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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부설 미술학교에 다니던 시절 로마상에 도전했으나 퇴짜를 맞은 장 레옹 제롬(Jean-Léon Gérôme, 1824~1904)은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닭싸움을 시키는 젊은 그리스인들〉을 살롱전에 출품할 때 무척이나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은 당당히 입선했고, 화단의 높은 평가에 힘입어 장차 화가로 대성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이 작품은 고대 문화에 대한 동경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완벽한 형태를 갖춘 청춘 남녀의 몸이 붓 자국 하나 없이 말끔하게 그려져 있어 다분히 고전주의 취향의 아카데미적 이상에 들어맞는다. 남녀라는 두 인물의 대비, 뒤쪽의 스핑크스와 앞쪽의 두 젊은이가 보여주는 노년기와 청년기의 대비는 바싹 마른 나뭇가지와 풍성한 잎들이라는 삶과 죽음의 대비로 이어진다. 제롬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르네상스 대가들의 그림을 직접 본 후 고전주의로 기울었다.

루이 14세 때 왕에게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결국 굴복한 콩데 백작의 이야기를 사진보다 더 사실감 있게 그려낸 〈베르사유에서 콩데를 접견하는 루이 14세〉등을 비롯해 주로 역사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을 꾸준히 발표한 제롬은 콘스탄티노플과 그리스, 이집트, 북아프리카 등을 여행하면서 체험한 이국 취향의 낭만적 정서를 화면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붓끝은 늘 고전주의적 정확성과 담백함을 잃지 않았다.

인상파 화가들이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할 때마다 그들이 회화의 기본기를 갖추지 못했다고 비난하던 제롬은, 상대적으로 살롱전에 그림을 발표할 때마다 대중과 아카데미 모두로부터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그는 1865년 마흔한 살에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이후 프랑스 최고의 명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의 명성은 국제적으로도 높아서 영국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으로까지 추대되었다.