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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드라마, 한
국을 말하다

국익에 좋다면 국책 드라마는 필요한가

1993년 김영삼 정권의 출범은 드라마 제작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가져 왔다.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소재의 확장이었다. 문민정부 출범을 앞두고 방송사의 드라마 소재에 대한 금기 타파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돼 드라마 소재로 채택되기 어려웠던 운동권 대학생들의 이야기가 극화되는 일도 잦아졌는데, 그런 흐름에 대해 『세계일보』 1993년 7월 9일자는 "방송 소재에 성역이 없어졌다."라고 했다.

소재 확장의 시대가 열렸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입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KBS에 대한 국정 감사가 열린 1993년 10월 19일 국회 문공위원회 회의실에서는 국회의원들과 KBS 홍두표 사장 사이에 〈한명회〉 시비가 벌어졌다. 이날 국종남, 채영석 등 야당 의원들은 1994년 1월 방영을 목표로 제작 중이던 KBS 드라마 〈한명회〉가 시대착오적인 역사 인물 설정과 드라마 주인공의 미스 캐스팅으로 공영방송의 드라마로는 부적합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총제작비 30억 원을 들이는 이 드라마가 개혁 시대 공영방송의 이념과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드라마라며 이 드라마를 축소 방영하든지 아예 비디오로 제작, 판매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KBS 사장 홍두표는 "드라마 제작은 제작진의 고유권한이며 역사 속의 인물을 통해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주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1993년 10월 노동부는 드라마가 주로 생산 현장과는 무관한 상류층 사회의 삶만을 담고 있는데다 일부 방영 중인 서민 취향의 프로그램도 농촌 드라마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해 KBS와 MBC가 협조해 노동자들을 위한 새로운 내용의 드라마를 방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노동부 장관 이인제는 5월 KBS의 〈TV 손자병법〉에 출연한 후 기자들과 만나 "텔레비전에 출연하면서 그 숱한 드라마 가운데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것이 없다는 데 놀랐다."라면서 "이른 시간 안에 방송사들과 협의해 산업 현장을 무대로 노동자들의 고뇌와 사랑 등을 담은 드라마 방영 계획을 세워볼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방송개발원 주관으로 1993년 11월 5일 열린 '좋은 드라마 극본, 어떤 것이어야 하나'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공보처 장관 오인환은 "앞으로 '드라마 사전 전작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해 TV 드라마의 경우 전편을 모두 제작한 뒤 방영토록 할 계획임을 밝혔다. 방송 작가 이희우는 "문민정부하에서 국책 드라마에 음모가 없고 순수하게 정의 사회 구현과 민족 번영을 목적으로 한다면 방송 작가들도 국책 드라마 제작에 흔쾌히 참여하리라고 본다."라며 "개혁을 앞당길수록 국익에 좋다면 당당하고 과감하게 국책 드라마를 만들어 방송을 통한 국민 의식 개혁 목적에 접근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드라마를 통해 국민 의식 개혁을 이루겠다는 뜻이야 가상했지만 문제는 1970대부터 줄기차게 정책 홍보성 드라마를 시청해온 시청자들의 취향이었다. 정책 홍보성 드라마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살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문민정부의 드라마 정책은 애초부터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 쾌락과 욕망의 보고라 할 소비 시대의 개막은 의미보다 감각과 훨씬 친화성이 강했으니 이제 드라마는 본격적으로 소비의 전도사로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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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전정희, 「금기 소재 드라마화 활발」, 『국민일보』, 1993년 1월 30일, 13면; 박근애, 「TV '문민시대' 못따른다」, 『한겨레』, 1993년 4월 19일, 12면; 문상식, 「방송 소재 '성역'이 없어졌다」, 『세계일보』, 1993년 7월 9일, 11면.
  • ・ 오광수, 「"사극 '한명회' 시대착오적인 드라마 주인공 출연료 2억 책정 과다"」, 『경향신문』, 1993년 10월 21일, 18면.
  • ・ 「본격 '노동 드라마' 추진: 노동부 MBC­KBS와 협의 마쳐」, 『한겨레』, 1993년 10월 20일, 16면.
  • ・ 「"순수한 국책 드라마 만들자": 방송개발원 '좋은 드라마 극본' 토론회」, 『국민일보』, 1993년 11월 5일, 10면; 김종면, 「TV 방영 드라마 사전 전작제 검토: 오 공보처 연설」, 『서울신문』, 1993년 11월 6일, 22면.

김환표 집필자 소개

IT와 SNS 문화,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문화평론가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월간 『인물과사상』에 ‘사회문화사’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인물 포커스’를 연재하고..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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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 저자김환표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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