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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앙 아돌프 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905)가 평생 그린 그림들 중 누드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전적 아름다움과 낭만적 정서를 담뿍 안은 그의 누드화는 유난히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기에 그를 누드화가로만 기억하는 이도 적지 않다.

카바넬처럼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신화를 주제로 삼은 이 그림도 적나라함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이다. 두 화가가 그린 비너스는 각각 자신의 눈을 가리거나 고개를 돌려 외면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관음증적 욕구의 대상으로 삼는 남성 관람자들을 배려한다. 여인의 날선 눈이 빤히 관람자를 향하면 그녀의 벗은 몸을 감상하는 자들은 자신의 욕망이 노출되는 듯한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남성의 서양 미술사에서 벗은 여성의 시선이 대부분 감추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에콜 데 보자르에서 그림을 배운 부그로는 로마상을 수상했고, 전형적인 아카데미풍의 그림을 고수하며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그는 비록 지극히 남성 중심의 관음증적인 누드화로 이름을 떨쳤지만, 한편으로는 프랑스 제도권 미술에 더 많은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도의 인내력이 빚어낸 완벽한 기교의 화풍은 반아카데미파의 진보적인 젊은 화가들에게 진부함으로 비추어졌고, 늘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의 제자였던 마티스가 그에게 등을 돌린 건 물론이고, 드가나 모네 같은 화가들은 “부그로야말로 2000년까지도 그 이름을 빛낼 위대한 화가”라고 치켜세우면서도 누군가가 정갈하고 별 개성 없는, 그리하여 다분히 교과서적인 그림을 그리면 “꼭 부그로 같네.”라는 식으로 비아냥대곤 했다.

아카데미의 권위가 높던 시절에 부그로는 영화를 누릴 만큼 누렸지만, 화단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무서울 정도로 잊혀갔다. 마치 혁신의 인상파나 그 이후의 진보적 성향의 화가들이 타파할 고루한 보수가 오로지 부그로 한 사람뿐인 양 가혹할 정도로 그의 그림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미술관을 비롯한 공공장소에서 내려지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진 것은 1960년대 이후 경매 시장에 그의 그림이 다시 등장하면서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