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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드라마, 한
국을 말하다

드라마를 지배하는 일일 연속극 제작 시스템

MBC가 개국한 1969년부터 일일 연속극 붐이 일었다. 왜 그랬을까? 이는 TV의 급속한 증가와 관련이 깊다. 1965년까지 4만 대에도 미치지 못한 TV는 1968년에 10만 대를 돌파했다. 1969년 7월 말에는 등록된 것만 약 18만여 대에 이르렀는데, 미등록 TV까지 합치면 약 3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었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근대화에 매달린 당시 사람들이 집에서까지 심각한 사회문제에 관한 것들을 볼 이유가 없었"던 한국인의 상황도 한몫했다. 오락 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텔레비전은 우선 그 자체로 신기한 볼거리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국가 발전과 경제성장을 위해 일터에서 지친 심신을 TV가 제공하는 당의정과 같은 오락 프로그램이 주는 위안을 통해 풀어놓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TV 급증이 외부 요인이라면 내부 요인은 제작의 경제성과 시장성이었다.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일일 연속극은 적은 비용을 들여 만들 수 있는 훌륭한 효자 상품이었다. 단 회 드라마에 비해 제작비가 적게 들었을 뿐만 아니라 일일 연속극은 보통 하루에 일주일 분을 모두 찍을 수 있었기 때문에 방송사로선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또한 부족한 방송 작가와 열악한 스튜디오 부족도 커버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 세트 몇 개만 세워놓고 내용만 조금씩 다르게 설정해서 제작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해진 방송 스케줄과 제한된 제작비용, 일일 연속극 경쟁으로 인해 드라마 제작 인력은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혹사당해야 했다. 심지어 AD 한 명이 한꺼번에 3~4개의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는 일도 있었다.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가면 다행이었고, 통행금지에 걸려 방송사에서 잠을 자야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일일 연속극 〈물레방아〉를 연출한 이동희는 "그때에는 일반적인 경우가 일일 연속극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5회 분량을 녹화하는 데 하루가 배정되어 있었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방영 시간으로 100분이 되는 분량을 어떻게든 하루에 찍어내야만 펑크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새벽부터 시작한다 하더라도 12시면 통행금지 시간이 되던 때라, 12시라는 시간은 연기자를 포함한 전 스태프를 쫓고, 우리는 내몰리는 듯한 기분인 채로 열심히 찍고······. 결국 11시 55분에야 끝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귀가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더 큰 이유는 일일 연속극의 시장성이었다. 라디오 시절부터 연속극은 대중이 가장 선호하는 프로그램으로, 청취율 조사에서 항상 수위를 차지했다. 방송사들이 연속극의 그런 시장성에 주목한 것은 당연했다. 특히 MBC가 개국하면서 제한된 광고 시장을 두고 방송 3사가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게 되면서 일일 연속극 제작은 방송사의 '생존 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일 연속극 제작을 요구하는 광고주들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제작비를 지원한 광고주들은 노골적으로 일일 연속극 제작을 강요하며 방송사를 일일 연속극 경쟁의 마당으로 내몰았다.

놀라운 사실은 방송사의 생존을 위해 제작비 절감이라는 씨줄과 상업성이라는 날줄이 교직되면서 등장한 일일 연속극 제작 시스템이 이후, 한국 사회 텔레비전 드라마의 제작 원칙을 지배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자세하게 드러나겠지만 한국 TV 드라마를 지배하는 정신과 철학은 여전히 일일 연속극 제작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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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정순일·장한성, 『한국 TV 40년의 발자취: TV 프로그램의 사회사』(한울아카데미, 2000), 70쪽.
  • ・ 「TV 시대 개막: 전파 미디어의 현황과 전망」, 『동아일보』, 1969년 8월 9일, 5면.
  • ・ 임종수, 「1960~1970년대 텔레비전 붐 현상과 텔레비전 도입의 맥락」, 『한국언론학보』, 48권 2호, 94쪽에서 재인용.
  • ・ 김연진, 『내 연출 내 젊음 35년: 김연진의 TV 비망록』(다인미디어, 2000).
  • ・ 이동희, 「라디오 팀의 대거 TV 진출-〈물레방아〉」, 오명환, 『텔레비전 드라마 사회학』(나남출판, 1994), 417쪽.
  • ・ 강준만, 「한국 TV 드라마 개혁론」, 『월간 말』, 1992년 3월호.

김환표 집필자 소개

IT와 SNS 문화,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문화평론가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월간 『인물과사상』에 ‘사회문화사’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인물 포커스’를 연재하고..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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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 저자김환표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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