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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드라마, 한
국을 말하다

〈뿌리〉의 영향과 대형 드라마의 등장

각종 규제와 통제 속에서 드라마 제작 경향에도 큰 변화가 닥쳐오고 있었다. 바로 대형 드라마 제작 경쟁이었다. 1978년부터 경쟁하듯 이른바 대형 드라마가 등장했다. 방송사의 새로운 실험에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심현우는 "1978년 3월부터 밀어닥치기 시작한 소위 '대형 특집 드라마'라는 거대한 회오리바람 때문에 한국 TV 드라마는 17년 만에 드디어 껍질을 깨는 지독한 아픔을 겪게 되었다."라면서 "숱한 비난과 논란 속에서 연속극이라는 이름으로 안방극장을 휩쓸어왔던 TV 드라마가 그 존폐 위기론까지 대두되었던 한계 상황에서 돌연 새로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연속극 패턴에 익숙해 있던 주부층 시청자들로부터는 이게 무슨 아닌 밤중의 홍두깨냐는 식의 못마땅함과 경외의 눈초리를, 평소 TV 드라마를 외면해온 지식층들로부터는 설마 하는 반신반의와 기대감을 한 몸에 모았"다고 했다.

대형 드라마의 탄생은 일일 연속극에 대한 정부의 규제 탓이 컸지만, 미국에서 날아온 미니 시리즈 〈뿌리〉의 영향 또한 적지 않았다. 1978년 TBC에서 방영된 미국 ABC 방송국의 작품 〈뿌리〉는 일일 연속극에 푹 빠져 있던 한국인에게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이며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일본의 영향도 컸다. 1960년대 일본에서는 홈드라마 경쟁이 심해지면서 'TV 백치론'까지 등장할 만큼 TV 프로그램의 저속화·저질화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NHK가 각계각층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국민적 드라마' 기획에 열중해 드라마의 대형화에 박차를 가했는데, 이 역시 우리나라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외화 〈뿌리〉의 영향으로 드라마의 대형화 경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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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기술의 발달도 한몫했다. 1976년 당시로서는 첨단 방송 장비인 ENG 시스템이 야외 녹화에 투입되어 드라마 제작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스튜디오에서 탈출해 야외 로케가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또 같은 해 KBS는 여의도 방송센터로 이전해 여유 있는 제작 공간을 확보해 드라마 제작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대형 드라마 역시 '목적극' 형식을 띠고 있었다. 초기 대형 드라마의 소재가 주로 6·25나 8·15 등과 관련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게 시사하듯이, 정부 정책에 어울리지 않는 대형 드라마 제작은 생각하기 어려웠으며, 나아가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실행하기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이 역시 졸속 제작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조항제는 "그러나 인적 자원과 제작 시설의 획기적인 확충이 없는 가운데서 시도된 4~5간물 대형 드라마의 제작은 무리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라고 진단했다.

"4~5명의 한정된 작가에 촬영·편집·녹음·방송까지 불과 1개월 내외의 기간밖에 주어지지 않았고, 원고료·출연료 또한 일일극과 다르지 않아 매너리즘을 면치 못했으며, 테마 선택에서도 여전히 편협해 목적극 일변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방의 영업적 측면에서도 대형극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광고주가 제한되어 있어 수입의 증대보다 오히려 감소시킬 우려가 더 컸던 것이다. 1978년 이후 대형 드라마의 장이 열렸다고는 하나 아직도 대부분이 정책용 제작물인 계기 특집인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대형극의 의미는 저질·퇴폐라는 비판에 대한 대응으로 우선의 스테이션 이미지의 고양 효과와 함께 앞으로의 가능성 타진을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의 의미가 들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한번 타오르기 시작한 드라마 대형화 경쟁은 가열 양상까지 보였다. TBC는 '테마 드라마'라는 이름하에 〈통곡〉, 〈파도여 말하라〉 등 90분에서 최장 3시간짜리 와이드 드라마를 내놓았으며, MBC 역시 이에 뒤질세라 1979년 2월 27일부터 3일간 90분짜리 〈대한문〉을 방송한 후, 계속해서 다부작 형식의 대형극을 내놓았다. 1978년 3월부터 1979년 3월까지 1년간 총 15편의 대형 특집 드라마가 제작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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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심현우, 「대형 드라마 제작상의 문제점」, 『신문과방송』, 1979년 3월호, 125쪽.
  • ・ 오명환, 『텔레비전 드라마 사회학』(나남출판, 1994).
  • ・ 정순일·장한성, 『한국 TV 40년의 발자취: TV 프로그램의 사회사』(한울아카데미, 2000).
  • ・ 조항제, 「1970년대 한국 텔레비전의 구조적 성격에 관한 연구: 국가 정책과 텔레비전 자본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신문학과 박사 학위 논문, 1994년 2월, 193~194쪽.
  • ・ 심현우, 「대형드라머 제작상의 문제점」, 『신문과방송』, 1979년 3월호, 125쪽.

김환표 집필자 소개

IT와 SNS 문화,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문화평론가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월간 『인물과사상』에 ‘사회문화사’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인물 포커스’를 연재하고..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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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 저자김환표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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