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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드라마, 한
국을 말하다

〈팔도강산〉 작가가 아니라 잡가올시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희생양으로 삼은 경제성장은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탄생시켰고, 비판적인 목소리들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정부의 정당성을 위해서라도 경제 발전의 성과를 홍보해나가는 '정책 홍보성 드라마'가 필요했다. 1974년 4월 15일 KBS에서 방영을 시작해 1975년 10월 5일 398회로 종영한 〈꽃피는 팔도강산〉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드라마였다. 〈꽃피는 팔도강산〉 역시 새마을 드라마로 분류할 수 있는데, 여타의 새마을 드라마가 개발과 근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면 〈꽃피는 팔도강산〉은 주로 경제 성장의 성과와 과실을 보여주는 데 치중했다.

애초 〈꽃피는 팔도강산〉은 영화 〈팔도강산〉을 드라마화한 것이다. 1966년 영화로 제작된 이후, 속편만 4편이나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가 영화 흥행을 등에 업고 정권 홍보 차원에서 TV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원래 황정순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게끔 돼 있었는데 당시 윤주영 장관의 강력한 요청으로 황정순을 살리느라 영화가 엉망이 되고 말았다. 나중에 윤주영은 당사자들에게 사과하면서 〈팔도강산〉을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서 그랬다고 회고했다. 〈꽃피는 팔도강산〉에도 역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스타 시스템'과 한국인이 사랑하는 코드인 멜로드라마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이다. 특히 김희갑·황정순·최은희·장민호·황해·박노식·태현실 등 당대의 톱스타들이 총출동한 초호화 캐스팅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정책 홍보 드라마인 〈꽃피는 팔도강산〉은 우리나라의 경제가 성장한 모습을 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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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강산〉의 TV 드라마화는 순탄치 않았다. 당시 드라마의 대본 집필을 의뢰받은 작가 신봉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원고료에다 새마을훈장도 주선해주겠다는 조건이었지요. 내가 TBC에 전속돼 있어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니까 윤주영 문공부 장관은 'TBC 측의 양해를 얻어놓을 테니 염려 말라'는 거예요. 친한 친구들과 의논했더니 괜히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한다며 한결같이 말려요. 그래서 아예 잠적해버렸습니다. 문공부와 KBS에서는 나를 찾느라 비상이 걸렸지요. 인천 올림푸스호텔, 서울의 앰배서더호텔, 세종호텔을 열흘 가까이 전전했습니다. 결국 필자는 윤 모 씨로 바뀌었습니다."

〈꽃피는 팔도강산〉은 정책 홍보성 드라마답게 정부의 후원이 대단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승용차가 드물어 고속도로를 달리는 장면을 찍을 때면 오가는 차가 없어 애를 먹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경찰이 나서서 차량을 막았다가 한꺼번에 풀어 도로가 승용차로 붐비는 모습을 화면에 담기도 했다. 또 황정순과 김희갑 부부가 울산, 포항 등지의 산업 시설을 시찰할 때 아들 내외나 관계자들이 "이게 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도력 덕분이 아니냐"라고 말하는 등 노골적으로 정권을 홍보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해 박정희의 통치 기간 중 "가장 성공적인 홍보물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꽃피는 팔도강산〉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드라마 극본을 집필한 윤혁민은 "나에게는 곧잘 당혹감을 안겨주는 작품의 하나"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행이 많은 사람들이 봐줬기 때문에 아직도 어떤 자리에서 누가 나를 초면의 사람에게 소개를 할 때는 그 작품을 들먹이는 경우가 많고 중년 이상들은 거의 다 그 작품을 기억해주기 때문에 굳이 '족보'를 대줄 필요가 생략되는 이점은 있다. 그런데 그 반응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다. '아······.' 감탄사 한마디로 그냥 재미있게 봐줬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위 먹물깨나 들은 사람들 중엔 '아, 그거요? 박통이 우리나라 발전상을 홍보하기 위해서 만든 홍보 드라마였죠?' 하는 식으로 아는 체를 했고 그 표정의 근저엔 '짜식, 뭔가 했더니 어용작가였구만' 하는 비아냥이 배어 있게 마련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도 하는 얘기가 있다. '아, 〈팔도강산〉 작가가 아니라 잡가올시다.' ······ 그 무렵(1975년-필자 주)의 일이다. 한밤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개 씹니까?' '네, 누구신데요?''아, 나 팔도강산 시청자올시다.' 그래놓고 대뜸 욕이 터져나왔다. '야 이 개새끼야. 너도 똑같은 놈이야 임마.' 꽈당!"

정책 홍보성 드라마라곤 하지만 대히트를 친 드라마의 작가가 받아야 했던 사회적 지탄과 눈총은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 드라마가 처한 수난의 좌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녀 간 사랑과 가정 문제를 다룬 지극히 사적인 소재는 정권에 의해 '저속 퇴폐'의 올가미에 걸리고 정책 홍보성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격한 항의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그런 이중적 수난이야말로 박정희 정권이 한국 드라마에 남긴 유산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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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최창봉·강현두, 『우리 방송 100년』(현암사, 2001).
  • ・ 노재현, 「영화·TV 드라마 '팔도강산' 3공 홍보역 "톡톡"」, 『중앙일보』, 1992년 8월 8일, 26면에서 재인용.
  • ・ 이도흠, 「이도흠의 한국 대중문화와 미디어 읽기 3: 한국 TV 드라마의 이데올로기를 고발한다 ①」, 『월간 인물과사상』, 1999년 11월호, 108~109쪽; 오명환, 『텔레비전 드라마 사회학』(나남출판, 1994).
  • ・ 윤혁민, 「TV 일일 연속극-꽃피는 팔도강산」, 『방송문예』, 1995년 10월호.

김환표 집필자 소개

IT와 SNS 문화,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문화평론가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월간 『인물과사상』에 ‘사회문화사’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인물 포커스’를 연재하고..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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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 저자김환표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최초의 드라마사면서 드라마로 보는 사회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토록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말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물론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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