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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말하다
일일 연속극 때문에 파리 날리는 가게
〈청실홍실〉의 대성공으로 일일 연속극 붐이 일기 시작했다. KBS는 1957년 일일 연속극을 편성해 드라마 인기 경쟁에 불을 지폈다. 방송 프로그램의 경쟁력 강화와 방송 관련 조사와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방송문화연구실'이 1957년 12월 초중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인생 역마차〉, 〈주간 연속극〉, 〈일일 연속극〉, 〈명작극장〉, 〈방송 사극〉 순이었다.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교사들에게서마저 연속극 선호도가 대단히 크게 나타난 것이다. KBS가 1958년에 제작 방영한 일일 연속극은 10편에 달했으며, CBS는 3편이었다. KBS의 일일 연속극은 1959년 10편, 1960년엔 11편에 달했다. 일일 연속극은 보통 30회 내외였지만 인기를 얻을 경우 50~60회 정도 연장돼 방영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작품 늘리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일일 연속극의 본격화는 희비의 쌍곡선을 그었다. 주부들은 일일 연속극을 쌍수 들어 환영했지만, 일일 연속극 때문에 파리를 날릴 수밖에 없던 가게 주인들은 볼멘소리를 냈다. 노정팔은 "별 오락이 없는 당시의 우리네 가정에서 매일 저녁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될 수도 있었다."라며 "재미있는 연속극이 방송될 때에는 목욕탕이 텅 빈다고 주인이 투덜거리는가 하면 매일 술타령하던 남편이 연속극을 듣기 위해 일찍 들어오게 되어 기쁘다는 가정주부도 있어 일일 연속극의 여파는 여러 군데로 파급되었다."라고 했다.
일일 연속극 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극본이었다. 여전히 전문적인 드라마 작가가 부족하던 상황이라 극본을 구하기가 수월치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한다. 타자를 압도하는 투수 몇 명만 확보하면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야구에 비유하자면, 이 시절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었다. 특히 청각 매체인 라디오의 특성을 감안하면 작가의 비중은 도드라졌다. 드라마의 성패가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처럼 인기 작가 선점을 위해 입도선매 전쟁까지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겹치기 집필은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의 실상은 어떠했던가? 1958년 현재, 대부분의 방송 작가가 20~30회 내외의 연속극을 한 달에 1편 혹은 2편, 연평균으로 치면 5~8개의 드라마 극본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환경에서 겹치기 집필과 작품 늘리기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여기서 비롯되는 폐단에 적지 않았고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역시 끊이지 않았다. 지나친 통속성과 비슷한 소재와 내용이 남발된다는 게 비판의 골자였다. 예컨대, 사실주의에 입각한 희곡을 발표했던 극작가 차범석은 "지금까지 방송되었던 작품을 볼 것 같으면 전쟁이 남기고 간 비극이니 인간성의 상실이니 하는 것이 '테마'처럼 되어 있으면서도 실상은 값싼 연애소설이나 신파극의 재탕에 한 껍질을 입힌 것이 대부분이다. 그 증거로 사건 자체의 유사성이나 인물 설정의 공식이나 삼각연애의 유희법이 어쩌면 그렇게도 흡사하고 타이프로 찍은 듯이 정확하느냐는 말이다."라고 했다.
드라마의 신선미가 사라지고 정형화된 드라마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며 드라마의 발전을 위해 내놓은 조언이었겠지만, 이는 라디오드라마만의 문제라고 볼 수 없었다. 통속적인 내용과 비슷비슷한 소재는 당대 현실과 대중문화 지형을 반영한 것이자 이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한국인의 취향을 십분 고려한 것이었다. 청취자들은 매체를 가리지 않고 통속극, 그러니까 멜로드라마를 매우 적극적으로 소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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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최현철·한진만, 『한국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한 역사적 연구』(한울아카데미, 2004), 94쪽.
- ・ 노정팔, 『한국방송과 50년』(나남출판, 1995), 242쪽, 281~282쪽.
- ・ 백미숙, 「라디오의 사회문화사」, 유선영·박용규·이상길 외, 『한국의 미디어 사회문화사』(한국언론재단, 2007), 351~352쪽.
- ・ 차범석, 「방송극을 해부한다」, 『방송』, 1960년 여름호, 36쪽; 이영미, 「1950년대 방송극: 연속극의 본격적 시작」, 『대중서사연구』 제17호, 131쪽에서 재인용.
글
출처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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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일일 연속극 때문에 파리 날리는 가게 –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김환표,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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