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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드라마 탄압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드라마가 바로 〈땅〉이었다. 〈땅〉은 한국 TV 드라마 역사에서 정치적 통제를 상징하는 드라마라 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1991년 1월 6일 안방을 찾은 〈땅〉은 15회 만에 막을 내려야 했는데, 바로 정치적 입김 때문이었다. 〈땅〉은 당시 한국 사회에 불어 닥치던 부동산 투기의 심각한 문제점을 반영이라도 하듯, 땅에 얽힌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비리를 고발하는 성격을 지닌 대하드라마였다. 따라서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 그리고 부동산 투기를 통해 졸부가 된 부유층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첫 회분이 방영된 직후 빈부 갈등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방송위원회로부터 법정 최고 제재인 '사과 명령'을 받았다. 당시 방송위 산하 연예오락심의위원회(의원장 팽원순 한양대 교수)는 단순 '해명' 조치를 취하도록 방송위에 건의했으나 방송위는 이를 뒤엎고 강력한 제재 조치인 '사과 명령'을 내렸다. PD 고석만과 MBC 제작국장 김성희는 각각 근신 10일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또 MBC 사장 최창봉과 제작이사 민용기는 청와대에 불려 들어가 청와대 정무수석 손주환에게 드라마 내용과 관련해 심한 질책을 받았다. 이 때문에 〈땅〉은 폐지되기까지 약 4달간 관련자 징계와 사과 방송 등을 내보내는 등 방영 내내 수난을 당해야 했다.

10월까지 방송키로 예정되어 있던 〈땅〉의 5월 종료가 가시화되면서 방송사안팎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MBC 노조는 4월 19일 낸 성명에서 "'땅'을 중단시킬 수 있는 사람은 시청자들뿐"이라며 회사 쪽에 대해 외압 여부를 밝힐 것과 본래 기획대로 50회분을 모두 방영할 것을 촉구했다. 〈땅〉 조기 종영 논란은 한국 방송 사상 최초로 연기자들이 출연료 문제가 아닌 방송의 자주성과 자율성 수호를 위해 출연 거부를 선언하는 '하나의 사건'도 불러왔다. 방송연예인노조는 1991년 4월 22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땅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땅은 형태상으로 안정이 기본이다. 누가 땅을 뒤흔들고 있는가."라며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MBC 프로덕션 제작물에 대한 출연을 거부하겠다."라고 말했다. 〈땅〉의 작가 김기팔은 훗날 제1회 민주언론상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드라마 〈땅〉을 준비하면서 고석만 연출과 나는 '이번에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비록 군 출신이지만 직선 대통령 아래, 민주화를 말끝마다 내세우는 정부가 설마 '발이 저릴 리가 있으랴' 하는 생각이었다. 하도 당해서 웬만한 데는 속지 않는 우리지만 진짜 '이번에는'이었다."

하지만 그런 예측은 완벽하게 빗나갔고, 〈땅〉 사태는 TV 드라마 제작 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과거에 비해 형식적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곤 하지만 정치권력의 탄압과 규제 앞에서 방송사의 자율성과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의 운명은 여전히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땅〉의 유산은 드라마 제작진의 자기 검열 문화를 더욱 증폭시켜 현실에 순응하는 '안전제일주의'야말로 가장 현명한 처세술이라는 것을 알려준 데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