 과거처럼 대중성과 수익성을 드라마 제작의 동인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방송사의 구조적 한계는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었다. 따라서 5공의 의도는 아침 드라마를 통해 대중에게 적당한 수준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그 '즐거움의 수위'의 기준이 명확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준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전두환 정권 마음이었다.

청춘남녀의 애정을 그린 MBC의 〈포옹〉은 방영 초 제목부터 논란이 됐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아침 시간과 아침 시청자를 도외시한 무분별한 드라마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조선일보』 1981년 6월 2일자 기사는 "지난 한 주 KBS 1TV와 MBC는 경쟁이나 하듯 아침 8시에 일일 연속극을 방영했다. KBS의 〈은하수〉, MBC의 〈포옹〉이 그것인데, 아침부터 '포옹'하는 것이 방송사 입장에서도 쑥스러웠던지 MBC는 금주부터 일일극 방영 시간을 오전 9시 10분으로 늦췄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의 칼을 들이밀었다.

MBC의 〈포옹〉은 제목과 내용이 아침 드라마와 어울리지 않게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폐지를 강요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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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더 두고 보기로 하고 도대체 아침 방송에 20~25분짜리 연속극을 방영할 필요성이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침 방송이 주부 대상에 역점을 두었다지만, 한국의 주부들은 아침 8시부터 TV 앞에 앉아 이쪽저쪽 연속극이나 보고 앉아 있을 만큼 한가하다는 말인가. 더구나 농번기를 맞아 아침 일찍부터 논밭으로 일하러 나가는 농촌 여성들에게 아침 드라마가 행여 위화감을 주지나 않을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더구나 아침 방송은 저녁 방송과 달리 서서 보는 시간이 많고, 어느 가구를 막론하고 바삐 움직이는 시간인데, 여기에 축축 처지는 사랑 이야기나 하고 있어도 좋은 것인지 묻고 싶다."

결국 문공부가 제목에서부터 남녀 간의 불륜을 부채질할 뿐만 아니라 내용이 너무 선정적이니 아침 드라마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지를 강요해 〈포옹〉은 9월 102회로 중도 하차당했다. 아침 일일 연속극은 1982년 가을 개편 시에 슬그머니 다시 등장했다가 문공부에 의해 1983년 9월 다시 폐지되는 등 부활과 폐지를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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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신현준, 「1980년대 문화적 정세와 민중 문화 운동」, 이해영 외, 『1980년대 혁명의 시대』(새로운 세상, 1999), 221~222쪽;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 편 2』(인물과사상사, 2003). 48~55쪽.
  • ・ 오명환, 『텔레비전 드라마 사회학』(나남출판, 1994).
  • ・ 「TV 주평: '25분짜리 연속극' 아침 시간이 아깝다」, 『조선일보』, 1981년 6월 2일, 6면.

김환표 집필자 소개

IT와 SNS 문화,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문화평론가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월간 『인물과사상』에 ‘사회문화사’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인물 포커스’를 연재하고..펼쳐보기

출처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 저자김환표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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