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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드라마, 한
국을 말하다

드라마는 욕망의 전도사

멜로드라마가 눈물을 핵심 코드로 삼았지만, 비극적 정조만 양산해낸 것은 아니다. 시대 상황 때문에 꿈과 낭만이 거세되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인이 '욕망'마저 버린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비참한 상황이었기에 본능적 욕망이 더 끓어올랐는지를 모르는 일이다. 실제 1950년대는 국가적으로 아주 강렬한 욕망이 꿈틀거리던 시기였다. 바로 근대화의 욕망이었다.

이 욕망은 우선 도시 인구의 급증으로 나타났다. 1949년 인구 2만 명 이상의 도시에 사는 사람은 27.5퍼센트에 불과했지만, 1955년엔 43.2퍼센트로 늘어났다.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과 대구 등 지역 거점 도시들도 빠른 속도로 농촌 인구를 흡수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도시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1952년 말, 법조인의 51.3퍼센트, 의사의 43.9퍼센트, 약사의 65.9퍼센트, 대학생의 50퍼센트가 서울에 있었다. 이렇듯 부와 권력의 집중이야말로 도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었다.

라디오드라마는 근대화와 도시화를 향한 대중의 욕망을 적극 반영하고 나섰다. 예컨대, 〈청실홍실〉을 비롯해 당시의 라디오드라마는 화려하고 서구화된 대도시를 주요한 배경으로 삼았다. 등장인물 역시 중상류 계층이었다. 이와 관련,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는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은 대도시가 많으며, 인물의 직업으로는 남성은 사업가 혹은 사장(식민지 시대의 부자는 은행가이거나 그냥 부호인 것과 달리, 이 시기에는 무역 회사나 제조업 회사를 경영하는 사업가로 등장했다), 사장 비서 등 안정된 직장을 가진 직원, 기자, 의사, 교수, 미술가, 권투선수나 축구선수, 여성은 사장 비서, 사장 딸, 여대생, 술집의 마담이나 여종업원, 간호원, 유치원이나 보육시설의 보모 등이 자주 등장한다."라고 했다.

"외국 유학이라는 설정도 잦으며, 특히 여성 인물의 경우 음대 학생 혹은 음대 출신의 여자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이러한 직업들은 대중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업들이며 일부는 소수 부유층의 직업이기도 하다. 술집의 마담이나 여종업원은 선망의 대상은 아니지만, 그들이 화려한 향락의 영역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화려한 대도시 사람들의 삶과 어우러질 수 있다."

도시화와 근대화는 사실, 미국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당시 라디오드라마가 보여주던 욕망은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장하던 미국의 문화가 낳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시사하듯 1950년대는 전후 비참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비극의 유행과 동시에 욕망의 보고라 할 양키 문화가 공존하던 시절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삶이 비루했기에 근대화와 미국화를 향한 한국인의 욕망이 비극적 정조보다 더욱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낳은 비극적 정조는 '과거'이자 '현재'였지만, 근대화와 미국화를 향한 욕망은 '미래'이자 '꿈'이었기 때문이다. 라디오드라마와 1950년대의 대중문화는 대중의 그런 심리를 꿰뚫어보고 꿈과 환상을 제공하며 대중의 지친 일상과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함과 동시에 이후 한국인의 삶의 문법을 지배하게 될 '근대화'와 '미국화' 욕망을 확대재생산하는 기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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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50년 대 2』(인물과사상사, 2004), 303쪽.
  • ・ 이영미, 「1950년대 방송극: 연속극의 본격적 시작」, 『대중서사연구』, 제 17호, 106쪽, 132~133쪽.

김환표 집필자 소개

IT와 SNS 문화,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문화평론가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월간 『인물과사상』에 ‘사회문화사’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인물 포커스’를 연재하고..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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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 저자김환표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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