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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말하다
아침부터 드라마를 보다 정신을 차리니 해가 뉘엿뉘엿 지더라
1997년 3월 한국방송개발원이 발표한 보고서 '텔레비전 드라마의 선정성·폭력성 분석'에 따르면, 애정 드라마(32%)와 가족 드라마(29%)가 전체 드라마의 61퍼센트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드라마 속 폭력·선정성의 문제가 드라마의 주종을 이루는 애정 드라마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1997년 3월 17일자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브라운관 속의 가족 관계와 애정 관계가 상식을 벗어나 갈수록 이상하고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현실성을 상실한 이런 비정상적인 드라마는 수용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해 개인과 가족의 건강성을 해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라고 했다.
"문제는 드라마의 애정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복잡하다는 점이다. 종전에는 '삼각관계'가 복잡한 애정 관계로 인식돼왔지만 KBS 2TV가 방영한 월화 드라마 〈내 안의 천사〉에선 2명의 여자와 3명의 남자가 복잡하게 얽힌 '5각 관계'가 줄거리를 이룬다. 같은 시간대에 방영된 MBC의 〈의가형제〉의 애정 관계도 비슷한 유형이다. 드라마의 가족 관계도 입양아·이복형제·사생아 등 비정상적인 형태가 많았다. SBS 월화 드라마 〈연어가 돌아올 때〉에선 사생아인 남자 주인공과 계모의 딸이 연인이 되고, 〈의가형제〉에선 주인공이 원수 집안에 입양돼 복수를 한다. 이런 이상한 가족 관계에 비춰보면 계모나 이복형제,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와의 갈등을 다룬 드라마는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애정 드라마의 단골 메뉴인 외도나 불륜의 성격도 복잡하게 바뀌고 있다. 종전에는 남성의 일시적인 '바람기'가 외도의 주류를 이루었지만, 최근 들어 첫사랑의 여인이나 부인의 여자 친구와 맺어지는 '끊기 어려운 불륜'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가 늘어나고 있다."
김사승은 드라마에 만연한 폭력성과 선정성은 우연이 아니라 방송사들이 의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비정상적인 애정 관계, 가족 관계 등으로 인물을 설정한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이 같은 서사 구조는 폭력·선정성으로 쉽게 이어진다. 등장인물을 설정할 때 아예 폭력배를 집어넣어 폭력적인 표현을 정당화한다. ······ 선정성도 마찬가지다. 등장인물들의 낮은 지적 수준이나 직업적 특성을 내세워 신체 노출이나 성적 표현을 정당화한다. ······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도 폭력과 선정성은 고의적으로 이용된다는 주장이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갈등의 증폭이나 해결 수단으로 폭력을 동원하고 비정상적 애정 관계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전개를 위해 선정성을 끌어들인다. 여기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이런 표현들을 고의적으로 부각하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정철수는 1997년 4월 "TV 드라마는 만능이다. 그러나 드라마의 성역을 구별해줄 경계선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라면서 "드라마의 과잉 현상은 숱한 부작용을 부른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인의 '드라마 중독증'을 치료하기 위해 드라마 편수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했다. 방송위원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황금 시간대의 드라마 편성 비율이 SBS 62.6퍼센트, MBC 55.1퍼센트, KBS 39.3퍼센트로 드라마가 안방극장을 점령하고 있었다. 방송 3사가 일일·주중·주말·단막·특집·재현 등 갖가지 형식으로 포장해 내놓는 드라마 편수는 한 주일에 무려 30~40편에 이를 정도였다. '드라마 홍수'였다. 그래서 『한겨레』 1997년 11월 8일자 기사는 '드라마 공화국의 현실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아침부터 드라마를 보다 정신을 차리니 해가 뉘엿뉘엿 지더라······.' 요즘 주말에 텔레비전을 가까이 대하는 주부들 가운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토요일 오전 8시대부터 오후 5시까지 드라마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잠시 차 한 잔 마시면서 눈을 돌려 보게 된 드라마. '이제 그만 봐야지' 하고 시계를 보면 저녁 지을 참이 되더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귀가 시간에 맞춰서도 여지없이 청춘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방송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1996년 시청률 10위권에 오른 프로그램 중 7~8개가 드라마였다. 드라마 사랑엔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지만 특이한 현상은 초등학생 시청자가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가 1996년 10월부터 11월까지 미디어서비스코리아의 시청률 조사를 1차 자료로 삼아 공중파 TV 4개 채널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드라마 시청률이 청소년층보다 1.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첫사랑〉의 경우 초등학생 시청률은 28.2퍼센트로, 30대 주부의 시청률과 거의 맞먹는 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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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김현수, 「드라마 속 인간관계 '비정상' 판친다」, 『한겨레』, 1997년 3월 17일, 22면.
- ・ 김사승, 「요즘 TV 드라마 한심하다」, 『문화일보』, 1997년 3월 11일, 19면.
- ・ 정철수, 「드라마 공화국」, 『경향신문』, 1997년 4월 16일, 5면.
- ・ 신민형, 「주부와 맞먹는 초등생의 〈첫사랑〉 시청률」, 『문화일보』, 1997년 4월 8일, 19면.
글
출처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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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아침부터 드라마를 보다 정신을 차리니 해가 뉘엿뉘엿 지더라 –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김환표,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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