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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말하다
TV 드라마의 사투리 차별
1960년대와 1970년대 드라마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 게 드라마의 사투리 차별이었다. 등장인물의 성격 창조를 위해 적절한 사투리의 사용은 필요한 일이었다. 문제는 스테레오타입화였다. 드라마 속 사투리가 지역 주민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확대재생산하며 '서울과 지역', '지역과 지역'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의 사투리 차별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였는데, 특히 1970년대 초반엔 TBC의 사투리 차별이 심각했다.
"의리 있고 싹싹한 인물은 으레 경상도 출신이고 노랭이, 깍쟁이는 이북 출신이며 빡빡한 타향살이에 비천한 인품은 전라도 출신으로 설정했다. 천하태평에 무량태수 격은 충청도 출신이 도맡아 했고 날렵하고 분별력이 좋은 인물은 서울 출신의 차지였다. 이러한 지방별 도식적 인물 설정과 선입견은 특히 TBC 드라마에 민감하게 작용했다. 당시 TBC 사주 측이 영남 출신이라는 사실을 포함하여 지역 투자나 개발의 호남 소외 현상도 반사적으로 작용한 탓이었다."
드라마의 사투리 차별과 이로 인한 '서울과 지역', '지역과 지역' 사이의 갈등이 쌓여가면서 드라마의 사투리 차별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드라마의 순기능을 강조해왔던 박정희 정권은 드라마가 특정 지역 차별과 그로 인한 지역 갈등 유발 효과를 낳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드라마 속 사투리 차별은 '저속 퇴폐'가 아니었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사투리 차별이 국민 통합에 별다른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박정희 정권이 드라마의 사투리 차별에 대해 큰 문제의식이 없던 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불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특히 피해받는 지역 출신들의 불만이 대단했다. 충청도 출신 김석영은 "극마다 등장하는 식모 역과 하인 역의 말투가 거의라고 할만큼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충청도의 사투리를 그토록 살리지 않으면 극이 구성되지 않으며 실감이 안 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수많은 지방 방언 중 하필이면 충청도 방언만을 천역들의 사용어로서 애용하는 것인지, 또는 충청도만이 식모와 천인들의 소산지란 말인지 도시 이해가 안 가며 심지어는 불쾌감과 함께 자존심마저 꺾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이는 충청도 출신인 나의 옹졸한 생각에서만 발산되는 감정만은 아닐 것으로 안다."
사투리 차별은 국회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1971년 11월 13일 국회문공위 감사에서 이도선 의원은 "나는 전라도 출신인데 TV 드라마나 방송극을 보면 전라도 사람은 모두 식모 등으로 나오고 있으며 연기자의 전라도의 사투리도 엉터리다. 이를 시정해주기 바란다."라고 했다.
리영희는 『신동아』 1972년 3월호에 쓴 「텔레비전의 편견과 반지성」에서 "볼 때마다 불쾌해지는 것에 우리 집 식구들이 열중하는 단막 또는 연속의 사회물이 있다."라며 "한 스토리에 주인이 있고 그에 매인 사람이 있으면 주인은 으레 서울말을 쓰고, 매인 사람은 사투리를 쓰면서 등장한다. 또 유심히 보았더니 가정극에 나오는 식모에게는 어느 도의 사투리로 한다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 같고, 사회 풍자극 등에서는 또 건전치 못한 행위를 하거나 수모를 당하는 역의 출신지도 대개 정해져 있고, 쾌감을 주거나 용기와 정의를 상징하는 역의 언어는 거의 예외 없이 또 어느 도 사투리가 독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라고 꼬집었다.
사투리 차별이 가져오는 사회적 갈등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던 것일까? 박정희는 1972년 유신을 단행하면서 드라마 제작과 관련해 방송사에 '지방 사투리를 남용하지 말 것'을 세부지침으로 하달했다.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내용에 그쳤다. 이후에도 드라마의 사투리 차별은 여전했으며, 특정 지역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확대재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흥미로운 것은 박정희 정권과 마찬가지로 드라마의 사회적 역기능을 비판해온 신문들 역시 '사투리의 정치학'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드라마 속 사투리의 차별은 이후에도 자주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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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오명환, 『텔레비전 드라마 사회학』(나남출판, 1994), 315~316쪽.
- ・ 김석영, 「방언 사용 신중히 연속극 인물 말씨에 편벽 많아」, 『경향신문』, 1970년 4월 10일, 2면.
- ・ 「극 중 사투리 말썽」, 『경향신문』, 1971년 11월 15일, 15면.
- ・ 리영희, 「텔레비전의 편견과 반지성」, 『전환시대의 논리-아시아·중국·한국: 리영희 평론집』(창작과비평사, 1974, 11쇄 1979), 175~176쪽.
글
출처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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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TV 드라마의 사투리 차별 –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김환표,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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