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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콘의 급속한 확산은 광고 기피 현상도 낳았다. 드라마 시청률과 광고 노출이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광고 효과를 겨냥한 기업들의 TV 드라마 찬조 전쟁이 불붙었다. 간접 광고였다.

『한겨레』 1995년 5월 18일자 기사는 "국내 최대 제조업체인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가 협찬하거나 공동 제작한 텔레비전 드라마가 몇 개월 시차를 두고 방영된다. 양대 재벌 간판 기업의 협찬 드라마가 안방에서 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말부터 제작하기 시작한 SBS의 기업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에 16억 원의 제작비와 차량 100여 대를 제공하는 등 전례 없이 파격적인 지원을 했다."라고 썼다.

"라이벌인 삼성전자는 올해 초 KBS와 기업 드라마 〈프로젝트〉를 공동 제작키로 하는 계약을 맺고, 현재 작품 기획과 출연진 선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아스팔트 사나이〉는 한 젊은이의 집념으로 국내 자동차 업체가 해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당당히 승리한다는 내용이다. 현대는 물적 지원 외에 홍보 담당 임직원을 미국 현지 촬영에 동행하게 해 진행을 돕고 울산공장을 촬영장으로 제공했다. 특히 사내의 일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업체로서는 1급 보안 구역인 자동차기술연구소와 디자인실까지 세트로 제공했다. 여기에다 이달 초 서울모터쇼에서도 공개하지 않은 아반떼 쿠페형을 이 드라마를 통해 공개하는 등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KBS와 공동 제작키로 한 기업 드라마 〈프로젝트〉는 삼성의 간판 업종인 반도체·전자산업이 발전하는 과정을 다뤘다. 특히 반도체 업체에 입사한 젊은 직원들이 일본 업체와 치열하게 대결해나간 끝에 대형 프로젝트를 따내는 데 성공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된다'는 한국인의 자동차 중독증을 겨냥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대기업의 배포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을까. 드라마 협찬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업종은 자동차 분야였다. 드라마는 자동차 회사의 각축장이 되어야 했다. 『한국일보』 1995년 5월 30일자는 "국내 자동차 회사들이 TV 드라마와 영화 등에 자사 차량을 총동원하는 등 간접 광고에 열을 올리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드라마나 영화의 자연스런 분위기 속에서 제품의 이미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간접 광고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간접 광고의 규모가 갈수록 대형화하는 등 자동차 회사 간 출연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국내 최초의 자동차 드라마인 〈아스팔트 사나이〉에 사상 최대의 물량과 인력을 지원했다. ······ 현대는 지난해 〈모래시계〉 등 각종 TV 드라마 등에 모두 31대의 차량과 제작비를 지원하는 등 드라마 출연에 앞장서고 있다. 대우자동차는 현재 MBC의 〈종합병원〉, KBS의 〈좋은 남자 좋은 여자〉 등 8개 드라마에 프린스, 씨에로 등 대우차 10여 대를 지원해주고 있다. ······ 이와 함께 기아자동차도 KBS의 일요 드라마인 〈사랑한다면서〉에 스포티지를, MBC의 청소년드라마 〈사춘기〉에 세피아 1대를 지원해주고 있다. 이에 앞서 기아는 지난해 MBC에서 방영된 미니 시리즈 〈도전〉에서 포텐샤 등 차량 3대를 제공하는 한편 시흥의 소하리공장과 연구소 등을 촬영 장소로 제공해 주목을 받았다."

드라마는 훗날 외제차 홍보의 각축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