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인상주의는 살롱전에 대한 저항으로 1874년에 ‘화가, 조각가, 판화가, 무명예술가 협회전’을 처음 연 이래 1886년까지 총 8회의 전시를 이어나간 미술가들의 주된 특징을 일컫는다. 처음에는 그저 독단적인 아카데미와 살롱전을 거부하는 새롭고 신선한, 그러나 제대로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자신들의 미술 세계를 마음껏 펼치고자 독립적으로 전시회를 열었지만, 첫 회를 관람한 루이 르루아라는 기자가 잡지 〈르 샤리바리(Le Charivari)〉에 기고한 조롱조의 글 덕분에 ‘인상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루이 르루아는 우선 카미유 피사로가 출품한 〈하얀 서리〉(카미유 피사로 〈자화상〉 외 항목 참조)가 지저분한 캔버스 위에 팔레트 부스러기를 뿌려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하며, “하지만 저기에는 인상이 있어.”라고 말했다. 그가 굳이 ‘인상’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그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모네의 〈인상: 해돋이〉라는 그림의 제목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후로 이 전시회에 참석한 화가들의 그림 경향들을 통칭해서 ‘인상주의’라고 부르고, 그들을 ‘인상파 화가’ 혹은 ‘인상주의 화가’라고 부르게 되었다. 물론 화가들은 이 이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첫 전시회를 도모했던 그들은 이미 1860년대부터 낙선전의 소동으로 유명세를 탄 마네를 중심으로, 그의 화랑이 있던 그랑 바티뇰 거리(현재의 클리시 거리)의 게르부아 카페에 모여 자신들이 생각하는 예술에 대해 열정적인 토론을 벌이며 친분을 쌓아오던 터였다. 마네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심을 결코 감추지 않던 그들은 ‘마네의 패거리’라거나 ‘바티뇰 그룹’ 등으로 불렸다.
첫 전시회에 참석한 이들은 모네, 세잔, 드가, 아르망 기요맹, 베르트 모리조, 피사로, 르누아르, 시슬레 등인데, 정작 패거리의 우두머리 격인 마네의 이름은 빠져 있었고, 전시회가 여덟 번이나 열리는 동안 그는 한 번도 출품하지 않았다. 마네는 심사위원들의 편협하고 불공평한, 그리고 진부한 심사 기준에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지만, 늘 살롱전에 작품을 내곤 했다. 이를 마네의 기회주의적 성격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마네가 살롱전이라는 공식 경로를 통해 미술계의 중심부로 들어간 뒤 자연스레 위로부터의 개혁을 꿈꾸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인상주의의 뿌리는 쿠르베나 마네 등이 시작한 ‘사실주의’라고 할 수 있다. 쿠르베가 ‘과거’ 속에서 허우적대는 영웅과 신화 속 여신들 대신 동시대인의 모습을 담으면서 “내게 천사를 보여다오, 그러면 천사를 그리겠다.”라고 외친 것은 그림 속 주인공이 이젠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바로 내 곁의, 즉 동시대의 소시민일 수도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자각을 일깨웠다. 마네의 사실주의도 쿠르베와 맥락을 같이하지만,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시선’의 사실주의를 펼쳤다. ‘이상화’라는 명목 아래 잔뜩 성형된 인간 군상을 붓 자국의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눈속임하여 그렸던 아카데미적 화풍에 도전한 쿠르베와 마네의 그림 세계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바티뇰의 화실〉은 마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앙리 팡탱 라투르가 바티뇰에 있던 마네의 화실에 모여든 당대 지식인들의 모습을 단체 초상화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그림속에서 붓과 팔레트를 든 채로 관람자를 응시하는 사람이 바로 마네이다. 화면 뒤쪽 액자를 가리고 서 있는 사람은 르누아르이고, 바로 옆에 수염을 기른 훤칠한 남자는 에밀 졸라, 키가 큰 남자는 화가 바지유이다. 바지유 뒤 화면 가장 오른쪽 귀퉁이에 모네의 모습도 보인다.
더불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가감하지 않고 그려내는 바르비종파 화가들의 자연주의적 시각은 인상주의 화가들로 하여금 화구통을 챙기고 직접 자연 속으로 뛰쳐나가게 했다. 자연 속에 실재하는 빛의 움직임은 빠르고 거친 그들의 붓질 속에서 갖가지 현란한 색들로 바뀌며 캔버스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넓은 의미에서 인상주의는 당대의 ‘진보적인 미술’ 전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화가 개인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다. 보수가 ‘획일’을 강요하는 데 비해 ‘진보’는 다양성의 인정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독특한 개성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출처
오르세는 곧 인상파 회화로 통한다. 1900년 세계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기차역을 개조하여 1986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이곳은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펼쳐보기
전체목차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인상주의 – 오르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김영숙, 휴머니스트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