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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드라마, 한
국을 말하다

스타 시스템과 탤런트 스카우트 경쟁

MBC의 개국으로 방송 3사 체제가 구축되면서 탤런트 스카우트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이는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동아일보』 1970년 11월 28일자 기사는 "3국 간의 추잡한 탤런트 스카우트 경쟁으로까지 치달았다."라고 개탄했다. 이는 물론 급증한 드라마 편수와 일일 연속극의 롱런 때문이었다. 1971년에 3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는 모두 21편에 달했으며, 일일 연속극도 한번 시작했다 하면 200회를 넘기기 일쑤였다.

스카우트 경쟁은 탤런트 간 빈부 격차와 갈등도 낳았다. 비슷비슷한 소재와 내용의 드라마가 안방을 장악하다 보니 아무래도 시청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기가 높은 탤런트들의 주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동아일보』 1971년 6월 26일자 기사 「TV 탤런트, 브라운관이 낳은 대중오락 시대의 우상」은 "각 국에서 특A급 및 A급 대우를 받고 있는 톱 탤런트들의 수입은 월평균 50만 원선을 넘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 숫자는 50여 명 정도. 45분짜리 드라마의 경우, 한 프로당 2만 5000원에서 2500원까지, 5~6개의 급이 있어 상하의 차이는 심각하다. ······ 3국이 경쟁에 몰두, 스카우트에 따르는 추문이 꼬리를 물고 질서 있던 탤런트 간에 불신 풍조가 도를 더해가고 있는 현실······. 같은 탤런트 사회에도 심각한 수입 격차를 초래하고 2~3년 된 C, D, E급은 회당 출연료가 고작 1000원에서 1500원에 머물고 있다. 작년 모 국의 중견 탤런트가 빚에 몰려 피살된 예가 있는가 하면 자칫 허영에 흘러 앞길을 망치는 예도 적지 않다."

스카우트 경쟁은 영화배우의 TV 입성도 불러왔다. 1970년대 영화계 1대 트로이카로 불리던 윤정희, 문희, 남정임도 영화의 높은 인기를 발판으로 안방을 찾기 시작했다. 유명 배우의 경우, 수입도 영화보다 TV가 훨씬 좋은 편이었다. 영화배우의 드라마 출연은 영화의 몰락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TV의 급증은 더 이상 극장을 찾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었고, 영화의 주요 관객층으로 이른바 '고무신 관객'으로 통했던 30~40대 여성층 관객을 TV가 있는 안방극장에 주저앉히는 효과를 불러왔다. 예컨대 1969년 연인원 1억 7300만 명을 기록한 영화 관객은 1972년 1억 1800만 명으로 급감했다. 줄어든 관객 숫자를 반영하듯 1970년 231편이 제작됐던 한국 영화는 1972년 112편으로 줄어들었다. 이게 시사하듯, 영화는 TV 대중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방송 3사 간의 스카우트 경쟁으로 스카우트 비용이 급증해 방송사의 부담이 더욱 커졌다. 과열 경쟁에 따른 몸값 상승은 신인 연기자 발굴의 촉매가 되기도 했는데, 1970년대에 이미 이른바 '길거리 캐스팅' 시도가 있었다는 게 흥미롭다. 당시 '길거리 캐스팅' 장소 가운데 하나는 여대 앞이었다. 탤런트가 인기 있는 직업으로 부상하고 있긴 했지만, 당시 상황에서 '길거리 캐스팅'은 낯선 일이었고, 이 때문에 연출가들은 때로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김연진이 전하는 〈파도〉(1972) 제작 당시 에피소드를 감상해보자.

"당시 임학송 씨는 주연을 맡을 연기자의 이미지를 물색하기 위해 멋쟁이들이 돌아다닌다는 E여대 앞에서 특유의 빵모자를 쓰고 서성거리다가 치한으로 몰려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다.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애인을 찾는 것처럼 대학 문 앞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여대생들의 얼굴만을 뚫어져라고 지켜보고 있으니 경비가 임무인 수위들 눈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오?' '나는 방송국에서 나온 연출자요!' 임학송 씨의 말소리는 두툼하고도 컸지만 그들에게 그 말이 통할 리 없었다. 그만 수위들 손에 이끌려 인근 파출소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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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TV탤런트 브라운관이 낳은 대중오락 시대의 우상」, 『동아일보』, 1971년 6월 26일, 5면.
  • ・ 임종수, 「1960~70년대 텔레비전 붐 현상과 텔레비전 도입의 맥락」, 『한국언론학보』, 48권 2호, 87쪽; 김학수, 『스크린 밖의 한국영화사 1』(인물과사상사, 2002), 229~231쪽.
  • ・ 김연진, 『내 연출 내 젊음 35년: 김연진의 TV 비망록』(다인미디어, 2000), 125~126쪽.

김환표 집필자 소개

IT와 SNS 문화,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문화평론가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월간 『인물과사상』에 ‘사회문화사’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인물 포커스’를 연재하고..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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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 저자김환표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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