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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말하다
민족 고대인은 드라마 하나 제대로 볼 수 없나
정치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1987년 6월 항쟁은 승리로 끝났지만, 12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이 분열하면서 노태우가 당선된 결과에 실망했던 것일까?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시청하면서까지 복잡한 현실 사회의 문제와 맞대는 것에는 인색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와 복잡한 정치 사회상이 주는 피로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현실 도피 심리가 크게 작용한 까닭이었는지 가볍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코믹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코믹 드라마는 1990년대 초반까지 인기를 끌었다. 또한 당시 한국 사회엔 정치 냉소주의와 패배주의 등도 적잖게 확산되었는데, 드라마가 그런 대중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었다. 예컨대 1989년 방영된 KBS의 〈사랑의 굴레〉는 고두심의 대사 '잘났어 정말'을 대히트시켰는데, 당시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던 냉소적 허무주의를 반영한 것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런 가운데 1990년 군사작전 식으로 이루어진 3당 합당은 정치에 대한 대중의 냉소와 환멸을 더욱 부추겼다.
그런 대중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었을까? 1991년부터 방영된 MBC의 〈사랑이 뭐길래〉는 군사 독재 정권하에서 형성돼온 한국 사회의 흑백논리를 탈피한 이른바 '탈이분법적 정서'로 무장한 드라마라는 평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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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보수적인 가정과 진보적인 가정을 등장시켜 그 대비를 통해 양쪽의 장단점을 보여주었다.
문화평론가 강영희는 "작가는 어느 일방으로도 치우침 없이 불편부당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쌍방에 대해 공히 냉소를 보낸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가 이전의 작품에서 일방적 피해자인 주인공에 대한 감정 이입을 전제로, 가해자인 현실에 대해 냉소하던 것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작가가 일정 정도 현실의 금 안으로 들어왔음을 의미하며 또한 기성세대의 관점에 서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처럼 〈사랑이 뭐길래〉에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김수현의 작가 의식, 그러니까 불편부당의 얼굴을 한 체제 내적 시선이란 어쩌면 앞에서 언급한 대로 양비론의 형태로 드러나는 당대의 대중 심리와 같은 맥락에 놓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1990년대식 신보수주의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이 누린 대중적 인기의 비결이다."
이영미는 〈사랑이 뭐길래〉가 진보적 가정과 보수적 가정을 대비시키는 가운데 양쪽의 장단점을 보여주는 것은 결국 '양비론 또는 양시론적 냉소주의'라고 해석했다. 그는 "보수의 입장에서 진보는 비판하되, 진보의 입장에서 보수는 비판된다. 진보와 대비하여 보수의 구체적 장점이 드러나며, 보수와 대비하여 진보의 구체적 장점이 드러난다. 결국 두 집안은 세상에 대한 각기 다른 태도로 대립하지만 따지고 보자면 양쪽 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라며 "이 작품의 주제곡을 제치고 주제가에 대신할 만큼의 인기를 얻은 김국환의 '타타타'는 작가의 이러한 태도와 잘 맞아떨어진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수의 한 벌 걸치고 땅에 묻히니 그래도 세상살이가 '수지맞는 장사' 아니냐는 말은 얼마나 냉소적인 반어(反語)인가!' ······ 이것이야말로 1990년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열정적인 1970~1980년대를 지나, 이제는 여당도 싫지만 야당도 꼴 보기 싫고 대안 없고 힘없는 운동권도 더 이상 보기 싫다는, 그래서 아예 생각하고 싶지 않고 더 이상 어디에도 자신의 희망을 내맡기고 싶어 하지 않는, 아니 어쩌면 희망을 만드는 것 자체를 스스로 거부해버리는 태도인 것이다."라고 했다.
1992년 고려대학교에선 〈사랑이 뭐길래〉를 두고 이른바 대자보 논란이 발생했다. 한 대학생이 『월간 말』 1992년 2월호에 실린 비평을 인용해 "이 드라마는 진실이 전혀 없고 구성의 치밀함, 내용의 풍부함도 결여돼 있으나 흥행의 필수 요건이 위안과 재미는 가히 입신의 경지에 이르러 대중에게 왜곡된 친화력을 제공한다."라고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게재하자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그저 잘난 체하는 우리 사회 병폐의 대표적 예", "민족 고대인은 드라마 하나 제대로 볼 수 없나?", "수업은 빠져도 이 드라마는 꼭 보겠다.", "학생들의 억압에 굴하지 말라."라고 낙서로 응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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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하종원, 「텔레비전 드라마의 사회학」, 김창남 외, 『TV를 읽읍시다』(한울, 1991).
- ・ 강영희, 「김수현의 작품 세계와 대중 의식의 변증법」, 김포천 외, 『김수현 드라마에 대하여』(솔, 1998), 190쪽.
- ・ 이영미, 『서태지와 아이들: 대중문화시대 예술의 길 찾기』(한울, 1995), 182~183쪽;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90년대 편 1』(인물과사상사, 2006), 127쪽에서 재인용.
- ・ 「TV극 '사랑이……' 고대 비판·반박문 공방」, 『한국일보』, 1992년 2월 9일, 22면.
글
출처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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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민족 고대인은 드라마 하나 제대로 볼 수 없나 –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김환표,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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