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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서 꼭
봐야 ... 카미유 피사로
〈자화상〉 외
저작자 |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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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
〈자화상〉 1873년 제작 〈들판의 여인〉 1887년 제작 〈하얀 서리〉 1873년 제작 〈서리 내린 밭에 불을 지피는 젊은 농부(밭 태우기)〉 1887~1888년 제작 |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는 제1회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한 〈하얀 서리〉로 인해 신문기자 루이 르루아(Louis Leroy)로부터 “지저분한 캔버스 위에 팔레트 부스러기를 뿌려놓은 것 같다.”는 야멸찬 조롱을 받았다.
〈들판의 여인〉에서 보듯 피사로는 실외 풍경을 밝은 색채와 짧게 끊어지는 붓질로 화면에 옮기는 모네와 비슷한 화풍을 구사하곤 했다. 그는 주로 농촌 풍경을 담아 밀레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파리 시가지의 구석구석을 담은 그림들로도 유명하다. 안타깝게도 그의 파리 도심 풍경화는 오르세 미술관이 아닌 해외 각지의 미술관에 흩어져 있다.
성격 좋기로 유명했던 피사로는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서 호인으로 통했다. 그는 후기로 갈수록 〈서리 내린 밭에 불을 지피는 젊은 농부(밭 태우기)〉처럼 원색을 팔레트에서 섞지 않고 붓에 찍어 일정한 크기로 고르게 캔버스에 찍어 담아내는, 쇠라나 시냐크의 ‘점묘파’에 매료되기도 했다. 그러나 점묘파가 형태의 윤곽을 단단히 잡아내는 데 비해 그는 여전히 자연에 떨어지는 빛의 효과와 그 인상을 잡아내는 데 주력했고, 늘 “사물의 윤곽선을 너무 분명히 그리지 마라. 대신 색채와 그 농담을 담은 붓질에 힘을 써라.”라고 말했다.
피사로는 밀레처럼 농부들의 삶을 부지런히 화면에 옮기곤 했다. 그러나 밀레가 고단하고 남루한 농부들의 삶을 종교적일 만큼 숭고하게 미화시켰다면, 피사로는 들판에 나가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색과 빛으로 조합해 그 순간의 인상과 분위기를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데 더 힘을 쏟은 듯하다. 사실 피사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은 이처럼 사회에 대한 뚜렷한 의견을 작품에 반영한다기보다는 시각적 즐거움을 좇는 데 그친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이 버거운 탓에 오히려 외면하고 싶었던, 혹은 들여다볼 시간조차 가지지 못했던 자연의 경이로움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인상파의 역할도 결코 함부로 폄훼할 수 없다. 예술은 때로 ‘위안’이 되기도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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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르세는 곧 인상파 회화로 통한다. 1900년 세계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기차역을 개조하여 1986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이곳은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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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자화상〉 외 – 오르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김영숙,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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