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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말하다
박정희 정권의 딜레마와 연속극 폐지론
박정희 정권은 적잖은 딜레마에 빠졌을 것이다. 왜 그런가? 정책 홍보성 드라마를 통해 경제성장의 증거를 보여주고자 했지만, 시청자의 외면으로 그런 목적을 달성하긴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성장에 따른 사회 발전상을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한 일일 연속극이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이 경제성장의 성과를 텔레비전을 통해 확인하는 순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문이 득달같이 일일 드라마의 퇴폐 저속을 문제 삼고 나섰을 뿐만 아니라 정권이 계몽과 지도 편달의 대상으로 여긴 국민들까지 일일 연속극이 부추기는 불륜과 빈부 격차를 비판하고 나서자 일일 연속극을 손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경제성장의 이면에서 희생해야 했던 사람들이 '빈부 격차'를 확인하며 소외감과 사회적 불만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일일 연속극이 경제성장의 성과를 적당한 선에서 조율해 방영했다면 박정희 정권의 딜레마는 해결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경제성장의 증거는 정권의 안정화를 꾀하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끌어올리는 매력적인 지배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사마다 목적극 방영으로 떨어진 시청률과 광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 과거보다 더 자극적인 소재와 내용으로 브라운관을 채웠고, 그러다 보니 수위 조절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설혹 수위 조절을 했다고 하더라도 신문의 공세가 한결 강화되었기에 일일 연속극은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고 신문의 비난마저 거세지자 방송사들은 1975년 5월 23일 '방송정화 실천요강'을 채택하고 바싹 엎드렸다. 방송사들은 앞으로 "가정의 순결성과 예절을 존중하고 특히 역사물에 있어서는 권력암투, 부패, 고기(枯忌) 등의 묘사를 지양하고 역사를 통한 국난극복의 애국정신 등 교훈적 내용을 강조"하겠다며 "국론을 분열케 하거나 사회의 공공질서를 문란케 하는 내용, 민족의 주체성을 해치거나 국가 간의 문제에 편견을 가지게 하는 내용, 전통문화를 해치거나 국민의 올바른 역사관을 그릇되게 하는 내용, 불건전한 남녀관계와 선정적 묘사로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퇴폐풍조를 조장하는 내용, 국민의 사치성을 조장하거나 지역 및 계층 간의 감정을 유발하고 문화적 격차를 느끼게 하는 내용" 등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방송사가 자율 정화를 선언했지만, 1975년 6월 12일부터 3일간 열린 방송인 세미나에서는 '연속극 폐지론'이 나오는 등 1975년은 일일 연속극 수난의 해였다. 문공부는 그해 9월 초 '추계기본방송순서개편방향'을 방송국에 시달하고 일일 연속극을 하루 3편 이내로 줄이도록 지시하며 일일 연속극 홍수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또 범죄 수사극이나 폭력 액션극, 퇴폐적이고 저속한 드라마를 지양하도록 지시했다. 정권의 행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일까? 이익집단과 시청자들도 차츰 드라마를 동네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김연진의 술회다.
"1975년도에 KBS로 방영된 〈엘루야〉에서 이효춘은 극 중 면도사로 나왔다. 같은 이발소의 총각이 이효춘을 짝사랑해 고백하나, 이효춘은 재벌집의 대학생 애인이 있는 몸. '너 같은 이발사한테 내가 왜 가니?' 단호한 보이콧이다. 다음날 방송사 예능국엔 하루 종일 사무가 마비될 정도로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정식으로 공개사과 않으면 전국 이발사협회 회원들이 집단항의 시위하겠다고. 그뿐이랴. 메디컬 드라마 〈소망〉에서 간호사가 채혈하는데 팔에 고무줄도 안 묶고 하고, 의사가 간호원이라고 호칭한다고 해당 협회에서 '간호원'을 '간호사'로 호칭해달라고 시정을 요구하는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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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방송 정화 실천 요강」, 『경향신문』, 1975년 5월 26일, 4면.
- ・ 『중앙일보』, 1975년 6월 20일, 5면.
- ・ 「문공부, 방송 프로 개편 지시」, 『조선일보』, 1975년 9월 14일, 조간 5면.
- ・ 김연진, 『내 연출 내 젊음 35년: 김연진의 TV 비망록』(다인미디어, 2000), 137쪽~138쪽.
글
출처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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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박정희 정권의 딜레마와 연속극 폐지론 –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김환표,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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