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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말하다
한국인의 드라마 사랑을 포착한 TBC
1964년 12월 6일 상업방송 TBC가 개국해 KBS의 독점적 지위는 무너졌다. 특히 드라마 영역에서 공세가 거셌다. TBC의 무기는 녹화기 암펙스VR660이었다. TBC는 개국특집극으로 텔레비전 사상 처음으로 녹화 드라마인 〈초설〉을 내보낸 후, 한국 최초의 일일 연속극 〈눈이 나리는데〉를 비롯해 무려 여섯 편의 TV 드라마를 연달아 방영해 시청자들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녹화기 암펙스VR660도 편집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촬영 도중 NG가 발생하면처음부터 다시 녹화해야만 했다. 생방송보다는 한결 나은 조건이었지만, 편집이 불가능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송문화연구실을 이끌었던 정순일은 "편집이 안 되는 녹화기 때문에 애를 먹은 일화는 한없이 많지만 그중 압권은 12월 7일에 뜬 〈바이엘 극장〉이다."라며 "우리나라 최초의 법정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법정 야화에는 해설자로 권순영 변호사가 출연해서, 아마추어답게 10차례 이상 NG를 냈다. 한참 녹화를 하다가는 처음부터 다시 뜨기를 10차례. 진땀을 흘리며 살얼음 위를 걸어가듯 하여 앞으로 5분만 더 뜨면 되겠다는 생각이 연출자 이기하 씨의 머리를 스쳐갈 찰나, 극 중에서 강부자 씨와 얘기를 나누던 김성옥 씨가 손으로 기둥을 조금 친다는 것이, 너무 힘을 주어, 그만 기둥을 쓰러뜨리고 말았다. '에라 모르겠다' 드라마는 기둥이 넘어가는 장면을 담은 채, 그대로 진행되었다."라고 회고했다.
TBC의 드라마 제작은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TBC는 개국 초부터 인기 연예인의 전속제를 실시해 이순재, 이낙훈, 오현경, 나옥주, 조희자 등 당대의 인기 탤런트들을 전속으로 묶어 드라마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그뿐 아니었다. TBC는 KBS PD들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스카우트하는 등 대대적인 물량 공세를 퍼부었다.
TBC의 드라마 제작에서 가장 획기적인 것은 일일 연속극의 제작이었다. 한국 최초의 일일 연속극 〈눈이 나리는데〉는 당시 라디오에서 인기 절정의 편성 기법인 일일 연속극을 TV에 적용했는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상황에서 TBC가 일일 연속극을 방영한 것에 대해 "대담했다기보다는 무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일일 연속극 제작은 시청자의 연속극 사랑을 포착하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TBC의 전략이 낳은 공세였다. 시청자들은 이미 라디오에서 방영되는 연속극에 길들여져 있었기에 만약 성공만 한다면 방송 시장을 뒤흔들 만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눈이 나리는데〉는 제작 여건이 빈약한 상태에서 한 무리한 제작이라 곧 폐지되고 말았지만 머지않아 방송사 간에 일일 연속극 전쟁이 벌어질 것임을 알리는 징후였다.
KBS와 TBC는 치열하게 경쟁했다. 1967년엔 탤런트 출연 경쟁으로까지 번졌다. KBS의 〈세종대왕〉과 TBC의 〈이성계〉에 탤런트 장민호와 이용이 겹치기 출연하면서 양쪽이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청률 경쟁을 부추긴 것은 문화공보부(문공부)였다. 당시 문공부에 설치된 모니터실에선 매일 아침, KBS와 TBC의 시청 결과를 '성적표'처럼 만들어 홍종철 장관에게 제출했는데, 'KBS가 판정승!'이라는 평가가 적혀 있어야 장관의 기분이 괜찮았다는 일화까지 떠돌았다.
신문과 지식인의 비판 때문이었을까? 한국인들은 드라마에 대해 양가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1968년 11월 서강대학교 김인자 교수가 주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방송 청취 경향 조사에 따르면, 가장 많이 보는 TV 프로그램은 연속극(18.6%)이었지만, 연속극이 저속하고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답변도 무려 75퍼센트에 달했다. 당시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됐던 드라마는 1968년 7월 31일부터 방영된 드라마 〈물망초〉였다. 평론가 나진호는 "작가의 지능과 양식을 의심케 한다. 현실에도 있을 수 없는 망측한 내용이 수백만 시청자가 보는 TV 화면을 타고 몇 달씩 계속된다는 것은 그것을 쓰는 작가와 기획자의 양식에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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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정일몽, 「TV 드라마의 미래상」, 『신문과방송』, 1979년 3월호, 121쪽.
- ・ 정순일, 『한국 방송의 어제와 오늘』(나남출판, 1991), 48쪽, 153쪽, 161쪽.
- ・ 「프로의 저속화 막는 길은」, 『동아일보』, 1968년 11월 19일.
글
출처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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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한국인의 드라마 사랑을 포착한 TBC –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김환표,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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